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3일 현재 거론되는 당권 주자들에 대해 "다들 성에 차지 않는다"며 차기 당대표의 조건으로 수도권과 MZ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그 인물로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지목했다.
7일 한 장관은 당대표 차출설에 대해 "중요한 할 일이 많아 장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분명히, 단호하게 말씀드린다"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법무부 장관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당 대표 차출이냐'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한동훈 차출설이 일단락되는 듯하다. 그러나 당대표 선출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예측은 금물이다. 유승민은 절대 안 되고, 안철수는 믿을 수 없고, 그 외 주자들도 다들 성에 차지 않으면 결국 한동훈을 등판시켜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한 장관이 수행할 '중요한 할 일'이 과연 무엇일까.
안철수의 '민주당 궤멸' 발언, 누구 생각일까
지난 8일 안철수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을 궤멸시키겠다"고 했다. 이례적인 강경발언이다. 최근 그는 "윤석열 정부 성공에 가장 절박한 사람"이 자신이라면서 자신이 당대표가 되어 총선에서 압승해 "반드시 민주당을 궤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한때 몸담고 당대표까지 했던 정당에 대해 이러한 막말 수준의 다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그는 윤석열 정부의 '인수위원장,' '연대보증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친윤'을 자처하고 있다. 대통령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애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발언은 사실상 윤 대통령을 향한 것이고, '당신이 바라는 것을 내가 해내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을 궤멸시키겠다'는 발언은 왜 나왔을까?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기 바로 그것이기 때문 아닐까.
7일 한 장관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에 대해 "검찰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면서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의미의 통치 행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인정하지 않고 법리로만 따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아울러 그는 "대북송금 특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전 대통령이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관여한 것이 드러난다면 유감스럽지만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며 과거 문 전 대통령의 발언까지 소환했다. 직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명분도 이미 확보했음을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한 장관의 발언, 윤 대통령의 생각 아닌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는 한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불만을 거친 언어로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임기 5년 짜리 대통령이 겁도 없이 감히 검찰을 건드린 짓은 검찰에 대한 보복이자 범죄라는 것이다. 정치를 검찰의 아래에 두고 가소롭게 여기는 듯한 태도마저 엿보인다.
지금의 검찰은 노무현을 수사했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장본인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리 좋은 직업이 아니다. 이승만은 하야했고, 장면은 실각 후 감옥에 갔고, 박정희는 부하에게 살해됐고, 최규하는 하야 당했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함께 감옥에 갔다. 김영삼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덕에 무사했고 김대중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대신 감옥에 가면서 전직 대통령이 무사한 전례가 만들어지나 했는데 다시 노무현이 수사 받다가 유명을 달리했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중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갔다.
퇴임하고 무사한 대통령 찾기가 어려운 것이 한국의 정치사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 수사하고 감옥 보내는 것이 관례화되다시피 했다. 결국 지금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조여드는 반복되는 상황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문재인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다 걸겠다. 그쪽은 무엇을 걸 것인가!
민주당의 씨를 말리려는 것인가
지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풍전등화에 처했다. 제1야당 대표를 그렇게 쉽게 제거할 수 있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부담으로 치면 전직 대통령 보다 훨씬 쉬운 게 야당 대표다. 이 대표의 말처럼 검찰의 연출력이 조금 뒤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무수한 대통령들을 결국 감옥에 보낸 집념의 검찰이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 게다가 이 대표에 대해 수사 중인 혐의도 한두 건이 아니다. 어떻게든 기소할 것이다. 그러면 최근 들어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법원이 구속을 실현하고 유별나게 민주당 계열 대권주자들에게만 논란의 유죄판결을 해온 사법부가 실형을 선고할 가능성도 있다. 멀리는 이광재, 한명숙이, 가까이는 김경수가 그렇게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시도했던 검찰개혁이 결국 실패했고 윤석열 정부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무능의 대가를 처절하게 치러야 할 상황에 처했다. 박지원 전 원장의 표현처럼 검찰이 이재명 대표는 비리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종북으로 제거할 모양새다. 사실은 민주당의 씨를 말리려는 것이다.
집이 불타오르는데 개울에서 가재 잡는 사람들
최근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외치며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다. 이해는 한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고 당대표까지 되니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최다 득표자이고 당원 77.77%의 지지로 당대표가 된 역대 최고 득표자이다. 20년 집권을 떠들다가 정권도 빼앗기고 당권마저 이재명에게 간 것은 기존 민주당의 무능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잘 알 것이다. 5년 짜리 대통령이라는 점을. 이런 상태로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민주당이 20년 동안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려면 지금 민주당을 철저하게 궤멸시켜야 한다. 당연히 문재인과 이재명을 제거해야 하고 민주당을 국민들에게 비리집단, 종북집단으로 각인시켜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기 집이 불타오르는데 개울에서 가재 잡는 격이다. 이재명이 물러나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왕따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가면 왕따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곧 새로 생기듯, 이재명이 물러나더라도 새로운 당대표는 곧 윤석열 검찰의 표적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아래 야당 대표를 할 정도로 겁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이해하자. 그리고 지금 민주당이 불안하고 어수선한 원인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다. 한동훈 장관은 그 대리인이고 그의 수족은 특수부 검사들이다. 과거 중수부 칼잡이들이 노무현에게 덤벼들었고 결국 우리는 그 끝을 보았다. 야당은 지금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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