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당국이 국가에 반하는 선전을 퍼뜨렸다며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체포했다. 반정부 시위에 연대를 표하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 출전 선수들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이란 시위 진압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은 24일(현지시각) 이란 국영언론을 인용해 이란 보안군이 이란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부리아 가푸리(35)를 국가대표팀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국가에 반하는 선전을 퍼뜨린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쿠르드족 출신인 가푸리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쿠르드족 살해를 멈춰라! 쿠르드족은 이란 그 자체고 쿠르드족을 죽이는 것은 이란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내용을 게시했다. 이란에선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끌려 간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22)의 의문사를 계기로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시위를 외세에 의한 선동으로 규정한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이 집중적으로 희생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란 서부 쿠르드 거주지 사난다즈 출신인 가푸리는 수년 간 여성의 축구장 출입 제한, 미국 제재로 인해 이란인들이 받는 고통 등에 대해 이란 정부에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 왔다. 최근에는 현재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 희생자들을 애도하기도 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가푸리는 이번 월드컵엔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체포는 카타르 월드컵 출전 중인 이란 대표팀이 자국 내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듯한 신호를 거듭 보내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이란 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21일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이란 국가 제창을 거부하며 침묵을 지켰다. 이는 시위에 연대하고 정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란 주장 에산 하지사피(32)는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고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숨진 시위 참여자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가푸리 체포가 이란 대표팀에게 더 이상 이 같은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경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란 대표팀은 25일 웨일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날 이란 대표팀 감독 카를로스 케이로스는 감독 및 선수들에게 거듭되는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며 취재진에게 "다른 나라 코치들에게도 (정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어떠냐. 왜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팀 감독에겐 영국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해 여성들을 내버려뒀냐고 묻지 않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조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24일 진행된 국제 진상조사단 구성에 관한 투표에서 47개국 중 한국, 미국, 프랑스를 포함한 25개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중국, 아르메니아 파키스탄 등 6개국이 반대표를 던졌으며 16개국이 기권했다. 22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지난 9월16일부터 이어진 이란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40명이 넘는 어린이를 포함해 300명 이상이 숨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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