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공세적 핵전략
8월 29일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군 총참모부 훈련지휘소를 방문해 전군지휘훈련 과정을 참관했다. 인민군 전군지휘훈련은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 쉴드(UFS)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을 띠고 있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19일부터 시작된 인민군 전군지휘훈련의 최종 목표는 공격의 격퇴뿐만 아니라 전면적인 반격 및 남한 전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다. 북한이 전군지휘훈련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작전 초기에 '적의 전쟁잠재력'과 '전쟁지휘구심점'을 타격하고'지휘통신수단'들을 무력화해 전쟁수행 의지와 능력을 마비시키는데 주력할 것과, 항구와 비행장 등 중요 군사대상물, 사회정치·경제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핵심요소'들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초강도 타격'을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남한의 핵심시설과 주요 전력을 표시한 대형 작전지도 앞에서 지휘봉을 육·해·공군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지역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내용은 남한 전역에 대한 동시 다발적인 핵공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훈련지휘소 방문 직후인 30일 밤 인민군은 평양 순안 인근에서 동해로 2발의 전술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비행거리는 360km로 발사 지점에서 계룡대까지의 거리와 같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KN-24로 추정된다. 인민군 총참모부도 "핵타격임무를 정확히 수행"했다며, 핵공격 훈련임을 명백히 했다.
인민군은 지난 2월에도 우리의 공군비행장을 겨냥해 600㎜ 방사포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북한은 "적의 작전비행장당 1문, 4발을 할당해 둘 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자랑하는 전술핵 공격수단"이며, '적의 작전비행장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600mm 방사포는 이동식 발사대(TEL)에 4발 또는 6발을 장착한다. 따라서 북한이 단 한 대의 TEL로 수원, 오산, 대구, 군산 등 우리의 주요 군 비행장을 모두 마비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 셈이다.
북한의 대남 전술핵 공격 훈련의 시작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법령을 채택했으며, 특히 제6항 '핵무기의 사용조건'에서 매우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명문화했다. 핵무기의 사용 대상도 남한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로 확장했으며, 핵 반격공격을 명문화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인민군 전술핵 운용부대를 방문해 모의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 발사를 현지 지도했으며, 목표는 남한의 항구, 비행장, 그리고 주요시설이었다. 이후 북한은 을지프리덤 쉴드(UFS), 비질런트 스톰, 동해 해군훈련 등 한·미 연합훈련뿐만 아니라 한국군 단독의 호국훈련 등에도 매번 무력시위로 맞대응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정전협정 이후 남한 지역(속초 앞 해상)에 대한 최초의 미사일 발사, 500여 대의 대규모 항공기 출격, 12월 수도권 무인기 침투 등 전례 없는 공세적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이에 대해 2022년 12월 20일자 <노동신문>은 "적대세력들에게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안겨준 자랑찬 쾌승"이라고 자찬했다.
이와 같은 공세적 무력도발은 과거 한·미의 주요 군사동향에 대한 북한의 대응과는 다른 양상이다. 북한의 공세적인 무력시위는 일시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전술핵무기의 실전배치라는 자신감에 기반을 둔 '핵지렛대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 전역이 북한의 전술핵 사정권에 놓인 셈이다.
한반도 핵경쟁 시대의 도래
북한의 핵위협 고도화는 2023년 4월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으로 이어졌다. 워싱턴선언에 대한 다양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확장억제의 수준이 획기적으로 제고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과 전술핵 재배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워싱턴선언은 한·미 간 핵관련 협력의 최대 한계치에 가깝다.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미는 핵협의그룹(NCG)의 창설, 전략핵잠수함(SSBN) 및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기항 및 기착 등 확장억제의 정례적 가시성 확보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나토(NATO)의 핵공유그룹(NPG)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미국이 양자 간 핵무기 관련 협의체를 형성한 것은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유일하다.
북한은 7월 12일 고체연료 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발사했으며, 7월 18일 한·미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차 핵협의그룹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커트 캠벨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미국 핵전략잠수함이 부산항에 기항 중"이라고 발표했다.
일반 핵추진잠수함이 아닌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SSBN의 한반도 기항은 1981년 3월 로버트리함의 방문 이후 42년 만이다. 냉전기에도 미국 SSBN의 한반도 기항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당시 부산에 입항한 켄터키함은 오하이오급으로 세계 최대 SSBN 중 하나이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트라이던트-Ⅱ D5' 20기를 적재할 수 있다. '트라이던트-Ⅱ D5' 미사일은 한 기당 10발 내외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다탄두미사일(MIRV)이며, 각 핵탄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0-30배의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
전략무기 중 가장 강력한 것이 SSBN이며, 단 한 척만으로도 한 국가의 주요 도시 전체를 초토화할 수 있다. 켄터키함의 부산 입항으로 남한 내 핵무기 부재의 역사는 깨진 셈이다.
한·미 핵협의그룹 출범과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부산 입항이 공개된 직후인 7월 19일 새벽 북한은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했다.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는 550km, 고도 50km였으며, 핵탄두 탑재용 KN-23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한·미 간 핵 대 핵 대응의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며, 현재의 강 대 강 대치국면이 지속될 경우 북한 전술핵운용부대의 훈련과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전개가 우리의 일상이 될 우려가 있다.
남북한의 '헤어질 결심'
지난 7월 10일과 11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연이틀 담화를 내고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며, 그동안 사용해오던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이례적으로 사용했다. 김 부부장은 10일 담화에서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족속' 등의 표현을, 11일 담화에서 '《대한민국》의 군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북한 외무성과 인민군 총참모부 등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지속해서 사용했으며, 8월 29일 인민군 총참모부 훈련지휘소 방문 당시 김정은 위원장도 '《대한민국》 군부깡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김일성민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 북한은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과업 수행" 문구를 삭제하고 "공화국 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을 실현" 등의 문구를 추가한 바 있다. 따라서 최근 북한의 《대한민국》 표현 사용에 대해 일각에서 북한이 2국가 체제 전략으로 수정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매체는 대한민국 표현에 강조의 의미인 '겹화살괄호'(《 》)를 사용함으로써 해당 표현이 특정한 의도를 담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대한민국》 표현과 함께 '역도', '괴뢰지역', '조국통일' 등의 용어가 병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2국가론으로 전환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항일무장투쟁', '백두혈통', '조국해방전쟁' 등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한반도 통일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통일을 부정하고 2국가 체제를 공식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체제경쟁에서 실패한 북한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정권과 체제의 생존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김정은 정권에게 북한 주도의 통일은 실현 불가능한 과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 반복되고 있는 북한 지도부의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의 사용이,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간 적대적 공존으로 전환하기 위한 장기간 준비 과정의 일환이 아니냐는 판단은 합리적 의심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7월 27일 정전협정기념일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에 대해 "역대 그 어느 보수정권도 능가하는 극악무도한 동족대결 정책"이라고 단정했다. 이어 8월 18일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적어도 윤석열 정부와는 '헤어질 결심'을 확실히 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내용의 헌법 3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역시 역설적으로 북한과 '헤어질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지만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며, 출범 16개월 동안 단 한 차례의 의미 있는 남북대화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각종 기념사와 주요 언급을 통해 공산세력과의 대결을 부각시켰으며, 통일부를 대북지원부라고 질타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남북교류, 남북대화, 대북지원 등 남북관계 관련 부서를 대폭 축소했다. 통일부의 대북 심리전 업무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대북지원은 잠재적 우리 국민인 북한 주민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통일부의 고유업무에 속한다. 남북대화와 남북관계 기구를 축소하고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평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반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신도 모르게 통일의 대상인 북한과 '헤어질 결심'을 공개 선언한 셈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한반도 핵위기를 자각하고 축소지향적 역사관에서 벗어나자
육군사관학교 교정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 것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모두의 소원은 광복이었으며, 홍범도 장군은 절망적인 한민족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당시 좌우를 넘어, 진영을 넘어 우리 민족 모두의 적은 일본이었으며, 소원은 광복이었다. 그 위대한 역사를 논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것만으로도 관련자들은 향후 긴 시간 동안 후대와 사가들의 질타를 면치 못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해 미국, 일본과 손을 잡고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분단의 원초적 책임은 한반도를 침탈하고 태평양전쟁을 유발한 일본에 있으며, 지금도 일본이 한반도 통일을 진정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일제와 싸운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며 과거사에 대한 반성조차 없는 일본과 손을 잡고 과연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가능한가?
홍범도 장군 흉상의 존재는 이념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통일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한반도 전체가 우리 영토라면 마땅히 그 땅에서 이루어진 그 모든 것이 우리 역사여야 한다.
남북한 간의 정통성 경쟁은 이미 끝이 났고 대한민국의 여력은 이런 담대한 역사관을 받아들일 만큼 차고도 넘친다. 잃어버린 역사의 정기를 제대로 되찾아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인식의 확장이 따라야 통일의 반석을 세울 수 있다.
동서독 사례에서 동독은 2국가체제를 지향했지만 서독은 범게르만 민족주의를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독일 통일의 밑천이 되었다. 말로는 통일을 외치면서도 시야는 한반도 남쪽으로 움츠러들면 통일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당장 우리 앞에는, 이념을 둘러싼 시대착오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과 대립을 삼가고 북핵문제를 포함한 안보위기에 머리를 맞대고 출로를 찾아야 할, 공동의 과제가 놓여 있다. 중장기로는 나라발전의 한계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분단체제를 해소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각이 이루어진다면 다행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안의 분열 요소를 제거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한데 모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충동적인 한 줌의 지지자에 의지해 역사를 부정하는 과오를 저지를 때가 아니다. 한반도 핵경쟁 체제의 위험을 막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켜야 할 때이며, 멀고 험난한 통일의 길을 우보천리로 걸어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한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직시하기를 진정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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