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엄마가 버렸을 때 산산조각 났지만, 저는 엄마를 용서합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엄마가 버렸을 때 산산조각 났지만, 저는 엄마를 용서합니다"

[283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 ③ 아직 만나지 못한 생모에게 보내는 편지

나의 이름도 쓸 수 없는 - 50세의 문맹인

무언가가 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나 그것은 해외로 입양된 모든 한국 아이들에 관한 것입니다.

9월에 유엔은 불법 입양에 대해 비판적인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은 국가 DNA 데이터베이스를 권장하여 입양인이 생물학적 가족을 추적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능성이 됩니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는 입양 진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원하는 덴마크 한인 인권 단체의 요청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덴마크 한인 인권 단체의 멤버인 김성주도 투명성을 위해 자신의 사례를 국회에서 발표하였습니다. 무언가 큰 것이 오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은 역사적이며 최소 25만명의 입양된 한국인과 그 가족, 생물학적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리고 입양인의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나는 그 유아들 중 하나입니다. 1973년 덴마크로 보내졌습니다.

어린 시절 내내 나는 자라면서 한국의 모든 것과 거리들 두었습니다. 나는 덴마크에 속하고 싶었고 적응하고 싶었지만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가늘게 찢어진 눈과 검은 머리로는 힘들었습니다. 내 삶의 토대이자 시작이 되는 내 일부분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한국 사람인데 속으로는 덴마크 사람이었고, 내 '한국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은 빈 배를 크게 강타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떻게 생겼나요? 어떻게 들리나요? 왜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습니까?

내 서류의 정보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언제 태어났습니까? 누구에 의해? 그리고 어디로부터? 입양기관이 나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아닐까요? 물어볼 수 있는 가족이 없고 만약 있다해도 우리는 같은 언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한국어로 내 이름도 쓸 수 없고 다음에 50세가 됩니다.

사실 방금 이름을 변경하였습니다. 덴마크에서는 마리앤느 베스터고어 닐슨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한국 성을 되찾았습니다. (서류가 사실이라면) 그래서 이제 덴마크 여권에 마리앤느 옥 닐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뿌리와 더 많이 연결하고 나의 출생지에 분명히 하기 위한 작지만 중요한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태어났는가는 나에게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몇년 전, 나는 알 수 없는 생모에게 공개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여전히 모든 단어를 의미합니다.

나를 낳아주신 누군지 모르는 친모에게,

저를 이 세상에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 다 갖추어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때 엄마는 이 아이를 지울까 하는 생각도 하셨을거에요. 9개월동안 엄마의 피가 내 핏줄 사이로 들어왔고 엄마가 드신 한 입 한 입의 음식들이 나를 성장 시켰어요. 아이를 가진 엄마의 마음이 아이한테 그대로 간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엄마가 왜 나를 버렸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고작 6개월밖에 안된 아기였는데 길거리에서 발견 되었대요. 한국에 돌아와서 엄마를 찾아봤어요. 그런데 입양단체에서 보여주는 서류로는 결국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한대요. 우리는 닮았을까요. 우리는 같이 웃을 수 있을까요. 엄마는 살아계시나요. 나이가 많이 드셨을텐데. 엄마를 돌봐드리고 싶어요. 엄마, 나를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내 몸의 반은 엄마랑 같을텐데 내 정신도 엄마랑 같을까요. 내가 어렸을때 사람들은 말했어요. 엄마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보냈다고요. 아이를 버렸던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었다고요. 이 말이 계속 머리속에서 맴돌지만 가슴속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요. 무슨 소린지 알겠지만 나에게는 아무 느낌이 없어요. 엄마도 같이 느끼시나요?

저는 사랑이 많은 덴마크 가족에서 자랐어요. 이 곳에 왔을때 9개월이었는데 엄마가 빵을 꺼내려고 하면 기뻐서 깡총깡총 뛰었었다네요. 먹고 먹고 또 먹었대요. 토할 때까지요. 나는 나이에 비해 아주 작았어요. 이제 전 45세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벌써 알고 계실지도 몰라요.

저는 혼돈속에서 살아왔고 마흔이 되면서 엄마와 나 사이에 끊어진 연결고리가 제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걸 알게 됐어요. 평생동안 아니라고 부정했었는데. 나를 낳은 엄마가 나를 버렸는데 - 나는 그럼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 하는 생각.. 버려진 나를 누가 사랑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엄마의 성격을 물려주셔서 감사해요. 어쩌면 아빠쪽을 닮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성격이 우직한 편이에요. 엄마에 대해서 말하는게 어색하지만, 항상 마음속에 엄마를 담고 있어요. 그렇지만 제 입양부모님께도 잘해드려야 해요. 항상 저에게 최선으로 해 주시려고 하셨어요. 입양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에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제가 좀 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내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미안해하거나 아님 제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이요. 그저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만족할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자리를 차지할 권리를 가질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을 멈춰도 된다면 위안이 될 거에요. 다행이 지금은 다른 사람들만큼 내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조금씩이지만 노력하고 있어요.

엄마가 저를 버렸을때 저는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렸답니다. 하지만 엄마를 완전히 용서할거에요. 다른곳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괜찮아요. 엄마의 사랑도 감사해요.

2018년 9월 마리앤느 드림

생년월일: 1973년 3월 OO일, 옥유화

▲필자인 마리앤느 옥 닐슨ⓒ필자 제공

*지난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