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
일본 정치인이 아니고 윤석열 대통령이다. 후쿠시마 제1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이 발언은 일본 <교도> 통신 보도로 알려졌다. 지난 3월 17일 윤 대통령이 도쿄에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접견하면서 한 말이다. 이미 결론이 내려진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지금 정부는 시찰단을 꾸려 일본에 보내려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따르면 시찰단의 성격은 이렇다. "한국의 역할은 일본과 IAEA의 검증 과정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믿을만한지 보는 것"이고 "일본이 하는 것을 전혀 믿지 않으니 시료를 하나 뜨고 그 자리에서 검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견 복잡하게 보이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간단하다.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정화 처리를 했느냐, 인체에 해가 있느냐에 앞서, 누구라도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려선 안 되며, 그런 행위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반드시 말해 줘야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도 했다'면서 앞으로 누구나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만든 방사능 오염 폐기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용인하려 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문제도 아니다. 왜냐하면 일본 후쿠시마의 1066개 탱크에 보관된 137만 톤의 오염수는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스스로도 '처리수'(그들의 표현에 의하면)의 완벽한 정화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다섯 가지의 처리 옵션을 건의했다고 한다. ①깊은 지층에 주입 ②해양방출 ③증발 후 대기방출 ④수소에 변화를 준 후 대기로 방출⑤고체화 또는 겔(용액이 굳은 것)화 후 지하 매설 방식 등이었다. 5지선다 중 일본 정부가 찍은 건 '해양 방출'이었다. 한국의 국책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초청한 옥스퍼드 대학 웨이드 앨리슨 교수는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오염수를) 식수, 농업, 공업용수로 쓰지 않고 해양방류를 하는 이유는 안전문제 때문이 아니라 비용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예상대로 이 물을 바닷물로 100배 희석해 30년간 내보낸다면 2억7400만 톤을 바다에 버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30년 후에는 또 다른 2억 톤 이상의 오염수가 발생하는데, 이것도 바다에 버릴 가능성이 높다.
비용이 저렴하니 해양에 쓰레기를 투기한다는 수준의 논리를 두고, '당장 1리터의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느니,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느니, '알프스 처리 시설은 믿을 만 하다'느니,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로 불러야 한다'느니 하는 논란은 사치에 가깝다.
"이번 일이 전례가 되면 다른 국가가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 연구원), "해양을 쓰레기 투기 지역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에 위배된다는 국제적 합의가 존재한다."(로버트 리치몬드 미국 하와이대 교수) 등 과학자들의 이 간단한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이유는 현재까지 없다.
인체에 해가 없든 있든 인류는 역사상 단 한번도 이런 거대한 규모의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겠다'고 공표해 본 적도 없고, 실제로 바다에 버젓이 버려 본 적도 없다.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프로젝트에 한국이 들러리를 선다는 건, 인류가 만들어 온 윤리적 프로토콜을 버리고 '혼돈'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걸 방조하는 일이다.
이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정부다. '해양 쓰레기 투기'를 반대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시찰단을 일본이 받아들인 것은 일본 외교의 승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이제 오염수 방류에 앞서 '한국의 시찰을 받았다'는 명분 하나를 더 얹게 된 셈이다. 한국이 요구하는 걸 받아들인 모양새를 취한 것도 물론이거니와, 일본 측은 현재 시찰단이 '검증'을 하는 게 아니라고도 선을 그어 놓았다.
특히 문제는 시찰단이 다녀온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다. 시찰단이 낼 보고서에 '방류는 적절치 않다'고 적거나, '방류해도 괜찮다'는 내용을 담거나, 둘 모두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전자는 한국의 '과거사 문제 제기 포기'로 개선되고 있다고 '믿고' 있는 '한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것이고, 두번째는 일본의 완벽한 승리를 축하해 주는 행위가 될 것이다. 무난한 것은 정치적 고려를 끼워 넣어 '방류 적절성에 대한 판단 유보' 정도 수준이겠다. 그러나 이 경우엔 '왜 갔느냐'는 질문에 답을 줄 수가 없다. 그때 이미 일본은 '한국의 시찰까지 받았다'며 국제사회 만방에 오염수 방류의 정당성을 선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후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한국이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한국은 이 말 앞에 가로막힐 수 있다. "당신들, 직접 시찰했었잖소." 이걸 대비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처리수 시료를 각각 확보하는 일이다. 현재로선 이 방법만이 오염수 방류 이후 벌어질 예측 불가능한 일들에 대해 우리 외교가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한국만 별도의 시료를 채취하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한덕수 국무총리)는 수준이 한국 관료들의 인식이다. '일본 대변인 같다'는 비판이 왜 나오겠는가. 우린 알 권리마저 스스로 박탈하고 있다.
일본의 보수 주간지 <주간현대>는 한국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비판적 여론이 높고, 윤석열 정부의 '비토층'이 60%를 돌파해, 출범 1년 만에 정부가 궁지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한 자민당 관계자는 "이 시찰단을 제안한 것은 일본 측이다. 기시다 정권으로서는 '친일'적인 윤석열 정권이 쓰러져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선물을 건네려고 했는데, 오히려 역효과였던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한일관계 개선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상대'가 있는 외교적 언어와 행위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전략적 모호성'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런데 지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들러리를 서려는, 윤석열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선명 외교'는 거의 자충수에 가깝다. 일본이 검증단을 받아들였다며 환호했던 이 정부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여당 사람들은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성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바다에 무언가를 버리면 안된다'는 초등생 수준의 명제에 '과학'을 들이밀며 겁박하는 꼴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충격과 비극을 TV로 생생히 목격한 (일본인 누군가에겐 경험으로 느껴진) 게 불과 12년 전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두고 벌이는 기억력 짧은 인간들의 논쟁들 속에서, 핵발전의 환상에 사로잡힌 세력이 만들어 낸 거대한 메타포가 읽힌다. 풍요와 죽음을 상징하는 '핵'이 가진 모순 속에서 '값이 싼' 방식을 택하는 것, 그리고 그걸 우려하는 사람들을 '비과학적'이라 멸시하는 세상. 어쩌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핵발전이 '값이 싼 것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논리를 공고히 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이 정부와 일부 보수 언론이 바라는 것이 아닌가. '원전만이 살 길'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값 싸고 허망한지, 언젠가 깨닫길 바라며 이 슬픈 블랙코미디를 감내해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재앙을 대하는 방식도, 재앙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식도 틀렸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해양 쓰레기 투기에 들러리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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