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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면 탈출해야 하는 집'…반지하가 집이 아닌 사회는 언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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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면 탈출해야 하는 집'…반지하가 집이 아닌 사회는 언제 오는가

[인권의 바람] 불평등한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집은 반지하다. 비가 많이 내리자 동네 계단에 물이 폭포처럼 흐른다. 집이 물에 잠기자 집에 하던 일거리, 먹거리, 집에 있던 물건들은 물 위를 떠다닌다. 기택은 최소한의 생필품과 귀중품을 챙겨 대피소로 몸을 옮긴다. 기택의 가족은 집을 탈출해야 했다. 영화 속 이야기는 허구가 아닌 사실로, 더 참혹하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난 8일 중부지방에 폭우가 내리고 서울 관악구에서는 침수로 반지하 주택에 살던 40대 발달장애인 여성과 그의 여동생, 10대 동생의 딸이 목숨을 잃었다. 동작구에서도 50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비가 오면 탈출해야 하는 집에 살고 있었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재난은 불평등했고, 불평등은 또한 재난이었다. 재난은 가장 아래, 반지하에 사는 주거취약 계층에게 먼저 일어났다. 장애인, 여성,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게 불평등한 일상은 이미 재난이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만 한다." 이는 헌법 제34조 6항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보호 할 의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부지방 폭우 재난 상황에서도 퇴근 후, 폭우로 인하여 나올 수 없다며 전화로 위기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 날, 일가족이 사망한 반지하 현장에서 "퇴근해보니 벌써 다른 아래쪽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되었더라"며 재난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역할을 할 의지가 전혀 없었음을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폭우에 빠르게 대응하지 않은 것을 사과하기는커녕 피해 복구만을 말했다. 재난과 애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국가의 컨트롤 타워여야 할 대통령도 무책임하고 지자체장도 무책임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 지하주택을 없애 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10일 '서울시 지하, 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지하‧반지하는 주거 목적의 용도로 허가하지 않도록 건축법 개정을 통해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반지하 주택을 차례로 없애는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추진하고, 상습 침수 또는 침수우려구역을 대상으로 모아주택, 재개발 등 정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대책은 10년 전에도 말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탈출을 해야 하는 집에서 살고 있다. 모두가 안전한 집에 살고 있지 않은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당장의 현상 대처를 하는 정치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반복되는 재난임에도 체계적이지 못한 대책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명숙

우리 집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기생충>에서 칙칙하고 더러운 공간으로 보이고, 오세훈이 없애고 싶어 하는 반지하에 사람이 산다. 1960년대에 건축법에서 지하층설치를 금지하던 것이 1975년 안보를 이유로 삭제되더니 80년대 서울 등 대도시에 인구 과밀로 주거 공간이 부족해지자 반지하가 늘어났다. 빛은 없고 습기가 넘치고 환기가 어려운 반지하에 사는 것이 반가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아파트마냥 높은 집값 때문에 저렴한 반지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 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32만 7320가구가 지하·반지하에 살고 있다. 그중 서울 소재 지하·반지하 거주가구는 20만 849가구로 전체의 약 61%를 차지한다.

10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왔지만 기후위기시대를 살면서 재난은 계속해서 덮쳐오고 있다. 2001년, 2010년, 2011년에도 도시에 물이 차올랐다. 2018년 은평구 한 골목에 사람들과 집 안에 있어야 할 가구들이 나와 있고 쓰레받기와 양동이로 물을 퍼 나르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에도 가장 피해를 입고 삶터를 잃어버린 사람은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오세훈의 말처럼, 반지하는 없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오세훈은 반지하에 더 이상 세를 들이지 않는 건물주에게 지원금을 주겠다는 말은 있어도 세입자들이 갈 곳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도심에 대형 빗물터널을 짓겠다는 예산만 말하고 공공주택 공급 확대와 관련 예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서울시는 20년 이내에 건축 내구연한(30년)이 지난 공공임대주택을 용적률 상향을 통해 재건축하여 23만호를 확보하겠다는 구체적인 듯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발표한 노후 임대주택 11만 8천호 중 서울시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물량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소유한 3만 9천호에 불과하다. 또한 폭우로 당장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올해 말까지 서울시 소유의 노후 임대주택은 1만 8천호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반지하는 위험하다면서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꼴이다. 결국 서울시의 폭우 대책은 급한 불 끄기식의 공허한 대책인 것이다. 적정한 주거공간을 만들어내지 않고 도시개발과 부동산 투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얘기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또 다른 개발을 불러올 수 있다.

평등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고 싶다

우리는 단순 거처가 아니라 '집'이 필요하다. 비바람을 피해 잠을 자는 곳을 넘어, 자신의 생활을 꾸리고 관계 맺으며 따뜻하고 다정한 공간인 집이 필요하다. 언제 탈출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는 공간은 집이 아니다.

재난은 가장 아래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영향을 미쳤다. 가난한 사람들도 인간적인 주거환경에 살 수 있도록 하려면 공공임대주택 확충이 필요하다. 국제인권기준이 말하는 적정한 주거에 대한 권리를 차별 없이 누리려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 안전하지 않은 집에서 사는 것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다. 무책임하고 불평등한 국가와 경제 구조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음을 폭우로 발생한 참사는 보여줬다. 다시 한 번 재난과 가난으로 삶을 잃은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보내며, 누구나 평등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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