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9일 국무총리 훈령 제737호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설치와 운영규정에 관한 규정'이 발령되었다. 하지만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김용균특조위')를 국무총리 산하에 만드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두 달여에 걸친 공공운수노조의 정부와의 대화와 설득 끝에 김용균특조위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김용균특조위의 조사위원이자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실장인 조성애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진상규명을 합의했으니까 연락이 왔어요. 처음엔 안전보건공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산재가 나거나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는 안전보건공단에서 하니까 자기들이 조사를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발전소라는 데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동네가 아니다. 자료 받고 내용 정리해야 공단의 조건에서 자료확보가 어렵지 않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다음에 고용노동부에서 연락이 와요. 산자부의 소속인 발전소를 들어가서 자료를 확인하고 업무를 하기 어렵지 않냐고 말하니, 산자부와 고용부가 협업으로 조사단을 만들면 어떠냐고 다시 제안해요. 그래서 우리는 노동부, 노동안전 인력 등의 예산과 기획 등의 문제는 기재부에게 있으니 세 개 정부 부처가 들어와 협업을 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하려면 진상조사위는 총리실 산하가 되어야 하지 않냐고 주장했어요. 그랬더니 그럴 수 있는 규정이 어디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왜 엾냐? '원자력 공론화 위원회'도 국무총리 훈령을 만들어서 하지 않았냐,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냐고 하니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국무총리 훈령에 따라 4월 구조・고용・인권・안전・보건・기술 등 노동안전 분야 16명의 조사위원과 23명의 자문위원이 참여하는 김용균특조위가 구성됐다. 위원들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사고 원인과 대책을 권고하려면 전문성 외에도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사람들로 모아야 했다. 법률전문가로 중대재해 사망사고 진상조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에 권영국 변호사에게 참여 제안이 갔다. 권 변호사는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하청노동자 '김군'의 사고에 대한 진상조사단장을 맡은 바 있기 때문이다. 권 변호사는 당시 경주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던 사정과 특조위에 진상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해 망설여지기도 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계속 거절할 수는 없었다. 조성애 실장 외에도 권영국 변호사,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등이 김용균특조위에 참여했다.
그렇게 구성된 김용균특조위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 및 이와 유사한 전국의 9개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노동안전보건 실태 파악, 석탄화력발전소의 노동안전보건 관련 개선과제 및 재해 재발방지 대책 권고안 수립을 목표로 활동하기로 했다.
아들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김용균특조위가 구성되고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故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도 그동안의 활동 평가와 이후 활동에 대한 논의를 했다. 2019년 4월 24일 시민대책위 6차 대표자회의에서는 (가칭)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대책위의 이태의 집행위원장은 고(故)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에게 용균이를 죽게 한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는지 감시도 해야 하고, 용균이 같이 비정규직들이 일하다 죽는 일이 없도록 사회적 역할을 하려면 그러한 일을 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어차피 용균이도 없는 세상, 무슨 낙으로 살겠어요. 아들의 뜻을 이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용균이 투쟁 때 힘 모아준 것에도 보답하고."
김미숙 씨도 아들의 뜻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김용균재단을 만드는 중심에 서기로 했다. 우선 김미숙 씨는 서울로 이사를 왔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일상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이 있는 영등포로 왔다. 아들의 장례투쟁을 하며 밥을 먹고 잠도 자던 꿀잠이 준 편안함과 따뜻함이 좋았기 때문이다. 재단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직 재판도 남았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함께 할 사람을 모으고 돈을 모았다. 노조와 단체를 돌아다니며 김용균재단이 할 일에 대해 간담회를 하고 재단을 만들 사람과 재정을 마련해, 2019년 10월 김용균재단이 출범했다.
발전사의 진상조사 방해
2019년 4월 3일 김용균특조위는 태안화력발전소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한국서부발전은 진상조사를 두려워하지도 협조하지도 않았다. 진상조사위원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회사의 실태조사 방해는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회사는 김용균특조위가 조사하려는 내용, 설문조사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돌렸다. 인터뷰(심층면접 조사)를 하고 나면 인터뷰한 사람을 불러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묻거나 녹취를 지시해서 회사는 보고서를 만들었고, 이를 다음 인터뷰할 조사 참여자에게 전달했다. 불시 방문 조사를 하려고 하면, 물청소가 돼 있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정리 등이 필요하다며 날짜를 조정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조사 방해는 언론에 공개됐고 특조위 조사는 잠시 중단됐다.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전산업개발에서 일하는 이태성 씨도 그때를 뚜렷이 기억했다. 그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김용균특조위의 활동을 지원했다.
"회사가 모범 답안지를 만들어서 배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노동자들로 하여금) 설문지에 발전사에 유리하게 체크하도록 했어요. 설문지를 개봉해서 답변한 사례도 찾아냈어요."
그는 진상조사 방해 사례를 찾았고 기자회견에도 참여했다. 회사의 진상조사 방해로 김용균특조위의 보고서 작성은 예상보다 지연됐다. 드디어 2019년 8월 19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용균특조위 조사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김미숙 씨와 이태성 씨 등 유가족들과 발전비정규직, 시민대책위 사람들도 참여했다. 사회적 관심이 큰 만큼 취재진들도 많았다. 현장조사, 자료조사, 면접조사, 설문조사, 문헌조사 등 다양한 조사 방법을 동원한 조사였기에 결과보고서의 분량도 700쪽이 넘었다. 5개 발전사와 전국 11개 석탄화력발전소, 2개 복합화력발전소를 조사했다. 시민대책위 추천 위원 7명. 정부 추천 위원 7명이 모여 격주로 회의를 하고 필요하면 매주 회의를 했다. 20회 이상의 본회의를 가졌다.
김지형 김용균특조위 위원장의 보고서 전체에 대한 개괄 발언 이후 권영국 김용균특조위 간사의 조사 결과 발표가 이어졌다.
"김용균 사고는 회사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협력업체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실제로 사진을 찍어서 일일이 시스템에서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설비) 내부에 여러 가지 소음이라든가 또는 회전체의 발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금 그림처럼 점검구 내로 들어가야만 가능했고 실제로 회사 지침에 시스템에 사진을 찍어서 구체적으로 올리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점검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발표회장에 앉아있던 김미숙씨는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얼굴을 감싸며 울음소리를 낮췄다.
"결론적으로 보면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와 같이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컨베이어벨트가 작동을 하고 있었고 사고는 개인의 불안정한 행동이 아니라 위험한 작업 환경 때문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는 회전체에) 접근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개선하거나 안전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이어 권영국 간사는 "근무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위험한 환경을 강요한 것이 민영화와 외주화 정책이며, 원·하청구조가 위험한 구조"라고 힘주어 말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공정은 '석탄하역-운탄-보일러-터빈-송전-회처리-탈황-연돌(굴뚝)'으로 이어진다. '보일러→ 터빈→ 송전'만 정규직이 맡는다. 한국서부발전을 포함한 발전 5사(서부·남동·중부남부·동서발전)는 발전소 연료인 석탄 운반(운탄) 설비에 대한 운전과 경상정비를 하청으로 민영화하고 외주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정 간 원활한 소통과 관리 통합은 어려워졌고 책임은 분산됐다. 김용균씨가 일했던 운전분야 중 낙탄 처리는 힘들고 위험한 업무였다.
낙탄은 그대로 두면 자연 발화하거나 겨울엔 얼어붙어서 컨베이어 작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원청은 공문을 통해 낙탄 처리를 일일 보고할 것을 지시할 정도였다. 가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접근하는 일은 위험한 만큼 하청노동자들이 여러 차례 개선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설비는 원청인 발전사 소유라서 개선 권한도 발전사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용균씨의 사망 사건 전에 사고 발생 부위에 대해 2번에 걸쳐 개선을 요구했지만 비용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한 발전소 소유(원청)과 운영(하청)의 분리는 안전을 위태롭게 해 산재 사고를 높였다. 2008~2017년까지 10년간 발전소에서 일어난 산재 428건 중 94%가 하청에서 발생했다.
또한 김용균특조위는 회사가 김용균 씨 등 하청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마저 제대로 주지 않고 절반만 줬다고 발표했다. 이태성 씨는 특조위 조사가 아니었다면 20년을 넘게 일한 자신도 노무비 착복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인건비로 책정해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연료 운전원의 직접노무비로 지급한 돈은 522만 원인데, 김용균 씨가 실제로 받은 돈은 226만 원이었다. 거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는 입찰을 따기 위해 이윤과 관리비 등을 거의 없애서 높은 점수를 얻어 낙찰을 받은 후, 인건비를 중간에 가로챈 것이다.
김용균특조위의 22개 권고 중 첫 번째 권고가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에 대한 직접고용 정규직화인 이유다. 그 외에도 김용균특조위는 발전회사에 정비·운영 업무의 민영화와 외주화를 철회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발표회를 마치고 김미숙 씨는 김용균특조위에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다.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혼자 일하다가 죽은 건데 기업에서는 용균이가 잘못해서 죽었다고 해서 억울함이 컸다. 구조적인 원인을 밝혀낸 특조위에 감사를 드린다."
22개의 권고, 그러나 바뀌지 않는 현장
김용균특조위의 간사를 맡은 권영국 변호사는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때도 외주화의 위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외주화로 위험관리체계는 복잡해지고 소통은 단절되어 위험은 높아진다. 김용균특조위는 발표 이후에도 2년간 권고이행을 감시하고 촉구하는 활동을 했다. 정부는 권고의 83%를 이행했다고 말했지만 핵심권고는 이행되지 않았다. 이행점검 기간이 마무리될 무렵 권영국 변호사를 만났다.
"우리는 발전소하면 굉장히 깨끗한 자동설비를 떠올리는데 직접 터빈을 돌려서 하는 발전설비가 있다면 전기를 태워서 열을 발생시키는 게 있잖아요, 석탄을 해외에서 수입해서 아주 긴 구간을 운반해서 발전 설비까지 운송하는 과정이 되게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그 구간에서 사고 위험이 높아요. 우리가 발전소 전체를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정규직이 분담하고 있는 연료를 태우는 보일러나 터빈은 조사 범위가 아니었어요. 협력업체 하청노동자들이 담당하는 부분, 연료 운반과 환경설비와 정비가 조사대상이었어요. 석탄을 태우고 나면 재가 남지요. 여러 가지 부수물이 나오는데 이걸 처리하는 환경설비가 있고, 기계가 고장 나면 정비하는 정비 분야가 있어요. 정비는 한전KPS와 여러 민간정비업체가 해요. 정비 또한 민영화 외주화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는 고용구조를 조사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안전이라고 하면 설비를 떠올리게 되는데 설비를 갖추면 안전사고를 예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설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설비를 운영하는 건 사람이에요. 안전 설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안전 설비가 작업 효율에 방해가 된다고 하면 안전 설비를 제거하고 운전하기도 하고 비용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제대로 설치하지 않고 하는 경우가 있지요. 안전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문제가 있어요. 예를 들어, 정비를 하고 있을 때 그 기계를 절대로 가동을 하면 안 돼요, 한 업체 사람으로 이루어진다면 소통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겠죠. 고장 난 설비를 수리를 하고 있다면 직접 연락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정비를 다른 업체에서 한다고 하면 소통 과정이 직접적이지 않고 한 단계를 더 거치게 돼죠. 원청업체가 직접 지시하거나 관여하면 불법파견 소지가 있으니 연락 또한 간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게 돼요. 하청이 다단계로 이루어지면 소통구조가 깨지게 돼요. 고용관계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단절되게 되지요, 철도레일을 정비하러 나갔다 사망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업체가 다르니까 언제 운행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이 되지 않아서 어이없는 사고가 나는 거거든요. 그리고 핵심적인 문제는 발전사의 설비 소유는 발전사의 것이에요, 설비 운영은 김용균 씨가 속해있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이 하는데, 설비에 대한 모든 권한은 발전사가 갖고 있어요. 늘 위험이 있다고 보고가 되는데 실제 인력공급업체일 뿐인 하청업체는 설비에 대한 아무런 권한이 없어요. 책임 공백 사태가 발생해요. 그래서 직접 고용하라는 권고를 한 거예요."
그러나 정부와 발전사는 석탄 운반 분야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정규직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에 한전이 주된 하청업체인 한전산업개발의 지분을 인수해 한전의 자회사 형태의 공공기관을 만들고 그 자회사로 운탄설비 노동자들을 고용하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한전산업개발 지분 31%를 보유한 한국자유총연맹의 반발로 성사되지 않았다. 지분 인수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물론 현장 시설은 과거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이태성씨는 컨베이어벨트가 있는 위험구간에 안전펜스가 설치됐고 작업장도 밝아졌다고 했다. 화장실과 쉼터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인 직접고용 약속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태성 씨를 비롯한 발전비정규직들은 정부에 권고 이행을 촉구하며 계속 싸울 수밖에 없었다.
착복한 노무비도 정비분야에만 지급했다. 2019년 당정 합의로 하청노동자의 노무비 계좌를 별도로 만들게끔 하는 '적정 노무비 지급 시범 사업'을 김용균씨가 일했던 운전 분야는 하지 않았다. 연료 운전원은 '정규직화 대상'이라는 이유였다. 2023년 윤석열 정부는 정규직화는 고사하고 2021년부터 제정되어 2022년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악하려고 하고 있다.
재판에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회사
김용균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3개월만인 2021년 1월 26일,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사장과 임직원, 하청업체 관계자 등 14명과 법인 2곳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에서 한국서부발전 측은 김병숙 대표 등은 현장과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김용균 씨는 소속 직원이 아니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공판이 끝난 뒤 김미숙 씨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성원들과 함께 김병숙 대표를 쫓아가 외쳤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가 있냐'고.
김미숙씨는 재판이 있기 전날이면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열댓 명이나 되는 가해자들을 보아야 하고 그들의 파렴치한 거짓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21일 공판 날, 김미숙 씨에게 진술할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는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2019년에)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척 했지만, 사고 직후부터 재판까지 일관되게 용균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재판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를 두 번 죽이고 모욕하는 과정이 되고 있어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할 뿐 아니라 합의한 김용균 추모조형물 설치도 방해했다. 회사는 추모조형물의 위치를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두려고 했다. 1인 시위 등의 활동으로 겨우 2021년 4월 28일 태안발전소 정문 앞에 세워졌다. 힘차고 당당한 모습으로 일터의 위험을 지켜보고 있는 감시자처럼 서 있다. 김용균의 조형 밑에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포스트잇을 형상화한 노란 종이들이 있다.
김용균재단은 시민들과 함께 엄중처벌을 촉구하는 법원 앞 피켓 시위를 이어 갔다. 2022년 2월 11일, 드디어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원청 대표인 김병숙 전 대표에게 "사망원인인 컨베이어 벨트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하청업체와의 계약상 문제점을 구체적인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업무상 과실치사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이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되기 이전이라는 것을 고려해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재판부는 고용관계가 없으니 무죄라고 했으나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원청에 22개 위험작업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하청업체 대표에게도 징역을 1년이라는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엄정한 재판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반대였다.
2023년 2월 10일 대전고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최형철)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김병숙 전 대표, 그리고 권유환 태안발전본부장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내린 서부발전에 대한 벌금 1천만원도 무죄로 바뀌었다. 원・하청 관리자들에 대한 형량도 낮아졌다. 검찰의 구형보다 낮았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형량이 낮아지는 경향은 김용균 재판에서도 똑같았다. 김미숙씨는 재판장을 향해 "재판이, 재판장이 노동자들을 죽인다"고 외쳤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김미숙씨는 그러나 주저앉지 않고 힘내서 싸우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선고에 함께 했던 김용균사건 피해자 대리인으로 참여한 박다혜 변호사도 2심에서 이 정도로 후퇴할지는 몰랐다. 1심 판결 때도 김미숙 씨에게 윗선에게 책임을 덜 지우는 게 재판부의 전형적인 판결이라고 했지만, 2심 결과는 박 변호사도 실망스러웠다.
사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업무상 과실치사죄 재판은 모두 형사사건이라 피해자인 노동자나 유가족은 형사소송법상 당사자가 아니다. 형사사건은 검사와 피고인인 회사나 회사대표 간에 이루어지는 공방이다. 그러다 보니 유족들이나 노동조합 그리고 피해자 대리인단은 방청을 통해 재판 진행을 확인하고 검찰에게 재판에 필요한 서류나 증거 등을 전달한다. 형사소송법상 소송기록에 대한. 재판에서 피해자는 제3자이기 때문에 재판장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 기록 등사가 전혀 불가능한 경우도 생긴다. 피해자의 진술권도 법에는 규정되어 있지만 얼마나 보장할지는 재판장이 정한다. 그나마 이 사건은 사회적인 관심이 높은 사건이라 재판부가 김미숙 씨에게 진술권도 보장했고 소송기록 등사도 가능했지만, 판결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김미숙 씨는 재판부가 발언권을 주고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 좋은 결과를 기대했다면서 더 배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산안법 위반 형사사건 당사자는 가해자예요. 지금 법원에서 통용되고 있는 산안법 법리들을 보면 우리가 당사자로서 관여하지 못한 채 쌓여온 선례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계죠. 우리가 재판부에 서면 의견서나 증거를 내기는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법상 증거가 아니라 참고자료일 뿐이거든요. 그래도 수사검사가 1, 2심 공판까지 담당하면서 증인신문도 했고, 피해자인 우리와 소통도 잘 돼서 이렇게까지 결과가 나쁠지는 몰랐어요."
박다혜 변호사는 산재사망사건은 수사기관과의 충분한 소통이나 법원에서의 진술권과 정보접권 보장 이런 게 없이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측은 김용균특조위의 조사 결과가 있음에도 재판에서 '시키지 않은 일은 했다'며 혐의를 모두 잡아뗐다. 합의에 따라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는 산재처리도 다했음에도 재판에서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 회사는 처벌은 면하겠다는 강한 의자를 드러낸 것이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은 처벌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 처벌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그러면 안전한 노동 현장으로 바뀔 수 없으니까요. 예방 대책을 만들라는 것이죠. 그리고 기업주를 처벌하면 기업 경영이 위축된다는 말도 앞뒤가 맞지 않죠. 법을 위반해서 사람을 죽이는 경영을 하는 기업까지 우리 사회가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요?"
박 변호사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안전보건의무를 위반해서 산재가 발생한 것이니 고의범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과실범에 준해서 처벌을 하는 잘못된 관행이 있다고 했다. 법원의 판결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일종의 시그널이다.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이나 사업주가 처벌받는 것을 보여 줄 때 일터는 안전하게 바뀔 수 있다. 어쩌면 재판부도 공범이라는 말은 상징이 아니라 사실일지 모른다. 회사 중간관리자만 처벌받는 현실에서 경영자는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업 경영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국무총리 산하에 특별조사위까지 꾸렸던 김용균 산재사건조차 기업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끝이 난다면, 그것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판 투쟁에 힘을 쏟는 이유다. 대법원 판결이라도 제대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미숙 씨는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대법원에 민원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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