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튀르키예-시리아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현재도 무너진 건물 잔해에 많은 이들이 갇혀 있다니 참담한 심정이다. 희생자들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추위와 굶주림 등 '2차 재난'으로부터 생존자들을 지키는 일에 우리 함께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월 말 '필수의료지원대책'(이하 '지원대책')이 발표됐다. 앞서 공청회 때 공개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딴에는 나름대로 공들여 만든 대책이겠으나, 관련 단체와 언론으로부터 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의사인력 확보에 관한 구체적 방안이 없는 게 주요 한계로 거론되고 있다. 또 정책 추진에 필요한 재원 확보 계획의 부실함도 실효성을 의심받는 대목이다. 공공병원 확충이나 일차의료와 관련된 정책이 없는 점, 그리고 의료사고를 낸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 계획 등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대책을 놓고 "땜질식 처방",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쏟아지는 이유들이다. 우리는 특히 "기존 정책의 재탕"으로 가득한 "무성의한 대책"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우선 정부가 어떻게 이름 짓든 간에 이번 대책이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책의 목표가 "전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 필요한 필수의료를 제공받는 체계 구축"이기 때문이다. 이는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전임 정부와 차별화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지만 '공공보건의료'나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는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강화란 모두가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자는 것으로, 모든 정부의 공통된 책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지원대책 역시 그동안 추진되었던 대책들의 연장선상에서 비교 평가해야 한다.
지난 논평에서도 지적했듯이, 일부 정책을 제외하면 거의 다 기존 대책에서 제시되고 추진된 적 있는 계획들이다.(☞ 바로 가기 : 1월 16일 자 논평 '윤석열표 '필수의료 강화론'은 허상에 불과하다') 지면의 한계로 일일이 전례를 언급하기 어려울 뿐, 지난 몇 년간 발표된 정부 대책들을 살펴보면 유사 정책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병원 간 순환당직 체계'의 구축 계획이 대표적 예인데, 연도만 가리면 2023년에 발표된 계획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이미 '야간 및 휴일 응급의료 순환당직제'와 같은 이름으로 여러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인데도 새삼스럽게 대책에 포함되었다.
공무원들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앞서 시행된 정책들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물론 기존 정책을 보완하여 지속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관건은 이러한 정책 접근만으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필수의료인력 부족과 의료취약지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아마 정부 내부에는 어떤 형태로든 기존 정책들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한 결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를 밝히지 못하는 것은 내세울 만큼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데도 또 다시 채택한 것은 마땅히 더 좋은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의료기관 간 연계협력을 위한 네트워크 지원' 계획을 생각해보자. 이 역시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여러 형태로 시도된 것이다. 그간 경험으로 볼 때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민간의료기관들에게 "좀 더 보상해 줄께"라며 유인하고 설득, 요청(때론 호소)하는 것만으로 협력적 거버넌스가 원활히 작동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제대로 된 평가 없이 기존 정책을 답습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는 원인 진단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으로, 현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건드리지 못한 건 이번 대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가기 : 2018년 10월 8일 자 논평 ''공공보건의료 강화'는 면피용?')
필수의료 인력난과 의료취약지 문제는 체계 차원의 문제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보건의료체계의 시장화(영리화)와 지역소멸을 초래하는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구조적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체계의 문제는 체계의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책은 늘 개별 정책과 프로그램, 사업 중심이다. 똑같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는 가운데 사태는 점차 악화되고 있다. 지역 보건의료 생태계가 와해되면서 겪게 되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언론 취재를 통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지 않은가?
정치적 정당성을 크게 위협받지 않는 한, 정부로서는 굳이 골치 아픈 구조적 문제를 풀어야 할 동기를 갖기 어렵다. 그러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엇비슷한 논의와 대안을 반복하는 '하루살이'식의 5년짜리 대책들만 양산되는 것이리라. 지역 소멸이 빨라질수록 '소리 없는 아우성'마저 잦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시간도 국가 편이다.
국가는 '국민연금 고갈'을 말하듯이 최소한 솔직하게 고백이라도 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지역보건의료체계는 조만간 붕괴될 것이라고. 여러 가지 유인책을 써 보겠지만 보상도 일정 수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렇게 해도 안 되면 결국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지원대책에 담긴 교훈은 이런 게 아닐까? 의료취약지에 살고 있다면 큰 병원이 있는 대도시로 이주할 것. 경제활동 등의 이유로 당장 떠나기 어렵다면 질병에 취약해지는 노후를 대비해서라도 대도시에 꼭 집 한 채 장만할 것. 이런 자구책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슬픈 합리성이고 통치성이다.
암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번 대책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의료취약지로 불리는 그 곳에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그게 미래의 나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공공보건의료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공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만큼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 중 대부분이 한번쯤 의료비 부담과 과잉진료, 수도권을 비롯한 타 지역으로의 원정 진료로 인한 불편과 불안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흐름을 방치해 두면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그러니 아쉬운 우리가 나서서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강화'라는 우물을 파야 한다. 쳇바퀴 돌 듯 더 이상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 실패가 명확히 보이는 길보다 오래 걸리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
체계를 이야기하면 꼭 따라붙는 반론이 구체적 대안을 말하라는 것이다. 체계에 집중하자는 제안은,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먼저 분명히 그리고, 여기에 맞는 보건의료체계를 과감하게 구상한 다음,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차근차근 따져보자는 것이다. 지불보상제도를 어떻게 바꾸고, 건강보험 보장률을 몇 퍼센트 올리고 하는 식의 성급한 환원주의로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체계적 관점에서 볼 때 이미 분명한 정책대안들도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공공병원과 공공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공공보건의료의 '체계적 효율성'을 확인했다. 동시에 공공보건의료기관과 인력의 절대 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민간 병의원들에 막대한 공적 재원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도 목도했다.
'평시'라고 해서 공공보건의료의 체계적 효율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재 5%에 불과한 공공병원과 부족한 공공보건의료인력을 양적으로 '상당한(critical)' 비중으로 늘리면 긍정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규모와 질, 접근성 측면에서 민간 병원들과 '실질적' 경쟁을 할 수 있는 정도로 공공보건의료를 확충하면 의료시장의 노골적인 영리추구 행태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건강의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김창엽 지음), 675쪽)
이렇게 보건의료체계의 영리성을 구조적으로 통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정책수가만으로 필수의료인력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시장이 원하는 수준만큼 경제적 보상을 올려주면 급한 인력을 확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전적 인센티브가 주요 수단으로 정착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의사를 철저히 돈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전락시키면서 이타심이나 사명감과 같은 내재적 동기를 아예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센티브에 의존하여 인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반면 공공병원과 인력 등 공공보건의료자원을 확충하면 안정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공성을 갖춘 의사상(像)에 관한 사회문화적 규범의 강화도 기대할 수 있다. 우리가 체계의 차원을 넘어서, 규범과 가치, 문화를 아우르는 레짐(regime)의 차원에서 공공성 강화를 생각해야 되는 이유다.
공공보건의료 확충을 위해 무슨 '혁명적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효과가 분명한 만큼 방법도 간단하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필요한 지역에 공공병원을 신설하고 관련 인력들을 목적의식적으로 양성하고 기존 공공병원들의 역량을 강화하면 되는 것이다. 당연히 국립중앙의료원이 '임상적 리더십(clinical leadership)'을 갖출 수 있는 방향으로 신축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
물론 공공보건의료 확충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공공보건의료의 확충과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개선은 선후 관계가 아니라 양방향적 인과관계라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즉 인식 개선이 동반되어야 공공보건의료 확충 목표도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체계적 접근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앞서 말한 구조적 원인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문제에까지 맞닿아 있다. 전체 사회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한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체제 차원에서 양산되는 병폐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예컨대 지역보건의료체계의 구축은 소멸위기에 있는 지역 경제를 유지시키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대책이 필수의료 기반을 강화하는 "첫 걸음"이라고 말하는 정부를 향해 언제까지 "제자리걸음"만 할 것이냐고 물어야 한다. 또 이번 대책에서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 중장기 정책방향을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 시 반영하겠다"고 밝힌 정부를 향해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역사에 기억될 만한 '마스터플랜'을 만들라고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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