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명이 넘는 아동을 강제구금해 가혹행위를 일삼고 사망까지 이르게 한 '선감학원'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선감학원이 폐원된 지 40년 만에 국가 차원의 첫 진실규명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선감학원은 국가로 수용자 전원이 아동 인권침해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된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18일 내렸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권위주의 시기 위헌·위법적인 '부랑아 정책' 시행으로 인해 선감학원 수용 아동의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부랑아 대책을 수립하여 무분별한 단속정책을 주도한 국가의 사과와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한 피해회복을 권고했다.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위치한 선감학원은 1942년 개원 이후 5000명 이상의 아동을 강제구금해 노역,폭행,성폭력 등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선감학원 수용연령은 13세~17세 아동이 47.8%로 가장 많고 7세~12세 아동도 41.9%였다.경기도는 1957년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를 제정하고 '부랑아의 수용보호 및 직업보도를 위하여 선감학원을 둔다'는 규정을 통해 1982년 9월 폐쇄 전까지 선감학원을 직접 운영했었다.
"인간 취급 못 받았다"...인권침해에 암매장까지
이번 조사에서는 광범위한 인권침해 사실도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선감학원 원생들은 수용 당시 밭농사 등 아동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노역에 강제로 투입되었지만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했다. 또한 '원산폭격' 등 체벌목적의 단체기합과 폭행도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제공되는 급식 또한 부실해 원생들은 쥐와 뱀을 잡아먹고, 나무열매를 따먹기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선감학원 강제수용 피해자 김 모 씨는 "(기숙사는) 한 반에 30명이 지그재그로 누워서 잘 정도로 좁았다"라며 "인간 취급을 못 받았다"라고 진실화해위에 증언했다.
선감학원에서 사망한 아동도 기존 파악된 수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선감학원 원아대장에서는 사망자가 모두 24명(익사 14명, 미기재 12명, 병사 3명)이었는데 진실화해위의 이번 조사에서 사망자 5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또한 선감학원을 견디다 못해 탈출한 원생 중에서도 추가 사망자는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아대장에 기록된 탈출 인원은 824명으로 무려 17.8%에 달하는데 진실화해위는 "선감도 주변 물살이 센데다 수심이 깊어 (탈출한) 상당수 원생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추가 사망자에 대한 진술과 시굴에서 확인된 암매장 유해, 8백 명이 넘는 탈출자 등을 감안할 때 실제 사망자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지난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 중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산 봉분 5기를 시굴해 치아 68개와 단추 6개를 발굴하며 희생자 암매장을 확인했다.
시굴용역을 담당한 선사문화연구원은 발굴된 유해가 모두 만 15~18세 남성의 것으로 추정했다. 발견된 단추는 선감학원 수용아동이 입었던 옷의 단추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봉분의 크기가 130~160㎝인 점을 고려했을 때 희생자가 평상복을 입은 채로, 웅크리거나 굽혀진 죽은 자세대로 구덩이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선감학원에 수용되었던 피해자들은 현재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음도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한 피해자 9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1%가 자살시도를 했고, 불면증(35%), 악몽(30%), 신체적 통증(21%)등 86%의 신청인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확인됐다.
국가 사과하고 피해회복 조치 취해야
진실화해위는 선감학원 강제 수용이 상위법령의 위임근거가 없는 자의적 구금이며 적접절차 원칙을 위반한 조치라는 점에서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국가는 권위주의 시기 '부랑아 정책'을 시행했고, 경찰 등 공권력이 법적 근거와 적법한 절차 없이 선감학원에 강제 구금한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판단이다.
진실화해위는 1982년 선감학원 폐쇄 이전까지 선감학원을 운영한 경기도 또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는 1957년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를 통해 선감학원 설치 및 보호수용 근거를 만들었고 이후 도지사가 파견하는 원장 등 공무원들이 선감학원 운영에 투입됐다. 진실화해위는 "경기도가 법률과 조례로 정한 목적에 맞게 운용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피수용아동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거나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부랑아 대책을 수립하여 무분별한 단속정책을 주도한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와 부랑아 단속에 주체인 경찰, 선감학원을 운영했던 경기도 등 정부기관이 총체적 인권유린에 책임이 있다며 선감학원의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피해자의 규모를 고려할 때 특별법 제정 등 조치를 통한 피해회복과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발굴 추진 등을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