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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남긴 화두, 독립 언론이라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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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리영희 선생이 남긴 화두, 독립 언론이라는 자유

[다시! 리영희] 위기의 시대, 독립언론 협업의 가치

"대구·경북 독립 언론 <뉴스민>, 이상원 기자입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독립 언론을 해요. 안 힘들어요?"

대구·경북을 조금 벗어나서 이렇게 소개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그럴 때면 '허허허'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곤 한다. 대구·경북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있기 때문에 돌아오는 스테레오타입 같은 반응이라곤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론 '대구·경북'이라서 독립 언론이 어렵진 않다. 그냥 '독립' 언론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개인사를 이야기하면 어려운 '독립'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된 데 많은 부분 리영희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우상숭배가 일상화된 군 생활을 하면서, 리영희 선생님을 알게 됐다. 선생과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 <대화>가 내 첫 '리영희 의식화' 교육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대화>를 만난 후 내 인생의 화두는 '자유인'이 됐다. 언론인이 되는 건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 내게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언론의 구성원이 되어야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삶을 살 수 있을까. 처음 리영희 선생님을 알게 된 2010년께 시대적 조건과 개인적 배경이 절묘하게 만나면서 삶의 직조도 시작됐다. 그 무렵 우리나라 언론계는 시궁창이었다. MB정부의 언론통제가 극에 달했고, <무한도전>을 볼 수 없는 MBC가 100일을 넘겨 이어졌다. 기성 언론으로의 진출은 현실에 대한 묵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회피이거나 기권일 수 있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그리고 내 고향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라던 옛 별칭은 진즉에 잊어버리고, 우상을 도시 곳곳에서 기렸다. 박정희라는 우상, 박근혜라는 우상과 실체를 알 수 없는 보수주의라는 우상이 만연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새긴 제자로서 고통을 무릅쓰더라도 내 고향 대구의 우상을 무너뜨리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진실을 추구한 10년, 그리고 폐간의 고민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걷게 된 독립 언론의 길이지만, 부침이 없던 건 아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2013년엔 잠시 걷던 길을 멈추기도 했고,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10년을 운영했지만, 여전히 길 앞에 빛은 보이지 않고, 무릅써야 할 고통만 가득했다. 결국 올해 1월에는 진지하게 폐간을 고민했다.

10년 세월 동안 깨달은 건 자유인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자립해 '오직 진실을 추구하는' 조직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2년, 20대 초반의 치기 어린 '자유인 희망자'는 막연하게 대구 인구 250만 명 중 1000명만 <뉴스민>의 가치에 동의하고 후원해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대구 인구의 0.1%에도 미치지 않는 목표지만, 사실 그 목표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뉴스민>의 구성원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감수하고, 스스로 1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쳤다. 기사형 광고를 실어주면 1건당 얼마를 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지만, 그 제안을 기사화했다. 무분별한 배너 광고도 거절했다. "이러저러하게 기사를 써주면 광고를 주겠다." "기사를 쓰지 않으면 광고를 주겠다." 숱한 유혹을 뿌리치고, 버티며 기회를 기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기회는 대구·경북의 위기와 함께 왔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다. <뉴스민>은 성주에 상주하며 현장을 기록했다. 전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뉴스민>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정체 상태였던 독자회원도 증가했다. 2020년엔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또 다른 기회가 왔다. 비대면 사회에서 중요성이 커진 영상 콘텐츠 수요가 늘었다. 각종 행사 생중계, 영상 제작을 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후원을 대신했다.

하지만 비대면 사회가 빠르게 정상화하면서 올해 1월에 이르러 근근이 유지되던 사업이 축소되고, 독자회원도 감소세를 보였다. 객관적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올해 운영도 어렵다는 막막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대로 끝내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쓴 호소문이 많은 분들의 호응을 얻어 제2창간의 동력을 얻었다.

▲뉴스민 제2창간 후원호프 현장 사진.

전국 독립·공영언론의 협업, 전국 곳곳에서 검찰 부정 밝혀

감사하게도 호소문에 누구보다 빠르게 호응해준 분이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다. 김용진 대표는 호소문을 SNS에 공유하면서 "<뉴스민>이 대구에서 독립 언론의 존재와 올바른 지역 언론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면서 "저도 새해를 맞아 <뉴스민> 지키기에 동참하겠다"고 동료 시민들의 후원을 독려했다.

김 대표는 후원 독려 뿐 아니라 <뉴스민>에 각종 연대, 협업도 제안했다. 대구·경북 소재 검찰청 예산 검증을 맡아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의 일원이 됐다. 이번 취재는 우리나라 언론사에 유례없는 전국적 공동 프로젝트라는 의미와 함께 독립 언론, 나아가 언론계의 협업이 '위기'에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뉴스민>이 협업의 한축으로 참여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뉴스민>에 마음을 여는 시민이 늘어난다는 건 그 한 단면이다. 이번 협업을 통해 공동취재단은 지금껏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성역을 드러냈다. 그동안 검찰이 특수활동비를 얼마나 제멋대로 써왔는지가 공동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기밀 수사에 쓰라는 기획재정부 지침은 검찰에서만큼은 무색했다.

전국의 독립 언론, 공영 언론이 협업한 결과 그 흔적은 전국 곳곳에서 확인됐다. 기밀수사 용도가 격려금 용도로 둔갑해 경기 부천에서는 국정감사를 우수하게 치렀다는 명목으로 검사에게 격려금 50만 원이 쓰였고, 경북 안동에서는 우수 공판부 격려 명목으로 150만 원이 쓰였다. 경기 고양에서도 검거 우수사례 격려금으로 여럿에게 돈이 전달됐다. 심지어 해당 검찰청에선 담당자가 "격려금 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전남 장흥에선 8개월 동안 매달 6만9800원이 고정적으로 사용되어 알아보니 공기청정기 렌트 비용으로 특활비를 썼고, 검찰 간부가 전출 갈 때 찍은 기념사진 명목으로도 10만 원을 썼다. 경북 어느 검찰청에선 경조사비로 쓴다는 증언도 확인됐다. 전국 곳곳에서 검찰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마음대로 특활비를 써왔다.

▲대구지검 안동지청에서 특활비 자료 수령해서 나오는 필자의 모습.

위기의 시대, 가장 유효한 독립 언론 협업

이처럼 독립 언론 간의 협업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건, 권력 기관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면서 동시에 곧 도래할지 모를 문명사적 위기를 인간이 극복하기 위한 몇 안 되는 대응책일지 모른다. 전 세계가 글로벌화하고 있지만, 위기의 징후는 결국 지역에서부터, 개인의 가정에서부터 조용히 시작된다.

기후위기의 시대, 위기의 징후는 경북 어느 마을에서 꿀벌이 사라지고, 강원 어느 산촌에서 본 적 없는 꽃이 피며, 전남 어느 해촌의 바닷물 짠맛이 희미해지는 방식으로 지구 곳곳, 지방 곳곳에서 드러난다. 경북과 강원과 전남 각지에선 그저 답답한 일, 신기한 일, 기묘한 일로 치부되고 만다. 파편화한 위기의 징후는 '이상한' 사건으로 소비되고 잊힌다.

만약 이상한 사건들이 기후위기라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언론의 협업망에 걸려든다면, 위기가 임박했다는 징후를 빠르게 알아채는 기제가 된다. 이때 이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언론'은 독립 언론이 유력할 수밖에 없다. 기성 언론은 여러 현실적 한계에 발목이 묶여 있고, 기존 체제 유지 발전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이를 정면으로 직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적 한계는 여러 얼굴로 언론을 옥죈다. 유력한 광고주나 권력기관으로부터의 압박일 수 있고, 광고주나 권력기관과 친밀한 경영진의 자발적 협조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두려움에서 비롯한 자발적 굴종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는 안타깝게도 공동취재단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충청 지역 독립 언론 <충청리뷰>에선 검찰 예산 검증에 나선 편집국장을 경영진이 해임했다가 철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수십 년 역사를 가진 독립 언론에서조차 이럴 진데, 기성언론의 한계는 더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충청리뷰>는 수십 년 이어온 독립 언론의 역량으로 경영진의 사과를 이끌어내고 편집국장 해임도 되돌릴 수 있었지만, 기성언론이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역사에서 여러 번 목격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그렇게 시작됐고, <한겨레신문>의 태동도 그랬다. <시사인>의 출발도 <시사저널>의 한계에서부터였고, 새로 문을 연 독립언론 <뉴스하다>도 <기호일보>의 한계에서 잉태됐다.

압박받거나 협조하고, 굴종하는 언론은 다가올 문명사적 위기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민하기 어렵다. 문명사적 위기는 곧 체제의 위기이지만, 압박받고 협조하고 굴종하는 언론은 체제의 위기를 말할 수 없고, 말하더라도 본질을 짚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우상’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로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 독립 언론 간의 협업이 가장 유효한 대응책이 될 것이다.

독립 언론은 협업을 통해 전 세계에 체제의 위기를 알리고, 정부에는 혁명적 대응책을 주문하며, 시민에게 변화를 독려할 수 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위기의 시대, 도래할 위기마저도 그러할 것이 자명하다. 지역적 위기는 세계적 위기가 될 것이고, 이 순간 가장 빛을 발할 것이 바로 전국에 자리 잡은 독립 언론의 연대와 협업이다.

▲제11회 리영희상 시상식 이야기마당에서 수상단체 대표들과 함께 대담을 나누는 필자. 왼쪽부터 하승창 리영희재단 이사,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대표, 필자, 이창호 뉴스하다 대표기자,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채연하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리영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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