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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통로 없어 선로 위 걷는 오봉역 수송원들…"개선 요청했지만 정부는 묵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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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통로 없어 선로 위 걷는 오봉역 수송원들…"개선 요청했지만 정부는 묵살"

10년간 같은 이유로 철도 노동자 4명 사망…"인력 충원 요구 묵살, 이태원 참사와 비슷"

연이은 안전사고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최근 발생한 오봉역 사망사건의 배경에 안전 인력과 예산 감축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8일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봉역은 2인 1조로 작업하면 동선이 너무 길어 수송원이 선로를 뛰어다녀야 할 정도로 작업 인력과 비교해 입환량(차량을 연결·분리하는 작업량)이 많다"며 "가장 큰 사고 원인은 노조의 인력 부족과 설비 개선 요청을 정부가 묵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봉역은 전체 화물량의 36%를 차지할 정도로 물동량이 많고 규모가 큰 역이다. 하지만 선로 외에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작업 중 이동할 수 있는 이동통로가 없고, 열차는 기관사의 전면 시야 확보가 어려운 추진 입환(기관차가 화물차를 끝에서 밀고 들어오는 입환방식)으로 오봉역에 들어오기 때문에 사고가 잦았다고 현장노동자들은 밝혔다. 열차가 입환하는 동안은 기관사가 선로 상황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선로를 이동하는 노동자가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노조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오봉역은 전국 기차역에서 가장 큰 화물기지다. 가장 넓고 복잡한데 반해 설비가 열악해서 노동자들이 근무를 기피하는 작업장으로 꼽힌다. 시야 확보의 어려움 등이 더해져 그간 노조는 통상 3인이 한조를 이뤄 작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당일 이들은 2인 1조로 작업했다. 2020년 4조 2교대로 전환하며 1개 조를 늘렸지만, 그만큼 인력충원을 하지 않아 실질 조별 근무인원이 줄었다는 것이다. 

코레일 노사는 2019년 4조 2교대 전환에 따른 필요인력을 산출하기 위해 삼일 회계법인과 함께 8개월에 걸쳐 직무진단을 실시했다. 1865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당시 국토부는 "1865명 증원 요청에 근거가 하나도 없다"(김경욱 국토부 2차관)며 인력충원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허병권 철도노조 노동안전실장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서 오봉역 사망사고 관련 사건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5일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화물열차를 연결·분리하는 과정에서 코레일 소속 30대 직원 A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연합뉴스

"10년간 선로에서 4명 사망작업 환경 개선 요구 묵살한 정부 책임"

오봉역에서 사망한 노동자와 같은 수송 업무를 담당해 온 수송원 성낙권 씨가 회견장에 참석해 현장 상황을 증언했다. 성 씨는 "그동안 사측에 입환 업무를 하는 수송원 인력을 늘려달라고 요구했고 열차 입환 방식도 지금처럼 후진 방향이 아닌 직진 방향으로 하는 '견인' 방법으로 바꿔달라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전혀 변화가 없었다"며 "인력이 많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게 확보가 안 되어서… 망인(亡人)의 죽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성 씨는 또 "수송원이 이동할 때 (안전 구간인) 선로와 선로 사이에 2m 이상인 구간이 없어서 결국 선로로 걸어가야 하는데, 오봉역은 직선 선로가 아닌 곡선 선로라 차량이 선로를 점유하고 있으면 시야 확보가 안 된다"며 "특히 야간 작업시에는 조명탑의 조도가 낮아 열차가 선로에 있으면 곡선으로 되어있는 선로탓에 더욱 시야확보가 어려워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조를 통해서도 계속 수송원들이 이동할 수 있는 이동 통로를 확보해달라고,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국토부와 기재부는 예산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철도 노조에 따르면, 오봉역 사고처럼 열차 차량을 연결·이동시키는 입환 작업을 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노동자는 최근 10년간 4명에 달한다. 이번 사고에 앞서 2014년 오봉역, 2017년 광운대역, 2021년 괴동역에서 수송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이 작업 중 사망했다.

김선욱 철도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노동자가 죽어나가는데도 국토부와 기재부는 혁신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외주화를 통한 정원 감축을 지시하고 있다"며 "지금대로라면 사고가 계속 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철도노조는 한편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이 지난 6일 오봉역 사고 현장을 방문해 '관행적 안전 무시 작업 태도를 타파해야 한다'고 언급한데 대해 이는 사고 원인을 노동자 책임으로 돌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이태원 참사 때도 파출소 경찰들은 계속 병력 지원을 요청했는데 상부가 묵살하지 않았나. 우리도 인력이 부족한 곳이 수십, 수백 곳인데도 인력 충원 요청은 번번이 묵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토부가 안전대책으로 내놓은 관제권과 시설 유지보수의 이관은 사고나기 10년 전부터 줄기차게 이야기 했던 사항"이라며 "이는 이번 사고를 빌미로 민영화 사전 정비를 하려는 정부의 시도"라고 꼬집었다.

▲8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 선로에 시멘트 열차들이 멈춰서 있다. 코레일은 지난 5일 발생한 인명사고 원인 조사를 위해 오봉역 인근 대형 시멘트사들의 열차 운행을 당분간 중지시켰다. 오봉역은 성신양회, 한일시멘트, 쌍용C&E, 아세아시멘트 등 7개 대형 시멘트사들의 출하기지가 모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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