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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라는 '불편한 진실', 체제 전환이라는 '위험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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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라는 '불편한 진실', 체제 전환이라는 '위험한 진실'

[초록發光] 각자가 제역할 찾기 나서야

"4월 14일 금요일, 일터와 일상을 멈추고 정부세종청사로 향하는 사회적 파업은 우리의 삶을 지키는 파업입니다."

이 문구는 수많은 단체와 개인이 참여하는 414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가 내건 압축적 표현이다. 정의로운 탈탄소 시스템 전환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작년 924 기후정의행진의 성공적 흐름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 초 수립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보건대, 그리고 곧 확정될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의 절차 하자와 내용 부실로 예상컨대 "미래를 위한 결단"은커녕 현 정권은 임기 내 실행해야 마땅할 전환적 과제조차 방기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런 배경에서 414기후정의파업이 적당한 시점에서 기획되고 있다.

924 기후정의행진은 요구사항을 다음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를 종식해야 한다. 둘째, 모든 불평등을 끝내야 한다. 셋째, 우리가 길이고 우리가 대안이다. 이에 비해 414기후정의파업은 보다 구체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데, 시민들의 필수적 전기/가스 요금 인상 철회가 요구안 작성 전후로 조직위 내외부에서 커다란 쟁점으로 부상했다.

2월 28일 기후정의파업 대정부 요구 발표 기자회견에서 제시된 6대 핵심 요구와 13개 영역별 구체 투쟁요구에 "시민들의 필수적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철회하고, 존엄한 삶을 위한 에너지 기본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라"가 포함됐다. 그러나 요금 인상 철회 주장을 둘러싸고 형성된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조직위는 내부 토론회(3월 7일)와 쟁점 토론회 "기후위기 시대, 공공요금 인상 어떻게 볼 것인가"(3월 9일)를 연이어 개최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문구는 "에너지 공공성 강화로 전체 에너지 수요를 대폭 감축하고, 시민들의 필수적 에너지를 탈상품화해 에너지 기본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라"(6대 핵심 요구)와 "대기업들의 에너지 요금을 충분히 인상하며 시민들의 필수적 전/가스 요금 인상을 철회하고, 존엄한 삶을 위한 에너지 기본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라"(13개 영역별 구체 투쟁요구)로 수정 보완됐다.

전체 맥락에서 수정안은 924 기후정의행진의 화석연료와 생명파괴의 체제 종식 요구안 중 다음과 같은 내용과 일맥상통하다 볼 수 있다. "화석연료의 개발, 공급과 소비에 대한 국내외의 공적 자금 지원과 보조금 지급을 즉각 중단하여야 한다. 이를 관련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과 시민들의 에너지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화석연료 기업들의 폭리 취득을 중단하고 거둬들여야 하며, 이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생태-사회 영역과 생산-소비 영역에서 에너지 요금이 갖는 의미와 위상에 대한 심층 검토는 다음 과제로 남겨야겠지만.

이 지면에서 해당 쟁점과 논쟁 지점들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기후정의운동의 진화와 학습이라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괜찮겠다 싶다. 참고로 필자는 최근 요금 인상 철회를 둘러싼 논란은 무엇보다 요구안의 구성 체계와 서술 방식에서 비롯한다고 평가한다. 물론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과 대안 구상도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 살펴볼 주제이지만, 새삼스럽게 새로 등장한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전환 방향과 경로 그리고 전략과 전술을 부단히 갱신하고, 기후변화라는 불편한 진실 이상으로 체제 전환이라는 위험한 진실을 더 넓게 나눠야 한다.

국내에서 기후운동은 비상선언과 기후파업 등의 담론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2019년부터 서서히 대중화와 급진화를 거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운동의 분화는 당연한 현상이라 '따로 또 같이' 판이 벌어진다. 치열한 노선투쟁은 운동의 성장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자면 구체 사안에 대한 서로의 관점과 입장이 개방적으로 오고 가야 하고, 각각의 언어와 문법을 진지하게 이해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에너지 기본권과 기후정의가 충돌한다는 인식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제안하는 것처럼 에너지 가격과 요금은 전환의 종합적 비전을 전망하면서 패키지 프로그램 속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실제로 에너지 요금 및 조세 체계 개편에 대해서 생산적인 제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물론 전환 방향과 경로에 대한 진지한 접근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시민사회와 싱크탱크에 유입되는 재정적 지원 중 일부는 그동안 축적된, 그러나 산개된 이론적, 정책적 자산과 실천적 사례들을 재조명하여 사회적으로 재활용하는 데 쓰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두는 농어업의 에너지 요금에 대한 해법도 시급하다. 농촌 주택에 대해서는 일정한 대안이 존재하지만, 농어업 면세유와 농사용 전기요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원론적인 수준에 그친다. 기후위기-식량위기를 대비하는 데 적합한 농어업의 정의로운 탈탄소 전환이라는 틀에서 심화 토론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진단과 처방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와 동시에 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전문가 집단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고, 점점 그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매튜 휴버(Matthew T. Huber)는 <계급전쟁으로서의 기후변화>(Climate Change as Class War, Verso, 2022)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이외에 전문가 계급(professional class)을 상정할 정도로 이들의 기후정치가 급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와 정책 기술관료만이 아니라 엔지오와 싱크탱크, 급진적 반체제 단체 소속 연구원과 활동가 모두가 전문가 계급에 속한다고 본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시민사회 또는 민간 진영의 싱크탱크가 부쩍 활성화되고 있다. 정책 보고서 유통과 민관 거버넌스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입지를 굳힌 연구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싱크탱크들은 924 기후정의행진와 414기후정의파업 등의 대중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 역시 연구소와 단체들이 내세우는 각자의 원칙과 성격에 따라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개입하고 있을 것이고, 반대로 거리를 두는 곳도 있을 것이다. 414기후정의파업이 쏘아 올린 요금 인상 철회 논쟁에서, 나아가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학습 과정에서 기후, 에너지, 녹색, 이런 타이틀을 달고 있는 싱크탱크들의 제 역할 찾기를 시작하거나 재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사체든 법인이든, 자체적인 목표가 있겠지만, 사회적 존재 이유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지난해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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