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통치(Prosecracy)'라는 말은 안병진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가 제안했다. 검찰( Prosecute)에 정치 체제를 의미하는 'cracy'를 붙인 말이다. 검찰 통치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검사주의 세계관, 즉 '법치'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스타일, 둘째, 모든 부처의 검찰화(수사 및 조사기관화), 셋째, 각 부처 검찰 출신 인사의 적극 기용이다.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정무 기능마저 수사기관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대결적 구도'를 지향한다. 협치보다는 견제, 조정보다는 단죄, 소통보다는 명령이다. 이를테면 국회는 협의의 대상이 아니라 견제의 대상이다. 법안 조율은 없고 대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적극 활용하며, 협치 대상인 야당 대표는 아예 만나지를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그 자체다. 검찰 동일체의 머리에 해당하는 정점 검찰총장을 지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후 '법에 의한 통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사회 정화 작업에 돌입했다. 정화 대상은 노조, 간첩, 시민단체 등이다. 앞선 칼럼에서 행정부의 '검찰 부서화'를 지적한 바가 있는데, 다소 순진했음을 인정한다. 검찰은 노조, 간첩, 시민단체의 비리를 캐는걸 넘어, 국회를 견제하는 정무 기관의 역할까지도 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나 군과 국정원이 하던 일이었다.
이 정부가 해 온 정무 활동이란 건 국회를 '범죄집단화'하는 것이었다. 민주당사는 물론 국회 사무처, 국회의원회관을 밥 먹듯이 압수수색한다. '빈손'이어도 상관없다. 국회를 '부패의 온상'으로 찍어 놓으면 자동적으로 반사이익이 발생하고, 그걸 취하면 지지율이 소폭 오르는 현상들은 꽤 빈번하게 관찰돼 왔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취하는 데 익숙해지면, 같은 방식을 계속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진다.
수사기관의 국회 견제의 정점은 최근 검찰의 한동훈 장관 인사청문 자료 유출 수사다. 이제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 자료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상위에 위치하게 된다. 앞으로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통해 확보한 인사청문 자료를 기자에게 건넬 경우, '정보 유출'이라는 '불법' 딱지를 붙이고 수사기관을 동원해 국회의원실과 언론사 뉴스룸을 치면 된다. 이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이미 우린 하루에도 수많은 '불법 보도'들을 보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선택적 수사'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이 신비로운 방법을 이전 정권이 몰라서 안 쓴 게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고위 공직자의 인사 자료를 폭넓게 공유하는 것에서 국민이 얻을 실익이 더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지 않은 일들이다. 하지만 '검찰 통치' 체제의 정부는 거침이 없다. 곧 있으면 대대적인 '인사 청문회 정국'이 열린다. 이걸 앞두고 '개인정보 유출'로 언론과 국회를 한꺼번에 쳤다. 앞으로 국회의원들은 인사 청문 자료를 받아들고 '어디까지가 위법이 아닌가' 고민하고 기자들은 인사청문 자료를 보고 '보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자기 검열'을 하게 될 것이다.
보수 정부, 진보 정부 막론하고 주장해 왔던 '공직자 개인 문제 검증 비공개 청문회' 주장은 더 이상 할 필요도 없다. 법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우회해서 공직자 사적 영역 검증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 이때 윤석열 정부의 '촉수'와 같은 기능을 하는 수사기관에는 국회를 견제하는 '정무 기능'이 추가된다. 굉장히 영리하고 전략적이다. 당장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설이 나오는 이동관 씨가 첫 수혜자가 될 수도 있겠다.
나치에 부역한 독일 법학자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윤석열 정부 들어 단골로 인용된다. 적을 만드는 정치. 적이 있어야만 가능한 정치. 칼 슈미트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 정치를 싫어했다. 의회는 합리적이지 않고 '영원한 대화'만이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그는 독재에 관한 글에서 '예외 상태'를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을 '주권자'로 봤다. 통치권력은 예외상태를 선언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른바 '결단주의'다. 칼 슈미트는 의회를 싫어했고, 나치 정권의 독재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런 이유로 학자로서 예외적으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피고석에 섰다.
재미있는 점은 윤 대통령이 칼 슈미트를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는 후보 시절 진중권 광운대 교수와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칼 슈미트'의 이론은 언급하며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독재 시절 선호됐던 것일 뿐 지금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평했다고 한다. 그런 윤 대통령에게 정치학자들이 앞다퉈 '칼 슈미트'를 인용하며 '검찰 통치'를 설명하는 툴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하긴 이런 불일치와 모순도 이 정부의 큰 특징 중 하나다.
기왕 통치 방식에 대한 고찰을 하는 김에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윤석열 정부의 세계관은 '상상된 질서'로 이뤄져 있는 것 같다. '상상된 질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추동력이 있다. 윤 대통령이 '낡은 이론'으로 치부한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는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전광판'을 보지 않고 '지지율'은 신경 쓰지 않는 '고독한 결단'은 윤 대통령 통치 방식의 핵심이다. 이건 대통령실에서도 자랑스레 강조해 오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정권 초, 대통령직에 일단 오르면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거란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에 불쑥 등장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령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 집무실을 벼락처럼 용산으로 이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불공단 전봇대 하나를 아예 뽑아버렸다.
정치 무대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현장과 이론을 두루 습득해 본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은 평소 교양으로 쌓아왔던 이상적 이데아를 갑자기 현장에 구현하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자주 시도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 분야에서 만 5세 취학 논란, 그리고 노동 분야에서 주 69시간 논란이다. 둘 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제 노동계와 시민사회, 그리고 야당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 적을 만드는 행위는 무지 때문이다. 현실을 모르니 자꾸 '결단'에 의존하는 강경책이 나온다. 상대를 알고 현장을 알면 '강경책'으로만 치달을 수 없다. 대화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외교 분야도 그렇다. '한미일 동맹'은 가보지 않은 길이다.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장 평화'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한미일 군사 동맹'의 상상된 목표는 현실이라 주장한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나머지 물컵의 절반을 상상으로 미리 채워 넣었다. 미중 대결,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등 민감한 현안도 '선명한 진영론'이 확립되어 있는 상상된 세계 질서를 상정하고, 그 길로 나아가려 한다.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자주 하는 말이 '지지율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내가 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옳은 것은 인기가 없다는 신념이다. 이런 상태라면 견제가 불가능하다. 남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합리적 대안의 존재 가능성을 항상 의심하기 때문이다. 검찰 통치와 결단주의, 그리고 무지에서 비롯된 상상된 질서를 향한 강한 추동력, 세 가지 키워드는 모두 연결돼 있다. 윤석열 정부는 어쩌면 한국 역사상 가장 독특하게 이념화된 정권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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