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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면'이란 맥거핀, 이 황당 '정치극'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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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면'이란 맥거핀, 이 황당 '정치극'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기자의 눈] 대통령 심기 지키자고 '언론 탄압 프레임'으로 걸어들어간 與

"그것은 스코틀랜드 식의 이름일 수 있다. 기차에 탄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말한다. 저 화물 선반에 놓인 꾸러미가 뭔가요? 다른 사람이 답한다. 아, 그건 맥거핀입니다. 물었던 사람이 또 다시 묻는다. '맥거핀이 뭐죠?' 다른 사람이 답한다. '그게,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사자를 잡는 도구입니다.' 물었던 사람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스코틀랜드 고지대엔 사자가 살지 않는데요?' 다른사람이 답한다. '그렇다면,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니군요.' "

알프레드 히치콕이 1939년 강의에서 맥거핀(MacGuffin)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어거스트 맥파일이란 영국 극작가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영화 연출 기법인 맥거핀은 극을 전개하는 데 촉발제가 되는 장치이지만, 극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소품일 수도 있고, 이야기일 수도 있고, 대사일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일 수도 있다. 맥거핀은 언뜻 극에서 매우 중요한 것처럼 보이면서, 관객의 시선을 잡아 끌게 된다. 관객은 일순간 플롯의 촉매제로서 맥거핀에 집중한다. 그러나 극이 전개되는 동안 맥거핀(소품이든, 행위든, 대사든, 사건이든)의 실체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까지 결말에 일말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채 산화한다. 영화 <미션임파서블3>에서는 '토끼발'이라는 아주 위험한 생화학 무기가 등장하지만, 극의 전개는 이 '토끼발'의 정체와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간다. 토끼발이 뭔지,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그게 사자발이든, 노루발이든, '쓰레빠'든 전혀 상관 없다. 실제로 토끼발은 영화가 끝날때까지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건 이 거대한 정치극의 맥거핀이다. 이 말 자체는 어떤 의미도 담지 않고 있으며,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XX' 부분은 아예 명확하지도 않고, '바이든'이란 부분은 '날리면'이라고 한다. '이XX' 발언이 과연 존재했느냐? '바이든'이 아니고 '날리면'이 맞느냐? 가장 중요하게 여길만한 팩트는 이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그 자체로써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다. 여권의 설명대로 누군가 지나가듯 한 '혼잣말'이고, 그 단어가 발화자의 입에서 나왔는지도 불분명하며, 실제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미국 국익과도 전혀 상관 없는 말이다. (미 국무부는 윤 대통령 발언 보도 이후 '한국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고 발표했다.) 아니, 이 발언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예 뉴욕 순방이란 게 실재했는지 아닌지 여부도 모두 다 어찌됐든 상관 없다.

▲MBC 보도 화면 갈무리 

중요한 것은 이 '맥거핀'이 등장한 이후의 극적 전개다. 대통령실은 지난 11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며, MBC 기자를 콕 찝어 '전용기 탑승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 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관련 왜곡·편파보도가 반복되어 온 점을 고려해 취재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대통령실은 다른 모든 기자들에게도 '공평하게' 취재 기회를 제한했다. 김건희 영부인의 일정은 물론 대통령 일정까지 상당수가 '전속 취재'로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영상은 140여개 매체가 거의 동일하게 보도한 것인데, 그런 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윤 대통령의 '선택' 그 이후다. 이 사태로 국제 기자단체까지 성명을 내는 등 '언론 탄압' 논란이 국경 가리지 않고 뻗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8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악의적 행태를 보였다"라고 말한 데 대해 MBC 기자가 "뭐가 악의적이냐"고 등 뒤에서 목소리를 높여 질문을 했다는 게 표면적인 촉발제였다. 이후 대통령실 비서관과 기자의 설전이 이어졌는데, 이 설전은 '바이든이냐 날리는이냐', '이XX 발언이 들리느냐 안들리느냐'의 설전과 거리가 영 먼 것이다. '쓰레빠'는 사실 '용산 시대'의 상징이다. '구두가 아닌 슬리퍼 신은 채로도 취재할 수 있는 대통령의 일상적 브리핑'은 그러나, '쓰레빠 질질 끌고' 나와 '주총장 망가뜨릴 기회를 찾고 있는 총회꾼'들의 장으로 둔갑했다. 어감이란 참 중요하다.   

'뭐가 악의적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내 놓았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MBC 보도가 악의적인 10가지 이유, 이른바 '악의 10조'를 발표하고 대통령실이 MBC 기자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상황에 당면하기까지의 일을 적어 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윤 대통령 뉴욕 비속어 논란' 관련 반박 외에도 몇 가지가 사례들이 더 붙어 있다. 점점 일은 커지고 있고, 극의 전개는 어지러워지고 있다.

"8. MBC의 각종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대통령 부부와 정부 비판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역을 쓰고도 대역 표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악의적입니다.

9. MBC의 가짜뉴스는 끝이 없습니다. 광우병 괴담 조작방송을 시작으로 조국수호 집회 ‘딱 보니 100만 명’ 허위 보도에 이어 최근에도 월성원전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줄줄 샌다느니, 낙동강 수돗물에서 남세균이 검출됐다느니 국민 불안을 자극하는 내용들을 보도했지만 모두 가짜뉴스였습니다. 이러고도 악의적이지 아닙니까.

10.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 공영방송으로서 성찰하기보다 '뭐가 악의적이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바로 이게 악의적인 겁니다."

8, 9, 10번은 '뉴욕 비속어 논란'과 관계 없는 것이다. 영부인 논란 보도를 지적한 데에서는 대통령의 '사적 감정' 같은 게 어른거린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PD수첩 사태, 문재인 정부의 '조국 사태'까지 MBC의 그간 보도들을 문제삼았는데, MBC 광우병 관련 보도가 2008년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무려 14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시절 MBC 언론 보도 내용은 '악의적' 대상에서 빠진 것 같다.) 이 사안을 두고 윤 대통령 참모들은 지난 주말 (무려) 5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를 거쳐 도어스테핑을 이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연합뉴스, 11월 21일자) 이게 그럴 만한 일인가? 2008년의 PD수첩 보도까지 문제삼았다는 것은, MBC를 사실상 '고질적 적폐'로 본다는 이야기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로 시작한 파문은 MBC의 14년치 보도의 문제로 비화됐다. 다들 아는 일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에야 출범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나든지 간에,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됐다. 맥거핀은 작동했다. 극의 전개는 언론 자유 논란으로 확장됐고, 극의 장르는 '복수극'에 가까워지고 있다. 

대통령의 '비속어 사과' 요구도 자연히 의미 없는 일이 되어 간다. 이를테면 지금 여권에선 MBC 민영화, YTN 민영화 주장들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 온 '시장주의'의 취지에 맞는 흐름이라면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과 여권, 대통령실이 갖고 있는 MBC에 대한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만큼 향후 그들이 추진할 언론 정책은 불순하단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자초한 일이다. '언론 개혁' 명분을 '언론 탄압' 프레임에 가둬놓은 여권은, 대통령의 '심기'를 위해 최소한의 '전략적 판단'까지 팽개쳤다. '대국민 소통'을 위해 '용산 시대'를 열었다는 대통령의 원대한 명분은 어디로 갔는가. 이 모든 게 '날리면' 이란 맥거핀에서 시작된 일이다. 

윤 대통령의 지난 5월 10일 취임사 전문을 다시 들춰봤다. '반지성주의'와 '자유'가 눈에 띄었다. 현재 상황에 비춰볼 때 곱씹어볼 만한 문장들이 많다.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냥 윤석열 정부 출범을 위한 '맥거핀'에 불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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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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