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를 생산할 때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했나요?"
지난 9월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전기차 보조금 개정안의 핵심 메시지다. 전기차 생산에서 운송까지 배출한 탄소발자국 점수가 70%, 배터리의 수리 가능성을 고려한 재활용성 점수를 30%로 해서, 80점 만점에 60점 이하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기차의 탄소발자국은 철강, 알루미늄, 배터리, 원자재, 조립에 사용한 에너지, 조립해서 프랑스까지 운송과정에서 배출한 양을 모두 더해서 산출한다.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개정안은 제품의 최종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보조금을 주거나 규제하는 제도가 본격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넷제로 트래커에 따르면 전 세계 151개국와 세계 매출액 기준 상위 1017개 기업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각국의 산업과 통상정책의 핵심 아젠다로 자리잡았다.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 한국산 전기차는 현대차 코나, 기아 니로 등 연간 5000대가 포함됐다. 연말이면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도 확정된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은 저탄소 철강, 저탄소 배터리 등 탄소배출량을 줄인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운송에서 배출한 온실가스까지 포함하면 당연히 프랑스와 유럽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유리한 상황이고, 일종의 탄소보호무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도는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유럽연합은 자동차 탄소배출량 규제에 있어서 2025년까지 주행 시 배출량을 포함한 전 수명주기(Life-Cycle) 탄소배출량을 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할 계획이다.
앞으로 점점 더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는 시대가 될 텐데, 거기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항목이 에너지의 탄소발자국이다.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의 탄소배출 계수는 독일 0.83, 프랑스 0.58, 미국 1.05, 한국 1.43, 일본 1.46, 중국 1.6 CO2eq/kg이다. 유럽과 미국이 동아시아 국가보다 탄소배출 계수가 낮다. 에너지의 탄소집약도는 모든 제품의 탄소발자국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탄소중립은 전세계 1차 에너지의 77%를 차지하는 화석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분야보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EU 그린 딜, 미국의 IRA, 중국의 쌍탄소 정책 등 탄소중립을 위한 주요국의 정책에서 핵심이 에너지 신산업이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 대응도 더해져 REPower EU를 통해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42.5%로 높이기로 했다. 2021년 기준 유럽에 설치된 태양광과 풍력발전 설비용량인 440GW인데, 이를 2030년까지 1100GW로 늘리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산업과 설비에 있어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11만5000가구에 가상발전소를 공급하는 선노바에너지에 30억 달러(약 4조원)대출 보증을 승인했다. EU와 미국, 중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목표 실현을 성장, 산업, 일자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고, 이들 국가가 제조업 중심의 산업정책과 보호무역을 대놓고 시연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만이 아니라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가상발전, 섹터커플링 기술까지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과 시장으로 성장할 '재생에너지기반 전력시스템 구축'이 가속화되고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시기에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나?
윤석열 대통령은 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앞당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에너지를 폭넓게 활용할 것이며", "무탄소에너지 'CF연합(Carbon Free Alliance)'을 결성"을 제안했다. 그런데 CF연합은 '탈원전' 공방으로 갈 것도 없이, RE100에 밀릴 수밖에 없다. RE100은 기업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100% 재생전기로 사용하겠다는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인데, 2014년에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 주도로 시작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신뢰를 쌓아오면서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상징하는 목표치가 되면서 현재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해 총 424개 기업이 참여하고,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는 보고서도 발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CF연합'을 제안해도, 이제부터 가입요건, 인증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CF연합'은 'RE100'의 대적 상대가 아니다. 민간이 주도하는 글로벌 캠페인을 정부가 주도하겠다고 나선 관치의 대표적인 글로벌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애플의 2030년 공급망 탄소중립 요구나 한국의 자동차 부품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조달하지 못해 계약이 취소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면서 기업은 지금 RE100이 급하다. 실제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형 전력구매계약(PPA) 체결 사례가 늘고 있다. PPA는 전기사용자와 발전사업자가 직접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한전이 제공하는 전기만 활용할 수 있었는데, 지난해 9월 '직접 PPA'제도가 만들어졌다. RE100 대응이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현대차 울산공장은 현대건설과 2025년까지 울산공장에 태양광 재생에너지 64㎿ 규모의 PPA 계약을 맺었다. SK그룹은 최근 9개 계열사와 SK E&S가 약 408㎿에 달하는 직접 PPA 거래협정서를 체결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를수록 기업이 태양광발전을 직접 건설해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거나 PPA를 하는 비중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급한데 정부는 역주행하고 있다. 정부 정책 영향으로 국내 태양광 시장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21년 국내 태양광 발전설비 신규 설치량은 4.2기가와트였는데, 2022년 3.0기가와트로 줄었고, 올해는 더 줄어 2.5기가와트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7월에는 100킬로와트 이하 소형태양광 우대제도도 연장 없이 폐지했다.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에 따르면 전력기금 예산에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예산은 올해 1조 489억 원에서 내년 6054억 원으로 42%나 줄였다. 한화큐셀은 충북 진천·음성 공장의 생산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이날부터 다음달 3일까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국내 태양광 시장 수요 둔화로 모듈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화큐셀은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는 투자와 사업규모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국내 태양광 산업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하는 사이 세계는 더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2045년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했고, 2030년 전력 중 재생에너지 목표를 80%로 설정했다. 영국은 70%이고, 일본은 38%다. 한국의 2030년 전력 중 재생에너지 목표는 21.6+알파인데, 그마저도 현재 정책 수준으로는 불분명하다. 두 나라가 목표를 달성하면 독일은 한국의 4배 정도의 재생가능한 전력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2030년에도 석탄 20%, 가스 24%를 유지하는 한국산 제품의 탄소발자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한국의 탄소 중립 전환 움직임은 어느 수준에 와 있나. RE100 달성을 위해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당장 시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이 같은 물음에 지침이 되어 줄 '2023 경기탄소중립포럼'이 14일 경기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컨퍼런스홀에서 <프레시안>과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주관으로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시민 사회와 연구 단체, 정부, 기업 현장에서 에너지 전환의 오늘을 확인하고 미래를 고민한 김혜애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원장,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정규창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사업지원팀장이 RE100 달성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전환을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발제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