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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포비아', 러시아 혐오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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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포비아', 러시아 혐오의 뿌리를 찾아서

[인문견문록] 기 메탕의 <루소포비아>

경제 관련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어느 진보학자의 '푸틴은 21세기의 히틀러'라는 발언을 듣고 놀랐다. 세상 일을 이렇게 단선적으로 이해해도 좋은 것일까?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역사상 가장 자비로운 제국이었다. 자신의 위성국가에 퍼주다가 정작 자신은 가난해져 버린 역사를 가진 유일한 제국이었다. 러시아는 그러했던 소비에트의 후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인들이 러시아 혐오를 공공연히 퍼뜨리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스위스 출신 언론인 기 메탕(Guy Mettan)의 책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기 메탕 지음, 김창진·강성희 옮김, 가을의아침 펴냄)이다.

러시아 혐오, 즉 '루소포비아(Russia+phobia=Russophobia)'가 확대된 계기는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 때문이다. 서구는 러시아의 팽창주의가 갈등의 원인이라고 간단히 결론짓는다. 서구의 지적 자장 안에 있는 한국에서도 러시아 탓이라는 이야기가 넘쳐흘렀다. 사실일까? 저자 기 메탕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를 직시해보라고 말한다. 시위를 격화시킨 계기는 미국의 지원을 받던 우크라이나 극우나치조직의 시위대 저격이었다. 이 저격을 정부의 시위대 공격으로 이해한 대중들은 더욱 폭력화되었다. 2014년 2월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비상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련의 정치개혁을 포함한 합의안을 야당 지도자들과 합의한다. 그러나 합의 직후 야당지도자들은 합의안을 뒤엎는다. 2월 22일 극우조직이 본격적으로 개입한 시위대가 모든 관공서를 점거하고 야누코비치는 도피한다. 5월 2일 오데사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던 친(親)러시아 시민들을 극우나치들이 노동조합건물로 몰아넣고 방화를 해 40여 명을 살해한다. 우크라이나를 접수한 세력은 러시아어의 공용어 배제를 발표한다. 또한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를 나토에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대외적으로 천명한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러시아가스관에 대한 절도사건이 일어나도 방치한다. 공교롭게도 말레이시아항공기가 격추된다. 누가 격추시켰는지 범죄행위의 주체는 미궁 속으로 빠졌다. 그럼에도 뜬금없이 러시아가 범인이라는 선동이 서구 주류 언론을 도배한다. 키예프로부터 자신들의 언어적·문화적 권리를 무시당한 돈바스 지역 시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한다. 돈바스의 민간인 지역에 대한 포격이 시작된다. 이어 친미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미국으로부터의 대대적인 군사 지원이 시행된다.

이 모든 일련의 사태에서 러시아의 팽창주의는 어느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사람들은 러시아의 팽창주의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다는 서구 언론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기 메탕은 실체적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열심히 믿고 있는 '러시아 팽창주의'가 현대판 신화나 주술은 아닌지를 질문한다.  

저자는 루소포비아와 관련한 '웃픈' 촌극을 소개한다. 2004년 9월 1일 체첸반군 지도자 샤밀 바샤예프 수하의 32명의 무장집단이 북오세티야의 소도시 베슬란 제1학교를 점령했다.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학부모를 비롯해 1300여 명이 인질로 사로잡혔다. 이들은 학교에 진입하자마자 경비원 20여 명을 총살할 정도로 잔인했다. 러시아 당국은 협상을 진행했지만 순교를 각오한 그들이었기에 협상은 순탄치 않았다. 결국 이들에 대한 진압 과정에서 300여 명의 학생, 학부모, 교사가 희생되었다. 모두가 이 비극적 사건을 애도하기 시작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서구는 이런 비극조차 러시아에 대한 공격의 계기로 활용했다.

서구으로부터 체첸반군에 대한 성토보다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서구 언론은 115명의 저명한 미국 및 유럽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서명한 공개 서한을 실었다. 기 메탕의 글이다. 공개 서한의 저자들은 크렘린이 '러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침해하고 전체주의체제를 향한 다음 단계를 준비할 목적으로' 베슬란 사건을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이들 반(反)러시아 로비 활동가들은 푸틴을 협상을 거부하고 러시아의 정치적 균형을 무너뜨리기를 갈망하는 폭군으로 매도했다. 이 공개 서한을 계기로 <리베라시옹> <디 벨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같은 메이저 언론들도 일제히 반러시아 선전에 나선다. 당시 대다수 서구 언론은 푸틴이 의도적으로 이 비극적 사건을 촉발했다고 확신하고, 그런 믿음에 바탕해 기사들을 냈다. 그들의 믿음은 사실이었을까? 기 메탕은 책에서 러시아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전혀 없는 영국 국방부 산하 분쟁연구센터의 연구원 헨리 플레이터-지버크(Henry Plater-Zybek)가 2004년 11월에 작성한 보고서를 소개한다.

그는 보고서에서 "테러가 주도면밀하게 계획되었던 점이나 테러대상의 특수성, 인질들의 나이와 수, 테러리스트들의 실현불가능한 요구,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잔혹성을 고려해보면, 러시아 당국은 불가능한 과제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서구 언론이 주장한 미디어에 대한 푸틴의 압력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비극을 앞에 두고서도 반러시아라는 집단 히스테리에 몰두한 서구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파리의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에 대한 습격 직후, 우리는 2004년 115명이 서명한 공개서한과 서구 기자들의 입장을 떠 올리면 분노의 감정밖에 나오지 않는다. (중략) 만약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난 뒤 <러시아투데이>와 <알 자지라> 파리 특파원들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살인자들과 협상하고 프랑스 이슬람주의자들에게 프랑스를 자유롭게 다닐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면 서구 언론은 어떻게 반응했을 것인가? 또는 푸틴에게 그랬듯이 테러의 책임을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에게 물었다면 어땠을까?"

수백명이 사망한 비극적 사건조차 반러시아 선동의 재료로 삼는 이 집단적 광기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나토에 가입하기를 원했을만큼 순진했던 푸틴과 러시아에 대해서 서구는 왜 이토록 집요한 광기를 드러내는 것일까? 집단무의식 차원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다. 기 메탕은 국가로서의 러시아가 탄생하기도 전부터 러시아 포비아가 역사 속에서 태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저자의 설명이다.

"현대 서구를 러시아와 구분하는 편견의 심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서교회의 분열(1054년), 또는 그보다도 2세기 이전, 샤를마뉴가 서구의 황제로 임명된(800년) 뒤 로마제국 후계자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 기독교 의식의 절차를 바꾸었던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서구 지식인들이나 알법한 어려운 역사들이다. 중세 교회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신경(Credo 사도신경, 니케아신경을 말함-필자주)을 둘러싼 갈등이 러시아혐오의 시작이었다. 6세기에 보편화되기 시작한 그리스어 니케아 신경 원문 중 "성령은 성부에게서 발(發)하시고"라는 구절이 라틴어 번역본에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라틴어 문구 필리오케(Filioque)가 첨가되어, 동방 교회에서 사용하는 그리스어 니케아 신경과 서구 교회에서 번역한 라틴어 니케아 신경 간에 불일치가 발생하게 되었다. 기 메탕의 부가적 설명이다. 

"논쟁은 서구 교회가 필리오케에 대한 언급을 '신경'에 도입하자 점화되었다. 동방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삼위일체 내부 역할간의 섬세한 균형을 파괴했고 성령을 성자에 종속된 위치에 둠으로써 신격에 위계질서를 창출하였던 것이다."

갈등은 내면화되어 같은 기독교국가라는 소속감은 희박해져갔고 동방은 타자화되었다. 그렇기에 4차 십자군원정은 중동 이슬람지역을 향하는 대신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약탈했다. 동로마문화의 계승자였던 러시아 역시 서구에게 완전한 타자였다. 심지어 튜턴기사단은 러시아지역을 정벌하는 북방십자군 원정에 나서게 된다. 저자의 말이다.

"폴란드의 가톨릭교회는 정교회와의 투쟁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1596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은 현재 서부 우크라이나에 있는 정교회(브레스트연합)를 교종(교황-필자주)에게 복종하도록 강요했고, 심지어 1612년에는 모스크바에 침공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동방 러시아는 서구 유럽에 대해 타자가 되었다.

러시아의 '아시아적 전제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저자의 빼어난 통찰력이 돋보인다. 러시아는 아시아적 전제주의를 탈피하지 못한 야만국가라는 서구인들의 편견은 그대로 러시아 팽창주의로 이어진다. 독재자 한 사람의 야욕을 제어할 중간 시민세력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길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기 메탕에 따르면, 야만성의 등치 개념인 아시아적 전제주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1612년 모스크바 점령에 나선 폴란드 귀족 사무일 마스케비치는 러시아인들에게 러시아황제가 아닌 자유를 좇아 폴란드측에 설 것을 요구한다. 이 요구에 러시아인은 이렇게 답한다.

"당신에게 자유의 길은 우리에게는 종속의 길입니다. 당신에게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 있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고, 그의 재산이나 생명을 뺏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거꾸로 최고의 명문귀족에게도 최하위평민을 괴롭힐 힘이 없습니다. 청원을 넣자마자 짜르께서 심판하여 벌을 내릴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식선에서 아는 전제주의와 매우 다르다. 필자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바로 성리학의 이념인 일군만민(一君萬民)을 즉시 떠올렸다. 한 사람의 군주 아래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성리학의 핵심 이념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왜 군주가 우리 위에 있는가라는 저항감이 들겠지만 인간 역사에서 해결하기 힘들었던 것은 군주 일인보다는 귀족에 해당하는 중간층의 전횡이었다.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아시아적 전제주의 덕분에 푸틴은 알짜 에너지기업 유코스를 미국 석유회사에 헐값에 넘기려는 올리가르히 석유재벌의 시도를 제어할 수 있었다. 올리가르히의 힘을 제어하지 못한 우크라이나의 경우 올리가르히 스스로 대통령이 되거나 콜로모이스키의 경우처럼 극우조직의 대부가 되어 사회를 움직이려 한다.

기 메탕은 러시아 전문가 마샬 포(Marshall T Poe)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마샬 포에 따르면, 온정주의 체제라 불러야 하는 '전제주의'가 러시아 엘리트에게 신민을 통합하고 광범위하게 분산된 영토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경제적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기 메탕은 러시아 전제주의에 대해 이런 의견을 제시한다.

"러시아인들은 동시대 군주들이 부딪혔던 4개의 주요문제, 즉 모반자의 문제, 경제적 번영의 문제, 자원동원의 문제, 그리고 분쟁해결의 문제 등을 중앙집권적 왕국 및 유럽의 주권국가 건설에 수반된 수많은 내전이 없이도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은 제한된 자원과 지리적으로 엄청나게 분산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계몽군주의 전제주의는 당시 많은 서구지식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711년 당대의 대석학 라이프니츠와 표트르 대제의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다.

19세기 이후 영국과 러시아 간의 '그레이트 게임'이 전개된다. 러시아는 남하하려고 하고 영국은 이를 막아섰다. 흔히 제국주의 국가 간의 패권게임으로 이해되는 이 경쟁에 대해서 다르게 설명하는 역사학자가 있다. 영국의 루소포비아에 대해 연구한 존 글리슨(John H Gleason)은 세계 패권을 놓고 두 제국이 쟁투를 벌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발칸, 캅카스, 콘스탄티노플, 아프카니스탄, 시리아 및 이집트에서 공격적인 도발을 반복해서 시도한 것은 영국이었다. 러시아는 늘 수세적이고 방어적이었다. 글리슨은 영국 루소포비아의 원인은 제국의 이익이 충돌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표를 확보하기 경쟁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영국의 정당들은 공포를 과장해 러시아에 대해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대 진영을 공격하려 했다. 글리슨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정부와 야당의 상대방을 향한 폭주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러시아의 팽창주의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였다.

소비에트는 전 유럽을 나치즘이라는 괴물로부터 구해냈다. 그런데 1980년대 독일의 에른스트 놀테에 의해 역사수정주의가 시작된다. 그의 논리의 요지는 세 국가의 극우세력, 즉 프랑스 악시옹 프랑세즈, 이탈리아 파시즘, 독일 나치즘이 반공 이념에서 출발한 것이며 서유럽 극우주의란 볼셰비키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즉, 파시즘체제란 볼셰비즘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독일의 경우 하버마스를 위시한 여러 지식인들의 반박이 있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우호적인 반응을 받았다. 놀테의 주장이 도달하려는 최종 목표는 어디일까? 서구이 만든 파시즘이란 거대한 참극을 역사로부터 은폐시키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소비에트의 잔혹성이라 선전되는 정보는 서구 지식인이나 극우세력에 의해 조작되거나 과장되어 유포된 역정보다. 대기근을 극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출신 흐루시쵸프가 승인한 홀로도모르를 우크라이나인들을 아사시키기 위한 러시아의 계략으로 아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필자는 이미 소비에트체제에 대한 서구의 프로파간다에 대한 칼럼을 썼다.(☞ 바로 가기 : 2019년 6월 22일 자 '소련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나') 정보의 의도적 비대칭상황에서 모두가 똑같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거악을 숨기려는 잔꾀에 불과하다.

서구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가? 상당한 수의 지식인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들조차 루소포비아에 걸려 넘어진다. 메탕은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그는 서구지식인의 이론적 그물망에 러시아가 이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식인들의 반러시아 감정을 추동한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모든 서구 이론은 러시아의 '수수께끼'와 '블랙박스'에 걸려넘어진다. 예컨대 러시아의 자유에 대한 이해는 서구와 완전히 다르다. 그와 같은 자유에 대한 이해는 중국이나 이전 식민지 국가 대부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서구에게 자유란 기업활동의 자유와 선거권을 의미하고 위에 언급된 나라에게 자유란 주로 독립과 자립을 의미한다."

서구 사상의 핵심에는 자유가 있고 그 자유는 주로 사적 재산에 대한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자유 대신 '공동책임'의 개념이 상위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메탕의 말이다.

"가혹한 생활 여건 때문에 법적 관계보다 이웃에 더 의존하게 된다. 공동책임의 개념이 러시아에 대한 이해의 열쇠이지만, 서구 전문가들은 그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중략) 사회보장의 한 형태인 공동책임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안정성을 보장해준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서구가 비판하는 관료주의 및 부패와 같은 개념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동양철학자 김기현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적으로 외부세계를 정렬시키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충동'을 갖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이해의 방식에 타자가 온전히 들어오지 않는다면 타자는 적이 되어야 한다. 일본의 저명한 종교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책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에 따르면 피타고라스학파는 콩을 금기시했다. 콩은 남성의 고환에 대한 은유이며 또한 여성의 클리토리스의 은유이기도 했다. "결국 넓은 지역에서 공유하고 있던 신화적 사고에서 '콩'은 남성성 중에서 여성적인 것을 나타냄과 동시에 여성성중에서 남성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의미의 이중성과 모호성은 형이상학적 충동과 충돌한다. 예전 할머니들은 이곳과 저곳의 경계지대를 위험시했던 신화적 사고에 따라 "문지방에 서지 말라"는 말을 손주들에게 종종하곤 했다. 서구의 입장에서 '경계지대'에 자리잡은 타자가 다름 아닌 러시아였다. 공동체의 평등을 추구하는 '아시아적 전제주의', 개인의 자유 대신 공동체에 대한 '공동책임' 이런 개념들은 서구의 눈으로는 너무나 먼 타자였던 것이다.

필자는 지식인의 임무는 경계선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 메탕은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비서구을 타자화, 악마화하는 유럽중심주의가 단순한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군사적, 외교적, 실정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위험한 인종주의임을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책의 일독을 권한다.

▲ <루소포비아>(기 메탕 지음, 가을의아침 펴냄) ⓒ가을의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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