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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교수의 성폭력 사과 약속은 1년 만에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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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교수의 성폭력 사과 약속은 1년 만에 증발했다

[당신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 ③ 연세대 문과대학 '미투' 사건

벌써 1년이다. 연세대학교 A교수가 자신의 강의 시간과 뒤풀이 자리에서 저지른 성폭력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약속한 뒤 어느덧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신고 당사자들은 아직까지도 가해자 A교수의 사과를 받지 못했고, A교수는 여전히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때문에 가해자의 사과와 학교 당국의 적절한 징계를 요구하는 연세대 학생들의 공동행동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 없이 흘러간 1년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학생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A교수의 1년은 가해 사실을 감추고 부정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는 2017년 4월에 열린 학과 간담회에서 진술했던 가해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 약속을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번복했다. 사건 조사인이자 그의 동료인 S교수는 같은 해 12월, 일부 학생들로부터 "A교수의 행동이 성폭력이 아니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녹취하였으며, A교수는 이 녹취록을 대학원 강의에서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4월, 학교 건물 곳곳에 허위 사실을 담은 자보를 게재하는 등 2차 가해를 일삼으며 또 다른 피해를 양산했다. 그러나 결국 A교수가 학교로부터 받은 징계는 감봉 1개월 정도의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많은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된 중대한 사건인 만큼 진실성 있는 조사와 신중한 태도로 사건 처리에 임해야 할 학교가 사실 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발언으로 사건 해결의 진척을 저해한 사실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이렇듯 피조사인인 A교수와, 편파적인 태도로 조사에 임했던 S교수를 위시한 기타 동료 교수들, 그리고 징계에 미온한 태도를 보인 학교 본부까지 세 주체 모두 학생들의 요구를 묵살하며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 모든 과정은 교수 권력과 젠더 권력이 작용한 결과다. 당초 피해자들이 요구한 것은 가해자 본인의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과 '약속'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번복되었고 가해 사실은 부정당했다. A교수의 무책임한 태도와 더불어 지지부진한 사건 처리 과정 속에서 피해자들이 겪었을 2차 피해의 정도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일련의 진행 과정을 지켜본 학생 사회는 어떠했는지 또한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권력 관계 속에서 용기를 내어 A교수의 가해 사실을 공론화한 피해자들과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학우들은 함께 연대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자의적으로 축소하는 발언은 물론 가해자의 가해 사실을 옹호하는 발언 등의 또 다른 2차 가해가 자행되기도 했다. 우리는 개개인의 정당한 인간적 권리를 보장받으며 학문적 자유를 누려야 할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조차 명백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교수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 '이 정도가 무슨 성폭력이냐'라는 식의 기만과 피해 축소 발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피해 사실을 피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사과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또 다른 2차 가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왔고 학교 공동체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그동안 연세대학교뿐만 아니라 서울대, 동덕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에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이슈화되었고 이를 규탄하는 행동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대학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 가운데 이처럼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공론화한 사건만 헤아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나 그중 가해자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거나 합당한 징계를 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대하며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인가.

목소리에 대한 무응답은 우리를 상실감에 빠뜨린다. A교수가 본인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약속한 간담회 이후, 피해 학생들은 사과 요구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요구안과는 다른 내용의 -A교수가 피해 학생을 특정할 수 있는 일방적인 방식의- 대면 사과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 학생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약속된 사과 이행을 위한 간담회를 요청하고 올해에는 해당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체가 조직되어 여섯 차례의 집회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교착 상태에 있다. 피해 학생들의 사과 요구안을 거절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A교수와 학교 당국의 비윤리적인 행태는 그 자체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런 태도는 학내에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사건 처리와 사과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신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학생 사회에 안겨준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해당 사건에 대한 조속한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동류의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우리 중 과연 그 누가 용기 있게 성폭력, 불합리한 권력 관계 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고 사과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 그 해결 과정에서부터 교수-학생 간의 권력 관계가 명확히 드러난 해당 사건의 본질을 살펴보았을 때, A교수와 학교 본부를 향한 학생 사회의 목소리는 그 권력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더 크게 모이고 더 멀리 울려 퍼져야 한다. 그 목소리는 결코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권력과 무관심의 벽을 넘어 더 평등하고 완전한 공동체를 이룩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연세대학교 공동체와 피해 학생에게 불신과 불안감을 안겨준 A교수 사건에 대한 학생 사회 전 구성원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한다.

▲ A교수 규탄 집회 ⓒ 연세대 A교수 성폭력 대응을 위한 학생연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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