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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유통시장 개혁 없는 물가 잡기는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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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유통시장 개혁 없는 물가 잡기는 허구다

[복지국가SOCIETY] 농산물 유통 선진화와 사회적 안부 시스템으로 농산물 가격 안정을

​물가가 걱정이다. 채소・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몇 년간이나 지속된 코로나19로 좌표까지 잃은 사람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고 있다. 폭락한 쌀값 앞에 농민들은 망연자실이다.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은 남의 다리 긁는 격이다. 핵심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 그러니 빈 깡통 소리처럼 요란하기만 할 뿐, 공허하기 그지없다. 근본적인 대책은 농산물 유통 선진화에서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공영도매시장 경매회사들의 배만 불릴 텐가. 농산물 공공수급제 도입에 관한 사회적 논의도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먹거리로 묻는 '사회적 안부 시스템'을 결합해야 한다. 농민이 살고 국민이 사는 길이다.

​유통구조 개선 없는 농산물 가격 안정은 허구다

쌀값은 폭락하고 채소·과일값은 폭등해서 농민과 서민은 시름과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삶이 빠듯하기만 하다. 정부는 수요공급 핑계를 대며 물가 잡는다고 호들갑만 떨 뿐, 농민 소득증대와 서민 물가안정의 지름길인 공영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은 등한시하며 회피성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농업 분야를 선진화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공영도매시장 유통 선진화다. 중앙 및 지방 공영도매시장의 유통 선진화가 이루어져야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고, 농촌의 근간인 농민 생활 안정에도 이바지할 수 있으며, 전 국민 먹거리 기본권 보장 시스템도 갖춰질 수 있다.

농식품부는 소금 팔고 우산 파는 두 아들의 엄마처럼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걱정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돼선 안 된다. 기후위기는 현실이고 상수가 되었다. 그렇다고 기후위기 핑계만 대는 건 곤란하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농민이 망하면 농업·농촌이 소멸하는 것이고, 결국 식량주권 파괴로 이어져 서민들 고통이 가중될 것이다. 공영도매시장의 유통구조 개선 없는 정부의 물가 잡기 호들갑은 대국민 눈속임이며, 예산 낭비이자 반향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리비히의 최소량, 농업

식물 성장의 법칙 중에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Liebig’s law of minimum)이 있다. 다른 영양소들이 아무리 풍부해도 가장 적은 영양소에 의해 식물의 성장이 결정된다는 법칙이다. 국가 성장도 마찬가지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복지 등의 국가 성장 요소가 풍부해도 다른 게 빈약하고 후진국형이라면 국가는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가장 부족하고 약한 1이 나머지 99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최소량의 법칙은 균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소량의 법칙에 해당하는 분야는 농업이다. 농업 분야 중에서도 유통이 가장 후진적이다. 중앙과 지방 공영도매시장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농업 후진국이고, 농업이 국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공익 목적으로 국가 예산이 투여된 공영도매시장에서 농민의 가격 결정권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선진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선진국이라는 허울 속에 농업 분야만은 개발도상국이다. 농민들은 외친다. 애타게 외치는 내용이 얼토당토않은 것도 아니다. 눈물겨울 정도다. 내년에도 농사지으며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생산비라도 건질 수 있게 해달라, 제값 받을 수 있는 농산물 유통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요구다. 농산물 제값은 농민 자존감이다. 농민에게 있어서 내가 생산한 농산물의 제값을 받는다는 것은 나의 자존감과 관련된 문제다. 생산비에 농민 자신의 인건비를 더해 농산물 가격이 형성되는 유통환경도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국가는 이러한 기본을 갖출 책임이 있다. 특히, 공영도매시장에서 기본이 실현되도록 정부는 즉각 나서야 한다.

​농산물 기준가격을 형성하는 가락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해 농업·농촌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무너져 내리듯 가격 결정권이 없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세월 동안 농가소득은 무참히 가라앉고 있다. 통계청의 농가경제조사 통계가 무너져가는 농업의 현실을 말해 주고 있다. 설상가상, 정부의 정책 실패로 쌀값이 폭락하고 있다. 쌀값을 잡지 못하면 농민들은 쌀농사를 포기하게 된다. 이는 결국 농민들을 밭농사, 축산업으로 몰려들게 만들어 농업 전체가 무너지는 도미노 줄도산이 속출할 것이다.

​쌀 농가의 위기 징후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농가 103만1210호 중 절반이 넘는 53만1999호(51.6%)가 쌀 농가이다.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쌀값으로 절반 이상의 농민이 농업 포기 위기에 빠져 있다.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따르면, 8월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당 4만3093원으로, 지난해 10월 20㎏당 약 5만5000원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쌀값 폭락을 방치하면 벼 재배 농가는 버틸 수 없다. 농업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식량안보지수 및 식량자급률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경실련과 농민단체들은 쌀을 포함한 농산물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농산물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바 있다. 국가가 농산물을 책임지는, 즉 국가 책임하에 운영되는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농업 전문 신문사에서 개최한 '농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근본 대책을 세우자' 토론회에서 제시되었다. 쌀·밀·콩·배추·무·고추·마늘·양파·대파·당근(10개 품목) 생산량의 20%를 계약재배하여 15% 물량은 정부가 조달해 공공급식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5%는 비축하는 공공수급(계약재배-정부비축-공공급식) 방안이다. 학교·공공급식 등 지역 먹거리 복지체계와 연계된 중앙 및 지방정부의 공적 먹거리 조달체계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경매회사에만 유리한 공영도매시장 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농민이 살고, 물가도 잡을 수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 모습. ⓒ연합뉴스

농산물 공공수급제와 '사회적 안부 시스템'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세 가지다. 보완이 시급한 것들이다. 첫째, 공공수급 체계에서의 유통을 정부비축으로만 국한하면 농산물 공공수급제 도입의 근본 취지가 보편화되기 어려울 수 있다. 그 이유는 가락시장 경매가격이 올라가면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비축한 물량이 시장으로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농산물 국가책임제 도입의 근본 취지는 안정적인 가격 유지 및 보장에 있으므로 기준가격이 형성되는 공영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도 함께 도모해야 한다.

국가안보의 기반인 식량 생산이 유지되고 농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농산물 가격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생산 농민과 소비자의 거리가 줄어들어야 한다. 공익형 시장도매인이라는 직거래 방식의 공영유통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복잡한 공영유통단계를 고수하고, 농민의 가격 결정권 없는 유통구조를 수십 년간 방치하여 생산 농민과 소비자를 멀어지게 했다. 그 결과 농산물 가격이 폭등해도 농민에게는 수익이 돌아오지 않으며, 가격이 폭락해도 소비자는 이를 체감할 수 없다.

그런데 공영도매시장의 경매회사들은 역대급 수수료 수입을 자랑하고 있다. 2021년 가락시장 청과물 경매회사 5곳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평균 25.2%로, 2020년 동일 업종 평균인 2.6% 대비 약 9.7배, 2021년 대형마트 3사(롯데쇼핑, 이마트, 홈플러스) 평균 1.4% 대비 18배에 해당하는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여된 공간, 설비, 시설 등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공영도매시장에서 도매법인으로 지정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경매회사들은 농산물 위탁 수수료로 배를 불리고 있다.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은 정부 투자 공공영역이자 전국 생산 농산물의 약 59%가 유통되는 거대 공공시장이다. 정부의 공공시장 정책은 불안정하다. 가격 변동성이 큰 경매제로 형성된 농산물 기준가격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준가격이 형성되는 대표적인 공영도매시장은 가락시장이다. 시장 가격이 올라가면 정부가 수매한 물량을 공영도매시장으로 풀어서 가격을 낮춘다. 정부는 매입 금액보다 싼 값으로 방출하여 가격을 떨어뜨린다. 정부 수매는 농민을 위한 소득 보전책이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지원책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물가 잡는다고 최대 450억 원을 들여 9월 12일까지 농축수산물 할인대전을 연다 하는데, 그 편익이 농민에게 돌아갈까? 행사에 참여하는 대형마트, 지역농산물 직매장, 전통시장 등 전국 2952개 유통업체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근본을 바꾸지 않는 한 농할쿠폰 행사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정부는 그것으로 물가 잡는 데 총력을 다했다고 할 것이다.

​둘째, 공공수급 체계 범위에 공영도매시장을 포함하고, 학교·공공급식, 군대급식 외에도 생활임금 이하 계층부터 일반계층까지 포괄하도록 단계적으로 공공수급의 대상을 넓혀야 한다. 송파 세 모녀, 수원 세 모녀같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마냥 방치할 것인가. 푸드플랜으로 따뜻하게 메워야 한다. 그래야 공공수급의 규모도 커져서 물류 효율성도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농민단체들이 요구하듯이 공공수급 체계 범위에 공영도매시장을 포함시켜야 할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공영도매시장에 지자체가 참여하는 공익형 시장도매인이라는, 물류 효율성과 공공성이 높은 농산물 수집 및 분산 공간이 마련된다면 공공수급 대상을 넓힐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다. 일례로, 강동구 외에도 서대문구와 송파구에서 공공급식지원센터가 출범할 때 서울친환경유통센터를 임대할 수 있어서 물류 공간 확보라는 장애물 없이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정부의 공공시장 정책 실패로 인해 농산물 가격은 폭등하고, 먹거리 사각지대 방치로 굶주림에 허덕이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먹거리 사각지대는 복지의 영역이라며 농식품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농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먹거리종합계획인 푸드플랜은 허울에 불과한 것인가! 국가 단위 푸드플랜은 빈곤이나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먹거리 기본권 보장이 핵심이다. 푸드플랜은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보장을 위해 생산, 가공, 유통, 소비, 폐기까지의 가치사슬을 선순환 구조로 만들고, 먹거리 전달체계로서 먹거리통합지원센터, 공공급식지원센터 등이 작동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셋째, 기존 푸드플랜의 우선순위를 공공수급 체계의 수요-유통-생산 순으로 재정립하고, 먹거리로 묻는 '사회적 안부 시스템'을 결합시켜야 한다. 국가 단위 푸드플랜의 핵심인 먹거리 기본권이 지역 푸드플랜에 촘촘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기존의 먹거리 보장 사업을 체계화해서 누구나 '기본 한 끼'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먹거리로 묻는 '사회적 안부 시스템'은 너무나 많고 좋다. 그 많고 좋은 구슬을 꿰기만 해도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다. 충청북도 옥천군은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먹거리 복지와 농정을 결합하여 건강한 음식에 접근할 수 있는 유통체계를 만들고 먹거리 기본권을 실현하고 있다. 제주도 노형동은 제철 농산물 전달 먹거리 돌봄으로 복지전달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우양재단은 먹거리네트워크를 만들어 '긴급 먹거리 키트'를 제공하는 한편, 노인성 질환 맞춤형 먹거리 지원사업인 '딱 맞는 밥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시의 집밥 배달 프로젝트, 마을부엌, 푸드뱅크, 나눔냉장고, 영양플러스 사업 등 사회적 안부 시스템은 많다.

​제대로 된 사회적 안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사업을 푸드플랜 체계 안으로 넣고, 찾아가는 커뮤니티케어 참여자 육성과 함께, 식재료 공급 및 조리 공간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앱 등을 만들어 관리체계를 디지털화할 필요도 있다. 사회적 안부 시스템에 필요한 먹거리 수요는 계약재배를 활성화해서 해결할 수 있다. 공영도매시장 공익형 시장도매인이 지역 농민단체와 적정가격에 계약재배를 하는 것이다. 지역 농민단체는 가격 등락 우려에서 벗어나 농산물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 이러면 제값 받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생산-유통-수요 라인이 형성된다. 따라서 사회적 안부 시스템은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유통 선진화에 기여하는 한편, 농민 소득증대, 서민 물가안정과 전 국민 먹거리 기본권 보장은 물론이고, 굶은 사람 없는 대한민국 누구나 기본 한 끼 사업의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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