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파행 사태의 근본 원인은, 노태우 정부가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명의 대통령도 책임져 보지 않은 은폐된 '개발주의'의 비극이 우리 가까이에서 희극적으로 전세계를 향해 '팝업'된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이 문제는 이 칼럼의 주제가 아니다.
핵심은 심플하다. 이건 돌발 재난에 따른 '국가 위기' 상황이 아니라 6년 전부터 준비한 '평시 행사' 상황이었다. 국가 재난 대처에 실패할 때는 이런 저런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6년간 준비한 행사를 '수행'하는 데에 실패할 때는 이런 저런 이유 따위는 필요 없다.<대통령의 자격>을 쓴 윤여준은 "위기관리 능력이 있으려면 평상시에 뛰어난 국정수행 능력이 있어야 된다"며 "평소 실력이 안 되는데 어떻게 위기대응을 하나"라고 말했다. 평시 작전에 실패하는 지휘관이 전시 작전에 성공할리 만무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책임감'이라도 있어야 한다.
불행인 건 윤석열 정부의 책임의식이 선택적이란 점이다. 사람들은 대통령실 명패에 새겨져 있다는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여기, 즉 나에게서 멈춘다.)에서 '여기(here)'가 어딘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수식하는 말이 '무책임'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되고 있다는 건 불길한 징조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도 된다. 지난해 10월 29일 대한민국 대통령실이 위치한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책임 진 고위 관료는 없다. 대한민국 안전의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은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러면 이태원 참사 직전 5만5000명이 운집한 부산 BTS 콘서트에 경찰 1300명을 투입한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전국에 '묻지마 칼부림' 예고 글이 퍼져 나갈 때 경찰 장갑차를 도심 곳곳에 배치한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유독 참사가 일어난 핼러윈 축제에만 '경찰이 배치돼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운집할 거란 사실을 간과했고,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태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경찰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저는 경찰에 정말 제가 묻고 싶어요. 왜 그 앞에, 그 6시 34분에 인파가 너무 밀집해서 숨쉬기도 어렵고 경찰에 통제조치를 해 달라고 112 신고가 들어올 정도 상황이면 그 상황을 당시에 이태원 지구대든 용산서 경찰관들이든 130여 명의 경찰들이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경찰서장이 늦게 왔냐, 빨리 왔냐의 문제가 아니고 왜 그런 도로 차단조치를 해서, 차선 차단조치를 해서 그 인파들에게 통행공간만 넓혀주면 벌써 이 압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걸 중앙선까지만 공간을 확보해 줘도 저 해밀튼호텔 옆 골목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사람들의 숨통은 터질 수가 있어요. (중략) 이게 도대체 왜 안 이루어졌는지 저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갑니다."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이며 내놓은 '경찰청 지휘 체계 변화' 조직도의 지휘 라인 맨 위에 자리한다. 그런데 'Buck'은 대통령 앞까지 아예 도달하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은 참사 엿새만에 조계사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추도사를 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안다." 그게 끝이었다. 툭 하면 '장관 자리'를 거는 장관들 중 누구도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다. 후배가 승진해도 옷을 벗는 '미풍양속(?)'의 검찰 조직 출신이 대통령이 됐는데, 이 정부에선 정작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 경우 하급 관리 몇 명이 책임지고 수사 받는 게 전부다.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사과 한 마디 없다. 충북도지사, 행정안정부 장관은 책임론에서 쏙 빠져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상래 행복청장 인사 조치를 건의했지만, 여태 뒷 소식은 없다. 참사 발생 후 지하차도 인근에서 폭우에 고군분투한 경찰관 몇 명을 잡겠다고 허둥지둥댔다. 폭우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원의 비극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해병대 수사단장이 사단장에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조사결과를 이종섭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았는데 갑자기 뒤집히고 수사단장이 '집단항명수괴'로 형사입건됐다. 대체 책임은 누가 지고 있는 걸까?
대통령이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건 엉뚱하게도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해법 같은 사안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 전범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것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자신의 대선 공약을 실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강제동원 해법 및 한일 관계 관련 발언을 편집해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등 문구로 유튜브 쇼츠를 만들어 홍보했다. 역사 앞에서 책임은 본인이 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린 '역사 앞에서 책임 진다'는 자세로 남북 평화 정책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뒤집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보고 있다. 본인들이 대북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는데, 대일 정책은 뒤집히지 않을 거란 장담을 하는 건가? 고독한 결단, '신념 윤리'의 과잉 속에서 'The Bucks stops here' 문구는 '당장 추궁되지 않을 책임' 앞에서만 유효하다.
잼버리 파행 사태 앞에서도 'buck'은 여지없이 도달하지 못했다. 대신 국민의힘은 '전 정부 탓'에 심취해 있다. 선택적 책임이다. 수해 피해의 책임에 대해 윤재옥 원내대표는 "졸속 결정으로 상시 개방된 보가 이번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충청권 취수를 담당했던 보였다"고 문재인 정부를 지목했다. '순살 아파트' 사태에 대해 윤 원내대표는 "LH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가 드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철근 누락사태까지 터진 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주택 건설 사업 관리 정책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추정해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대통령 처가 일가 땅 주변으로 종점이 변경된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도 문재인 정부 시절 '용역'에 착수했다고, 양평 고속도로 인근에 문재인 정부 참여 인사들의 집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했다고 주장하며 집권했으니, 어느 정도의 '적폐 청산'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적 재난이 날 때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전 정부 책임론'을 꺼내드는 건 공교롭다. 정부 출범 1년 3개월, 인수위 출범 1년 6개월 가까이 지났는데, 눈앞에 벌어지는 재난마다 '전 정부 탓'을 한다면 납득할만한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이건 스스로 '무책임 정권' 프레임을 강화하는 일이다. 잼버리 파행 사태에서 '아마추어 행정'이 앙상하게 드러났는데, 여권의 'Buck'은 아직 저 남쪽 동네 전라북도 앞에서 멈췄고, 도저히 올라올 기미가 안 보인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에 관해 말했다. 신념 윤리는 신념에 의한 행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은 타인의 어리석음과 세상의 악함에 있을 뿐, 나의 신념은 옳다는 것을 말하는 태도다. 이를테면 정책이 실패해도 '카르텔 청산'의 대의는 실행되야 한다는 것처럼. 이건 '혁명가'의 논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카르텔을 말할 때 가끔 혁명가처럼 보이는 언사를 자주 구사한다.) 책임윤리는 정치가가 인간의 선의와 완전함을 전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다고 말하는 태도다. 베버는 두 가지 윤리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전자에 충실할 뿐, 후자엔 눈 감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그의 신념 윤리는 거의 100년간 지속된 근현대사의 '한일 관계'의 고르디우스 메듭을 단칼에 자를 수 있는 용기로 드러나지만, 책임 윤리는 선택적 침묵으로 피해가거나 '전 정권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향을 보인다. 신념 윤리가 부족해도 정치를 하기 어렵지만, 책임 윤리가 부족하면 더욱 어렵다. '무책임'의 프레임은 '불안정한 정치가 윤석열'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잼버리 대회 운영은 폭우나 도심 참사와 같은 돌발적 재난 대처나, 신념 윤리를 앞세운 '고독한 결단'과 같은 게 아니다. 대통령은 지난 3월 한국스카우트연맹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잼버리 대회의 성공을 대통령이 '책임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평시에 벌어진 '준비된 파행'은 충남 홍성군에서 조직위의 행정 혼선으로 인해 '아무도 오지 않는 잼버리 환영회'가 열린 것에서 정점을 찍었다. 시민들은 재난 속에서 '국가는 어디에 있느냐'를 묻고 있는 게 아니라, 잘 짜였다고 믿은 시스템 속에서 '국가는 어디에 있느냐'를 묻고 있다.
늦지 않았다. 'The Buck stops here'를 신조로 삼은 윤석열 대통령, 아니 '대한민국 대통령'의 '책임 윤리' 발현을 기대해 본다.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 'The Buck stops here' 명패의 뒷면에는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I'm from Missouri'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책임 지는 일을 하기 위해선, 혹은 책임져야 할 일이 벌어지면, 스스로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대통령의 '신념 윤리' 과잉과 '책임 윤리' 부족을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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