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후 시작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으로 최소한의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이후 공고화 과정을 거쳐 왔다.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노태우 정권 때의 공안정국을 비롯하여 노동자의 권익과 평등권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적 격차 등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달성은 요원했다.
그러나 주기적이고 정기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선거의 실시 등 한국사회가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제법 있었다.
보수와 진보 정권의 수평적 교체로 정당체제의 불안정, 여야 대치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의 성숙함과 경제력에 힘입어 정치사회의 경직성이 완화되곤 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사회와 정당체제의 불안정, 진영 간 극단적 대치와 정치 실종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야의 대치가 어느 정권 때보다 심화되는 추세인 데다 실제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정치의 경직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이에 더해 윤석열 정권의 핵심인 이른바 '핵관' 인사들의 공세적 발언과 윤 대통령의 경직된 태도 등이 정치적 불안정을 키우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 16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시점과 맞물려 여권 핵심의 태도는 강경 일변도로 급선회했다. 이태원 참사 책임론과 관련하여 여당 내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 관련 부처 고위 인사들의 책임론이 힘을 받는 듯 했으나 '윤심'이 이들의 책임론에 선을 그으면서 여당 기류는 강경 모드로 바뀌었다.
대참사가 벌어졌음에도 누구도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는 비정상적 상황, 국회 운영위에서의 '웃기고 있네' 메모 이후에 오히려 이를 두둔하는 듯한 대통령실의 태도 등이 여당 내 강경파의 입지 강화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여당은 야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여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동의했으나 여론에 떠밀려서 마지못해 하는 모양새다.
여당 내 온건파가 설 자리를 읽고 강경파가 주도하는 것은 의원들이 대통령 심기 경호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를 지지하고, 장외서명전으로 몰고 가는 것은 국민 일반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또 다시 세월호 참사의 재판을 만들겠다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당 대표의 측근을 엄호하기 위해 전 당력을 집중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권력을 가지고 국정을 책임 진 여권이 강경으로 치달아서는 정치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대통령실 경호처가 군과 경찰의 경호 병력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갖겠다고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조직법, 대통령 경호법, 국군조직법 등을 정면으로 거스를 뿐만 아니라 과거 권위주의적 시대를 연상케 하는 신권위주의적 발상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의 'MBC에 대한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MBC가 정부 비판 일변도이며 과도한 편향성을 보인다는 지적은 논쟁적이지만 관점에 따라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속어' 논란에 대한 여권의 앙금이 있다 하더라도 취재 편의를 위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와 함께 비록 당론은 아니지만 광고주 압박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 그 자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만으로 민주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문자 그대로 절차적 차원의 형식적 정의이기 때문이다. 잠시만 방심해도 권위주의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게 정치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시민적 지성과 공화주의적 성찰이 있을 때 민주주의는 순항할 수 있다. 시민의 정서와 국민여론을 뒤로 한 채 한 줌 권력에 도취되어 만기친람을 일삼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는 이미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그것도 불과 몇 년 전 교훈에서다.
무조건 당 대표를 옹위하려는 제1야당이나 대참사 이후에도 제대로 된 상황인식을 하지 못하고 신권위주의적 행태를 일삼는 집권세력 모두 정치부재와 극단의 정치의 공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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