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취임 연설로 5년 임기를 시작했다.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단어를 35번이나 언급하며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공정'이 3번, '인권'은 4번, '연대'를 6번 언급한 것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려"
먼저 윤 대통령은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다"는 말로 취임 연설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전 세계는 팬데믹 위기, 교역 질서의 변화와 공급망의 재편, 기후 변화, 식량과 에너지 위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후퇴 등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또는 몇몇 나라만 참여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고 국제환경을 진단했다.
국내적으로는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며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은 많은 위기에 처했지만 그럴 때마다 국민 모두 힘을 합쳐 지혜롭게, 또 용기있게 극복해 왔다"며 "저는 이 순간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책임을 부여받게 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위대한 국민과 함께 당당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정치 갈등 해소와 정치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방안으로 제기된 '협치', '통합', '소통' 등의 용어를 취임 연설에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대신, 정치권에 '반지성주의 극복'을 당부하며 야권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에둘러 내비친 것이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윤 대통령은 이어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것은 바로 '자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 10페이지 분량의 취임 연설에서 국내외 질서에 적용되는 보편적 가치로서 '자유'의 의미를 풀이한 대목이 4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윤 대통령 취임사의 핵심 키워드는 '자유'다.
윤 대통령은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며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했다.
또한 "자유는 보편적 가치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며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라며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 없이 자유 시민이라고 할 수 없다"며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개별 국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기아와 빈곤,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쟁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닌 지속 가능한 평화 추구해야"
윤 대통령은 이어 국내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법으로는 "이 문제를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도약과 빠른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라며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의 자유를 확대하며 우리의 존엄한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은 우리나라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며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이뤄낸 많은 나라들과 협력하고 연대해야만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자유민주주의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준다"며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이 된다"고 했다.
특히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전 세계 어떤 곳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저는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그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했다.
다만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선(先)비핵화를 전제로 대북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에 적지않은 변화를 예고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그룹에 들어가 있다"며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 규범을 적극 지지하고 수호하는데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시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확대하는데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국제사회도 대한민국에 더욱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