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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입사 13년 만에 'X 같은 마사회' 유서 남기고 떠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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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입사 13년 만에 'X 같은 마사회' 유서 남기고 떠난 걸까

[존엄이 사라진 일터와 남은 사람들] ⑦ 죽음으로 고발하고 떠난 말관리사 박경근을 기억하다 (上)  

누군가는 급히 덮어서 지우고, 덧씌워서 왜곡하고, 시간 속에 무심히 잊히길 바란다. 또 누군가는 하나하나 파헤치고, 바로 세우며, 떠올리고 되새긴다. 죽음이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사회적 타살의 사회적 의미를 헤아리는 노력이다. 기억하고 실천하는 우리가 결국 세상을 바꾼다. 떠난 자의 부활이란 그렇게 산 자의 몫으로 이루어진다.

여기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라는 바위에 죽음으로 부딪힌 박경근이라는 물 한 방울이 있다. 말관리사, 살아 있어도 우리가 모르던 존재였고, 죽어도 몰랐던 존재였다. 낙수로 떨어져 간 희생자는 비단 박경근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이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었다. 떨어져 깨어지는 구슬 같은 희생을 덧없게 하지 않으려는 안간힘 또한 있었다. 박경근이라는 한 방울의 물에 투영된 마사회의 어제를 이야기하고, 무수한 희생 속에 성찰하며 마땅히 변했어야 할 마사회의 오늘을 짚어보려 한다.

몇 년 전 산재 피해자 자료를 모아보자고 제안받았을 때 마사회의 희생자인 박경근의 사례를 골랐던 건 나의 오빠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이른바 고3병으로 정신질환이 와서 평생 입·퇴원을 반복하며 살았고 그 시작점에 경마장이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는데 친구 따라 경마장에 간 거였다. 받아 쓰는 용돈이 전부였던 18살의 고교생은 전 재산을 탕진하다가 자신을 탕진하고 병원으로 갔다. 조현병의 완치는 없었고, 증상이 조금 가벼워지면 퇴원이었고, 경마장으로 가는 일의 반복이었다. "아, 코 차이로 졌어." 가서는 돈을 잃고 스트레스받으면서도 계속 가는, 아픈 오빠를 이해하고 싶어서 뚝섬 경마장에 동행한 적이 있다.

오빠는 정신 줄을 놓아버렸지만, 오빠를 경마장으로 인도한 동창은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소위 일류 대학에 진학했으니 '경마장 가는 길'을 정신병원으로 직행하는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경마를 통해 모두가 도박중독에 빠지고 전부가 폐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단 한 번 가본 경마장은 분명 광기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마권을 쥔 주먹을 쳐들고 미친 듯 악을 써댔다. 온통 그러했고 매 경주가 그러했다. 최종 경주가 끝나고 관중들이 썰물로 경마장을 빠져나갈 땐 흩뿌려진 마권들이 바닥 전체를 덮은 듯했다. 그날의 사람들은 휴지 조각으로 버려진 마권만 같았다. 경마장은 산뜻한 레저를 즐기고 가볍게 돌아서는 공간이 절대 아니었다. '인생은 한 방'이라는 사행심을 부추기는 복권과 경마 따위를 국가의 공공기관이 합법적으로 취급하고 조장해서 돈벌이하는 것은 옳은가. 그날부터 뒤따르는 의구심이었다.

▲2018년 5월에 발간된 박경근, 이현준 열사 백서 ⓒ김우

말을 좋아하고 동료를 아끼던 사람

'나는 말이 좋아서 일합니다' 2018년 5월에 발간한 '고 박경근·이현준 열사 투쟁 백서'(이하 백서)의 제목이다. 박경근이 떠난 지 꼭 1년째 되는 날에 펴냈다. 백서의 첫 장에 쓰인 말은 다음과 같다.

"자부심을 많이 가졌어요. 걔들은 말을 너무 좋아했어요. '나는 말이 좋아서 일합니다, 행님' 항상 그렇게 얘기했었거든요, 걔들이. 말에 대한 사랑이 좀 많았었어요, 둘 다."

2019년 9월 부산 자택으로 찾아갔을 때 박경근의 어머니 주춘옥 님의 첫마디는 "정의파" 아들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강하면서도 지 보다 낮은 사람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 마주나 높은 사람들이 억압하면 끝까지 그 사람들, 약자를 밟는 사람한테는 끝까지 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얘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말이 좋아서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했던 그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말관리사로 9~10년이 지난 시점에 '진짜 썩어빠진 마사회'라고 '시궁창처럼 썩었다'고 판단 내렸을까. 무엇을 느꼈기에 입사 13년 만에 '좆 같은 마사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것일까. 그이가 세상을 떠난 것에는 "지보다도 밑의 아이들을 많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의리파" 성정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33조 가면서 팀장을 맡아 가지고. 16조에 있을 땐 일만 하면 됐는데. 미주알고주알 다 아는 기라. 돈을 몇 프로 벌면 이렇다 하는 걸 다 아니까 우리 아들이 소화하기가 너무 힘들었는기라. 너무 힘들어 놔노니까 동생들 때문에 조교사한테 가서 이리 해달라 해도 조교사가 듣고 까딱 안 하니까. 우리 아들이 이 길을 선택한 거야."

주춘옥 님은 아들의 사망에는 "내 하나 희생해가지고 동생들만 편안할 수 있으면" 하는 작심이 있었다고 이해한다. 떠나기 며칠 전에도 "엄마, 이 세계가 진짜 더러운 세계라고. 상상도 못 하는 비리가 있고, 상상도 못 하는 썩어빠진 마사회라고. 이 세계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전화했기 때문이다. 팀장과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사건 발생 열흘 전에도 마사회의 문제점을 국회의원에게 유선 상담하기도 했다.

"외국인들 경마장 안에 많이 있었다. 외국에서 와서 참 불쌍타고. 밥 한 끼도 못 묵고 한다고. 자주 우리 집에 데꼬 왔다. 밥을 내가 해주고. 외국인 아들도 좋다 하고. 엄마 먼 나라에서 와서 참 불쌍해요. 여서는 밥 한 그릇도 똑똑이 못 묵고 외국인이라고 모든 기 차별도 있고. 내 겉은 사람이 요런 사람을 따독거려 주고 따시게 해줘야만이 자기네 나라 가서도 한국이라는 나라 각박한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지 않겠냐고. 엄마 좀 힘이 들겠지만, 따신 밥 한 그릇 해달라고 전화가 오면 성심성의껏. 거기에 있을 때도 지 밑에 있는 동생들도 우리 집에 자주 데꼬 오고. 우리 아들이 김치찌개니 이런 거 밥도 해가고. 같이 동생들하고 안에서 묵그로 자주 해가고."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 사무실에 있는 박경근 이현준 열사 사진과 영정 ⓒ명숙

마사회라는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받는 이주 노동자를 챙기고, 팀원인 말관리사를 동생만큼 아끼고, 집에는 주 2회를 가더라도 말간 근처 다락에서 자면서까지 말을 살피던 박경근이었다. 하지만 발주 훈련이 부족한 첫 출전마가 출발 직전 흥분해서 어깨를 다친 날에도 박경근이 들어야 했던 것은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말 안 다쳤냐,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인간모독이었다. 사망한 박경근을 두고 언론에 흘리는 것 역시도 가정불화로 인한 자살이라는, 의도한 왜곡이었다.

박경근은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를 위해 남용하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 고용이다. 박경근이 떠나던 2017년 5월 기준 마사회의 비정규직 비율은 81.9%였으며 말관리사는 이 통계에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2011년 11월에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말관리사가 있었다. 개선이 없는 상황은 연이은 죽음을 불러올 뿐이었다. 2017년 5월 27일 박경근이 떠난 뒤에도 협상은커녕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8월 1일 이현준이 그 뒤를 따르고 보름 뒤에서야 노사가 비로소 합의할 수 있었다.

"야비한 게 보상을 1억을 주겠다, 초상 치고 나서 다시 합의를 하자고 하더라... 내가 끝까지 85일을 버틴 게 뭔가가 자기들이 반성을 해야는데, 반성을 하는 기미가 없어요. 자기들은 뭐 대단한 그 기고 마필관리사들은 발바닥 때만치도 안 여기고... 마사회 사람이 '자기 아들 냉동실에 여 놓고 그래 '시간 꺾기'하고 싶으냐'고 그 소리도 한 사람도 있다. 내 아들 하나 희생으로써 나는 그 안에 있는 마필관리사들이 편안해질 수만 있으면 시간이 더 10년이 걸린다 해도 같이 한번 싸우고 싶고. 끝까지 자기네들이 잘몬했는 것을 느낄 수 있게끔 난 하고 싶었다."

"방송에 직고용 다 됐다고 해서 진짠 줄 알았지. 헛 뉴스다. 아직까지 관리사들 직고용된 사람 없는 거 같다. 공기업은 베풀어야 한다. 직고용하고 자기들은 배당을 작게 가져가고 관리사들에게 베푸는 게 도리다. 자기 욕심 너무 채리면 안 된다. 해결 어느 정도 된 줄 알았는데 한국마사회 발전할 거 같으면 관리사들 직고용해서 편안하게 일하게끔 하는 게 내 소원"이라던 주춘옥 님. 2019년 9월의 이 같은 바람은 현재형으로 이루어졌을까.

백서에는 마사회 쪽에서 '(조교사)협회 통해 1~2년 진행하다가 무산시키면 안 되겠냐'고 작당 모의한 걸 제보받은 내용이 나온다. 하는 척만 하고 그런 시늉만 하는 본질의 노출인데 2017년 6월의 일이다. "지금은 바뀌려고 하는 시기? 바뀐 것도 아니에요. 언론과 방송을 보면 '우선 조치사항'으로 잘된 거 같지만, 실제로 된 거는 없고. 계속 싸워야 하는 실정이죠." 백서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고, 2018년 3월의 이야기다. 2023년 마사회는 과연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죽음으로 고발하고 떠나간 이들을 딛고 고쳐 바뀐 것은 무엇이고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이제 그 이야기를 나눌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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