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스웨덴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과 정치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인구문제는 그 어떤 사회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라며 인구위기를 예견했다.
16년 전,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학 명예교수 데이비드 콜먼은 "이대로라면 궁극적으로 한국은 사라질 것"이라며 인구감소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그리고 2023년 현재, 한국은 합계출산율 0.78로 '인구소멸국가 1호'가 됐다. 소멸, 消滅, extinction, 말 그대로 사라져 없어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 인구는 2019년 11월부터 43개월 연속 자연감소 중이다.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뮈르달 부부가 쓴 <인구위기>(홍재웅·최정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는 1930년대 전 세계 인구 논쟁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유럽 최빈국이었던 스웨덴이 오늘날 '복지천국'이 되는데 초석이 됐다는 평가도 따라붙는다.
"출산 장려, 다자녀 가정 세금 혜택 등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우리는 잠시나마 긍정적인 인구정책이 진행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도출할 수 있겠으나, 이런 정책들은 출산율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희망 사항만 열거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사회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위의 책 14쪽)
뮈르달 부부는 이미 100년 전 출산 장려를 위한 현금성 지원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나 저출산 정책은 '돈 주면 아이를 낳을 것' '돈 줄 테니 아이를 낳아라'에서 그 어떤 진전도 없다. 정부가 지난 15년 동안 저출산에 쏟아부은 돈은 280조, 천문학적인 액수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더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3월 내놓은 대책 역시 현금성 지원이 대부분이다. △다자녀 가구 지원 강화 △아이돌보미 수당 단계적 인상 △국공립어린이집 연 500곳 규모 확충 △출산휴가·육아휴직 이행력 제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대상·기간·급여 확대 △청년·신혼부부 분양·임대주택 공급 증대 △자녀장려금 지급 기준·금액 개선 △임신 전 건강관리제 국가 운영 등.
UN인구기금의 '2023 세계인구보고서'는 한국의 출산율 정책을 '나쁜 사례'로 언급했다. 출산은 개인의 선택인데도, 출산율 목표치에만 집중해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출산율보다 출산권의 자유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출산권 또한 개인의 인권처럼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출산권을 '낳고 싶은 만큼 낳을 권리', '출산 계획을 설계하고 실현할 권리'라고 정의했다.
보고서는 또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출산 계획을 실현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연금 개혁, 노동시장과 사회복지 제도 개선, 생산성 확대, 성평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장기적, 총체적 관점을 갖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뮈르달 부부 역시 저출산 대책으로 "분배정책, 사회정책, 생산정책의 전반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특히 "자녀를 가짐으로써 드는 비용을 줄여야만 한다"며 "이는 가족의 지속적인 생활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자녀가 방해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자녀가 방해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에게 육아와 자녀 교육이 집중되는 한국 상황을 생각하면, "근본적인 개혁" 없는 저출산 정책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지난 2018년 한국경제연구원이 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0~40대 여성 노동자 516명에게 이상적인 자녀 수를 물었더니, "2명"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 낳은 자녀 수는 평균 1.2명. 소득 및 고용 불안 30.6%, 사교육비 부담 22.3%, 일·생활 양립이 어려운 업무 환경 20.9% 때문이었다.
"출산율의 감소는 실제로 이전 사회에서 물려받은 가족제도가 오늘날의 경제, 사회에 맞추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변화된 경제, 사회적인 토대에 가족의 형태가 적응하지 못하면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예언한 대로 인종이 전부 자살하는 형상이 되고 말 것이다."(위의 책, 130쪽)
"인종이 전부 자살하는 형상이 되고 말 것"이라니…. 100년 전 '인구소멸국가 1호'의 탄생을 예견한 듯하다.
* 덧붙여…
1930년대 스웨덴은 당시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상태였으며 대공황 여파로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앉는 등 사회·경제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뮈르달 부부는 "기존의 신고전학파가 신봉한 이데올로기인 세이의 법칙Say's law,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명제를 부정하고, 소비 진작을 통해 생산을 끌어낼 수 있으며 인구 감소를 반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정당함을 설파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이태수 '해제' 중)
특히 "충분한 수준의 아동수당이 필요하고, 모자 지원 역시 "출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급하는 것, 즉 "출산으로 휴직하는 기간의 임금도 보조하는 데까지 강구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등 여성의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복지뿐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복지도 매우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주목할 점은 뮈르달 부부의 제안이 급진적인 학자들의 제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정책으로 실현돼 스웨덴 여성들이 '출산'을 선택하는 주된 이유가 됐다는 사실이다.
학비 보조금 지급은 1934년, 저소득층 아동수당 지급은 1937년, 주부 휴가제 도입은 1946년, 전면적 아동수당 지금은 1948년, 교육 보조금 지급은 1957년, 가족 상담원제 실시는 1960년, 9년의 의무교육제 실시는 1966년, 아동 가정 주택 보조비 지급은 1968년, 출산 유급 휴가제 실시는 1972년, 부모 보험제 실시는 1974년에 이뤄졌다.
현재 스웨덴의 출산 정책은 지속적인 성 평등 장려로 남성이 육아에 더 많은 책임을 지는 '두 돌보미와 맞벌이(dual carer-dual breadwinner)' 모델(공동육아)에 근거한다. 스웨덴 성격차지수(GGI) 순위는 146개국 중 5위이며 한국은 99위다(높을수록 성평등).
그러나 복지천국 스웨덴마저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다. 2010년 1.98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3년 1.89명, 2017년 1.78명, 2020년 1.67명 등 감소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인류는 100년 전 '인구위기'를 예견한 뮈르달 부부의 제안을 뛰어넘는 새로운 제안을 도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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