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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쁜 여자의 노브라만 비난하냐'고 묻기 전에

[프레시안books] 백설희·홍수민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페미니즘의 모순'이란 말에 대하여

지난달 말 언론을 통해 '한국의 인기 여성 DJ가 욕설이 프린팅된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미국 비행기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종차별, 복장단속 등의 논란이 이는 가운데 잡지 <맥심>이 해당 DJ와의 인터뷰를 자사 잡지 4월호 표지에 전면 배치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성폭력의 원인은 피해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해당 권호의 주제인 '내 맘대로 입을 자유'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성폭력의 원인은 피해자에게 있지 않다. 모든 여성들에겐 내 맘대로 입을 자유가 있다. 아주 당연한 상식선의 이야기다. 다만 <맥심>이란 잡지를 아는 이들은 이 메시지를 보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소위 남성지라 불리는 <맥심>은 남성 판타지를 구현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강도 높게 성적 대상화하는 콘텐츠를 생산해왔고, 그 과정에서 여성 대상 강간·살해 사건 등을 콘텐츠의 소재로 삼는 등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여성계와 각을 세워온 매체다.

그런 매체가 갑자기 여성운동 현장의 단골 문구를 주제로 내걸다니. 뭔가 이상하다 싶은 찰나 해당 권호 각 코너의 제목들을 보니 매체의 의도가 짐작이 갔다. '탈코 외치는 K-페미의 탈레반급 복장 단속', '그녀들은 왜 예쁜 여자의 노브라만 비난할까' 등 해당 권호의 코너 제목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호감을 얻지 못한 이성애자 여성들의 질투에서 기인한다는, 하여 매력 자본을 갖춘 다른 여성들을 오히려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전형적인 안티 페미니즘 논리와 맞닿아 있었다.

페미니즘에 쏟아지는 이런 무가치한 공세들은 보통 '페미니즘의 모순'에서 그 명분을 찾는다. 가령 거리에 나와 노브라 운동을 펼치는 일과 여성 아이돌 복장의 성적 대상화를 지적하는 일을 한 데 묶어 '모순 아니냐'고 힐난하고, '왜 예쁜 여자의 노브라만 비난할까' 비아냥대는 식이다. 반 페미니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선 이런 사례들을 자랑스레 끌고 와 "뷔페미니즘", "그런 모순을 견디는 게 페미니즘"이라는 등 조롱의 밈을 양산하기도 한다.

헌데 이게 정말 '페미니즘의 모순'일까.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문화가 만연하기에, 이 사회에서 여성은 몸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몸을 드러내야만 하는 "달성 불가능한 이중적인 메시지"(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를 강요받는다. 때문에 그 문화를 해체하기 위한 운동이 맥락에 따라 상이해 보이는 양상으로 펼쳐지는 것도 사실 당연한 수순이다. 가령 '주체적 섹시'나 '탈코르셋' 등의 주제가 페미니즘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을 낳아온 일만 봐도 그렇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페미니즘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선갈등 속에서 정반합의 과정을 거친다. 백설희·홍수민의 책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에 따르면, 이는 필연이다.

▲도서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백설희·홍수민 지음) ⓒ들녘

여성·아동을 둘러싼 '능동성과 수동성'의 함정

여기 다른 사례가 하나 있다. 초등학생 여성 아이돌 연습생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해 섹시 콘셉트 무대를 소화할 때 우리는 그 무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 무대는 꿈을 이루기 위한 개인의 주체적 무대인가, 여성·아동에 대한 혐오구조에서 비롯된 대상화적 무대인가. 실제로 지난 2월 종영한 문화방송(MBC)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방과후 설렘>에는 12 ~ 13세 여성 연습생들이 출연해 성인과 다를 바 없는 콘셉트의 화보, 무대 등을 선보이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걸그룹 멤버들이 전신을 화장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로 유혹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면, 소녀들은 그대로 모방합니다. 심지어는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친 뒤 영상을 찍어 올리는 키즈 댄스학원 유튜브 채널까지 있습니다. 영상 속 아이들은 앳된 얼굴에 메이크업을 하고 매혹적인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크롭탑과 핫팬츠 차림으로 골반을 강조하는 춤을 춥니다"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의 저자들은 이것이 비단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의 일탈적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 아이돌 산업이 자신이 기획한 여성 아이돌들에게 "진정한 소녀 정체성을 대표할 문화 아이콘의 지위"를 주면서 그들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모든 소녀의 미디어 '표상'"으로 자리 잡고, 결국 "여성 아이돌은 너무도 쉽게 여성들, 특히 소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

이때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키즈 유튜버들이 화장품 쇼핑과 극단적 다이어트 따위를 주제로 영상을 찍고, 12세 여성이 꿈을 이루겠다며 섹시 콘셉트를 소화하는 현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어린이들이 미디어에 의해 선동되고 타락했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다른 쪽에선 "소녀들이 현대 문화와 뉴미디어에 자율적으로 반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해당 현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어린이를 현대 문화의 수동적 피해자로 보는 시각과 능동적 행위자로 보는 시각이 공존"하는 것인데, 이때 여성·아동을 동원하는 미디어는 후자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때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아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활동가들은 아이들이 무력하고 의존적이라고 가정하는 듯합니다. 한편 이들로부터 '아이들을 조종하고 착취한다'고 비판받는 미디어는 오히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자율성과 능력, 영향력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유능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재구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고자 하는 일부 활동가들이 "여성을 무력하고 의존적이라고 가정하는 듯" 보이고, 여성 대상화의 선두주자인 <맥심>이 오히려 여성의 "자율성과 능력, 영향력을 강조"하듯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이 "소녀들이 처해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생략한 채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누군가는 소녀의 능동성을 강조하며 '그들을 억압하지 말라'고 주장하지만, "어른들에 의해 한계가 분명한 주체성만을 허용받은 채 소비주의와 연령주의, 위와 같은 이중 억압, 그리고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로 내던져진" 현실 속에서 소녀들의 능동성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소녀의 수동성만을 강조할 수도 없다. "어린이가 문화화되는 과정에서 자기가 속해 있는 문화의 행위자들에게 이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성인 여성들의 문화 전반은 이미 "아름다움에 대한 프로파간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녀들은 자신이 짓지 않은, 이미 짜인 미로 속에서 길을 찾도록 던져진 셈입니다. 때문에 그들이 여성 아이돌을 지망하거나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택할 때, 그가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문화 내에서 소녀들이 능동적인 존재인지 수동적인 존재인지 밝히는 일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없습니다"

▲문화방송(MBC)의 국제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렘 <방과후 설렘> ⓒ문화방송(MBC)

'소녀문화'의 역사를 되돌아보다

저자들은 자체적인, 즉 소녀들 스스로 주체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소녀문화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구현되어 있지 않음을 이 "미로"의 근본 원인으로 제시한다.

소녀라는 단어 자체에 "중립적인 의미 이전에 감수성·순수성·순결성·처녀성·취약성에 대한 암시가 함께 깃들어" 있는 것처럼 소녀문화는, 그 문화를 만들어온 여러 개인들의 필사적인 노력과 의미 있는 진보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자본주의와 성 불평등 구조의 개입에 의해 가로막혀왔다. 가령 지난 2018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가 지적했듯, 영화 <겨울왕국>이나 <히든피겨스> 등 의미 있는 여성서사의 성공도 결국은 개별 기업의 자본주의적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저자들은 '디즈니 프린세스'의 대중친화적 페미니즘이 보여주는 성공과 한계, <세일러문> 등 일본발 마법소녀물이 만들어온 소녀문화의 진보와 한계, 혹은 "소녀소설이라는 프로파간다" 등 문화 영역 전반에서 이뤄져온 성 불평등에 대한 저항과 협상의 역사를 되짚으며 이를 통찰한다. 독자들은 저자들이 제시하는 갖가지 사례를 통해 "안전한 디즈니 세상" 속에 머무를 것을 강요받아온 부모 소비자들의 입장을, "명예남성"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장 어슐러 르 귄의 고뇌를, 죄의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케이팝 시장 속 "여돌여덕"들의 양가적인 감정을 마주친다.

소녀문화의 역사는 '피해의 역사'나 '승리의 역사' 같은 하나의 정의로는 환원할 수 없는 복잡한 정반합의 과정을 포괄한다. 노선갈등과 시행착오, 작은 진보와 또 한 번의 좌절 등은 모순된 세계 속 소녀들이 "미로"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마주쳐온 필연이었다. 세상을 한 번에 바로잡을 만 한, 어떤 모순도 가지고 있지 않은 완벽한 이론과 운동을 겸비한 '마법소녀'는 없다. 저자는 이를 아는 것이야말로 소녀문화 재정비의 시작, 좀 더 직관적으로 말하면 성평등한 문화 구축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소녀들이 문화적 지형도에서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하려는 소녀들의 태도와 의지가 가혹한 환경에 의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해를 받아 어떻게 타협을 강요받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인 문화가 지금의 소녀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지도, 아동 청소년들이 스스로 성인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거부하고 긍정적인 면을 선택하기를 일방적으로 기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른들이 미리 해둬야 마땅한, 어른들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쁜 여자의 노브라만 비난하냐'고 묻기 전에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소녀문화의 역사 속 그 갖은 입장과 고뇌와 감정을 거쳐 '페미니즘의 모순'을 다시 생각하자.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강요된 모순에 맞서 끝내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모순을 견디는" 행위라면, "그런 모순을 견디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누군가의 비아냥은 역설적이게도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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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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