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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권리를 가지는 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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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권리를 가지는 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인권학의 프런티어] 확장되는 자연의 권리…인간중심 딜레마 넘어서기

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평화-인권-환경 연구자인 황준서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

전 세계 곳곳에서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제자연의권리연맹(Global Alliance for the Rights of Nature)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뉴질랜드, 방글라데시, 에콰도르, 미국, 캐나다 등 총 22개 국가에서 자연의 권리에 대한 법제가 여러 수준에서 존재한다(헌법, 법률, 판결, 조례 등). 논의가 등장한 배경을 살펴보고, 관련 쟁점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자연의 권리 논의를 '지구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책무' 문제로 확장하여 생각해본다.

자연의 권리와 인간중심성에 대한 반성

인간은 자연세계에 존립을 의존하고 있는 동시에 독창적인 인공세계를 창조해냈다. 인간은 자연의 순리대로 퇴적되어 있는 화석들을 파헤쳐서 '연료'로 활용하고, 과학, 법률, 문화, 기술, 사회제도 등을 창조하여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한 때 이러한 변화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가 인간을 더 버틸 수 없다'는 반성이 담긴 목소리가 전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 가부장제, 공장식 농축산, 추출주의(extractivism) 등 인간세계에서 창조된 생활방식은 특히 자본과 권력자들을 배불리면서 지구를 파괴해왔다는 것이다.

인권은 인간이 주체적으로 세상을 이끄는 시대, 즉 휴머니즘(humanism)과 함께 발전해왔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진보에 대한 믿음에는 인권 담론의 진보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분명 존엄한 존재이며,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역량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의 특성이 인간을 마치 자연세계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위대한 예외적 존재로 간주하는 세계관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지구상 존재들은 인간이 구축한 세계와 자연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사고관을 인간 우월주의(human supremacy)나 인간 예외주의(human exceptionalism)라고 부른다. 인간의 가치와 경험을 세상을 해석하는 중심기준으로 둔다는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라고도 한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생태계와 동식물과 달리 '예외적으로' 인간만의 기준과 방식을 창조하며 살아갈 수 있기에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우월한 존재인 셈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특히 서구의 종교와 문화, 경제, 정치에 만연해 있었다. 그 속에서 발전한 전통적인 인권이론은 오로지 인간만이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인간중심적 사고관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연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하는가?

'자연의 권리'는 지구상에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인간만이 아니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등장한 대안적 인권론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전 세계에는 헌법이나 법률, 지방자치조례 등 여러 방법으로 자연의 권리가 법제화된 사례들이 있다. 아직 법제화되지 않은 곳에서도 자연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환경운동이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권리를 인정받는 '자연물'도 굉장히 다양하다. 강, 산, 숲, 바다 등 자연생태계를 비롯하여 특정 동식물종에 권리를 부여하려는 노력들이 있다.

동물권(animal rights)처럼 자연의 권리와 비슷하게 인간중심적인 인권론을 넘어서는 시도를 하는 흐름도 있다. 동물권과 자연의 권리 사이 차이는 동물권은 동물로 분류될 수 있는 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반면, 자연의 권리는 생태계 전체를 중심으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연에게 권리를 부여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자연의 권리'는 크게 ①생태계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 ②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권리 ③인간을 통하여 조력·대리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중심으로 그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서는 황가누이 강(Whanganui River)이 뉴질랜드 정부와 마오리족이 구성하는 신탁관리위원회에서 권리를 부여받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황가누이 강의 통일성을 해치는 국가개발사업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결정할 수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폐기물 투기로 인해 오염된 강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지방정부에게 원상회복 조치를 결정한 판결도 존재한다.

자연의 권리는 자연을 더 이상 인간중심적 발전을 위해 소모할 수 있는 자원으로만 치환할 수 없도록 보호한다는 의의가 있다. 즉, 자연 자체에 대한 존중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좀 더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다는 의의가 있다.

자연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돌보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여러 위협을 감수하면서 자연의 이름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사업이나 전쟁(준비)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그저 경멸적인 의미에서 "시위대(protestors)"의 소란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자연의 권리가 인정될 경우 자연을 돌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지구 생태계의 "보호자(protector)"로서 한층 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인권 보호 및 증진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 독일, 영국, 한국 등 '민주국가'에서도 환경운동가와 기후단체들을 감시하거나, 수사하거나, 해산을 압박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날만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민들의 결사의 자유를 탄압하는 경우 환경보호 목소리가 위축되고, 결국 인간이 누려야 하는 환경권뿐만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권리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 7월 인도에선 기록적인 폭우로 타지마할의 북쪽 성벽을 끼고 흐르는 야무나 강의 수위가 크게 상승, 세계적 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이 침수될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The swollen Yamuna river rises to the periphery of the Taj Mahal, the first time in 45 years, in Agra, India, Tuesday, July 19, 2023. (AP Photo/Aryan Kaushik)

자연의 권리가 가지는 딜레마

이처럼 '자연의 권리'는 인간중심적 인권론을 넘어서고자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반드시 인권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이유도 없다. 다만 인권과 충돌하는 지점은 물론 딜레마가 여러모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딜레마들은 자연의 권리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질문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자연의 권리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권리가 인권과 충돌하는 지점 중 하나는 소유권 문제이다. 근대 인권이론에서 소유권은 인간이 자연상태에서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권(natural rights)"으로 간주된다. 그만큼 소유권이 가지는 지위는 상당히 높다. 그리고 지금까지 각종 개발사업은 소유권 행사를 이유로 정당화되어 왔다. 예를 들어 국가는 국가 영토에 귀속된 자연자원에 대해서 배타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기업과 개인은 사유지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의 권리를 인정할 경우 소유권보다 자연의 권리가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특히 사적 소유권을 둘러싼 쟁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경우 권리를 인정받은 황가누이 강에 대해 정부는 주권을 행사할 수 없으나, 사유재산권 행사에 대해서까지 막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다. 환경보호 관점에서 볼 때 사유재산권과 자연의 권리가 양립하는 상황은 우리나라에서 그린벨트를 지정하면서 사유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모습에 비해 한계가 있어 보인다.

자연생태계의 권리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도 있다. 인권은 '인간'이라는 특정한 종에게만 권리를 부여해왔다. 인간중심성을 넘어선 인권론은 이 기준을 대체할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여러 입장이 산발적으로 존재한다. 현재 자연의 권리가 법제화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대개 특정한 산이나 강처럼 생태계 일부가 권리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지구를 하나의살있는 생명체로 보고서 지구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백두대간, 점박이물범, 도롱뇽, 산양, 제주 남방돌고래 등 생태계와 동물들을 중심으로 자연의 권리가 언급되어 왔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있는 생물종은 약 5만 2628종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인간 외에 5만 2628종의 동식물에게도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어떠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그 제도가 작동할 수 있는가?

권리를 인정받은 자연을 인간세계에서 누가 어떻게 대표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5만 2628종의 동식물이 모두 권리를 인정받는다면, (결국 인간 중에서) 누가, 어떻게 이들의 권리를 대표할 것인가? 어떠한 근거로 이들의 권리를 얼마나 주장할 수 있는가? 등 여러 난제들이 존재한다.

▲ 6월 7일(현지시각) 캐나다 동부 산불 연기가 미국 북동부 곳곳을 뒤덮어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뿌옇게 보인다. ⓒAFP=연합뉴스

돌고 돌아 문제는 '인간의 조건'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게 되면 인간은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의무담지자가 된다. 그래서 자연의 권리는 인간중심성을 넘어서고자 하는 동시에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측면이 있다. 인간이 권리를 부여하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의무를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의 권리를 탐구하다 보면 다른 종에 비해 우월하지는 않지만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책임과 역할을 할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즉, 21세기 '인간의 조건'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삶의 방식이다. 지금까지 자연의 권리는 어떤 생태계나 동식물종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의무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

※ 본 연재에서는 한국인권학회·인권법학회에서 공동 발간하는 학술지 『인권연구』에 실린 시의성 높은 논문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개논문> 황준서. 2023. “Building Sustainable Peace through the ‘Rights of Nature’ in Western Societies: Case Studies of New Zealand and Northern Ireland”. 『인권연구』 6(1): 149–188.

<다운로드 방법>

링크 클릭→(오른쪽) ‘KCI 원문 내려받기’ 클릭

http://journal.kci.go.kr/jhrs/archive/articleView?artiId=ART00297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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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서

퀸즈벨파스트대학교(Queen's University Belfast)에서 북아일랜드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삼중 전환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2022년에 졸업하였다. 생태정의, 환경범죄, 지속가능한 평화, 탈인간중심적 인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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