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프레시안>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싹이 되고, 인권 감수성을 돋우는 생각의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
견월망지(見月忘指),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우매한 행동을 일컫는 한자 성어가 떠오르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분석>(이하 시위 분석문건)이 그렇다. 한마디로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 왜 집회하는지, 왜 정권을 비판하는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든 집회의 파급효과를 차단하는 방안만 골똘한 문서다.
집회의 권리 보장은 참여적 거버넌스의 기초
누구나 알듯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회는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권리다.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시민들에게 국가정책에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보장한다. 그중 하나가 집회다. 2000년에 발표한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발표한 평화적 집회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37호에서도 밝혔듯이 "평화적 집회의 권리는 타인과의 연대 속에서 개인의 자주권 행사 능력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권리다. 기타 관련된 권리와 함께, 동 권리는 민주주의·인권·법의 지배·다원주의 등에 기반을 둔 참여적 거버넌스 제도의 가장 기초를 이루기도 한다." 시민들은 집회를 통해 공론화함으로써 정부의 정책변화를 가능하게 하기에 거버넌스의 기초를 형성한다고 본 것이다
노동자와 시민들의 의견을 정부 정책에 반영하려는 의지가 있는 정부라면 마땅히 누가 왜 무엇을 요구하며 시위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시위 분석문건의 '권력 비판 시민단체와의 결합 여부'를 표시한 끝 칸이 아니라 그 옆의 주요 요구 내용을 봐야 마땅하다.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민주노총이 집회를 개최한 대다수 요구사항은 비정규직 문제와 최저임금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당면한 민생 문제의 핵심이 비정규직 제도의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권력 비판 시민단체와의 결합유무'만을 분석했다니 참으로 한심하고 무책임하다. 해당 단체와 소통하거나 민생을 살필 노력을 하기보다 통제할 궁리만 한 것이다.
그리고 시위 분석문건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민단체를 공론화나 이슈 메이킹에 능하다는 평가는 시민사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이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이 느껴져 의아하다. 국제인권기준에 따르면 인권 단체들은 이해관계집단이자 인권 옹호자다. 몇몇 시민단체들에 대해 '정무적 판단에 능하고' 평가한 것은 놀랍다. 정무적 판단이란 '인권적 가치나 논리에 근거하기보다 정치적 상황이나 행정적 환경 등을 중심으로 한 판단'을 일컫는다. 시민단체들이 정치권의 눈치나 정치의 유불리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치인들이 주로 하는 정무적 판단과 비슷하게 취급하고 있다. 공공성이나 인권적 가치를 우선에 두고 활동하는 인권 단체들이나 시민단체들에는 매우 모욕적인 평가다.
또한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유엔사회권규약)과 헌법이 명시한 권리다. 다수의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한 대한민국 정부가 이렇게 노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다니 시대 역행적이다. 사회권규약이 만들어진 것이 1966년이고, 헌법에 노동3권을 포함한 집회 시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한 것이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이니, 윤 정부의 발상은 19세기에나 통할 발상이며 독재 시대의 시선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민주노총의 집회를 '동원이나 군사훈련'으로 취급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결사와 행동을 깎아내린 것이다. 노동자들이 인권과 생존을 위해 모이고 외치는 것을 군대에서 지휘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처럼 보다니 몰상식적이다. 특히 '최대 10만 명 예상 효과적인 설계 및 군사훈련 진행 중'이라는 문구는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적 시각이라 심각하다. 윤 정부에게 노동자들은 적인가?
독재 시대나 가능한 사회운동에 대한 분할통제 발상
가장 놀라운 것은 '노동조합과의 연결고리 차단'을 대응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권력 비판 시민단체'와 '동원부대 노동조합'이 결합하면 광우병, 탄핵 촛불 등 대규모 동원과 기습시위가 가능하다니! 이는 시민사회를 영역별로 가둬두려는 통제의 시선이 분명하게 드러난 문구다. 독재정권 시대에나 가능했던 사회운동에 대한 분할통제 발상이다. 인권은 서로 의존적이고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 만나고 협력하며 연대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우조선하청노동자 희망 버스에서 드러났듯이, 비정규직 문제나 최저임금 등 노동 의제는 노동자들의 사안만이 아니다. 노동소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민들 대다수가 노동자이기도 하다.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데 다른 인권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허구적이다.
예를 들어 성평등 의제는 여성들만의 의제가 아니며, 노동자의 의제이기도 하다. 환경 의제가 노동자의 의제가 아닌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인 최저임금 문제는 여성 의제이기도 하며, 이윤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에 대한 규탄은 노동자의 의제이자 모든 시민이 참여해야 하는 의제다.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적 통치를 사회운동에도 적용하려는 통치 권력의 욕망일 뿐이다.
이를 대통령실이 몰라서 이런 분석을 한 것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윤 정부의 친기업 반노동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있을 것임을 알기에 대응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면 친노동자적으로 국정운영을 바꾸려 했을 것이다. 반노동자적 정책을 고수하기 위해서 이러한 분석을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집회의 자유는 단지 집회 개최를 막지 않는다는 뜻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형식적인 집회의 자유 보장일 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하며 서로의 사안에 대해 이해하면서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집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35번이나 언급했던 윤석열 정부의 '자유'란 자유로운 결사나 자율적인 연대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집회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연대를 막겠다거나 시민단체는 여론 형성을 위한 공론화 작업만 하도록 만들겠다는 발상은 가능하지도 않은 방안이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현재진행형인 민주노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시위 분석문건에 대해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 임헌조 시민 소통비서관은 해당 문건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파기했고, 윗선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해명으로 사건을 덮고 가서는 안 된다. 문서를 작성한 경위와 배경 등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징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정부의 사회운동을 분할 통제하려는 시도에 관해 관심을 두고 대처해야 한다. 나아가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의 연대를 더욱 강화하여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제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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