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2022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하는 평화통일시민강좌는 국가보안법, 북한바로알기, 한미관계, 미중전략경쟁, 평화기행을 주제로 4월 16일부터 12월 17일까지 매월 세번째 토요일 오후 3시, 신촌에서 진행됩니다.
아래는 지난 4월 16일 "폐지해야 할 악법,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진행된 장경욱 변호사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무서워하는 변호사
2000년대에 '백두청년회' 청년단체 사건이 있었습니다. 국정원 수사 요원 300여 명이 피시방에서 북측 자료를 올리고 있던 지태환 씨를 실시간으로 추적하여 덮쳐서 체포했던 사건으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태환 씨가 저의 첫 의뢰인이었습니다.
제 인생 첫 사건의 변호인으로서 첫 접견을 내곡동 국정원에서 했습니다. 국정원에 갔더니 무려 12명의 국정원 직원이 저를 마중 나왔습니다. 국정원은 조사동까지 가는 길에 저를 검은색 차량에 태우더니 "국정원 시설은 보안시설이므로 밖을 보면 안 된다"라며 창문을 가렸습니다. 새내기 변호사였던 저는 그 상황에 위축될 수 밖에 없었죠.
조사장에 갔더니 국정원이 접견 현장 사진을 찍겠다 해서 그거 가지고 실랑이를 하고, 민변 변호사는 접견 안 됐다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채증을 하겠다고 해서 그거 가지고 또 실랑이하느라 접견 시간의 대부분을 써버렸습니다.
접견실조차 국정원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의뢰인과 필담으로 간략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국정원에 와있으니 의뢰인도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대기하느라 시간 보내고, 국정원 직원들과 실랑이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니 국정원이 노크를 합니다. "지금 곧 6시인데 그만하셔야 합니다."
의뢰인을 도와주러 간 변호사인데 제 앞가림도 못 하겠으니 정말 무기력했습니다. 저는 매일 접견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 날 또 의뢰인을 접견하러 갔습니다.
아마도 국정원은 제가 다음날 또 올 것이라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전날 제가 접견하고 간 후 구타가 있었고 그다음 날 오전에도 구타가 있었습니다. 의뢰인이 제게 멍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회피하고 싶었던 이 사건을 회피하지 않은 이유가 제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날 변호사가 얼마나 무기력해 보였으면 변호사가 접견하고 가자마자 팼겠느냐는 생각이 드니 온 에너지를 피해자 보호에 쓰면서 전력 질주하게 되었습니다.
싸우다 보니 단련이 됩니다. 국정원의 온갖 공작과 수법들이 다 파악이 됩니다. 국정원이 1만 가지 전술로 나오면 저는 4만, 5만 가지 전술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전문가라기보다 국정원 전문가, 국정원 직원들이 무서워하는 변호사, 국정원에 잡힌 사람들에게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는 변호사입니다.
20여 년 전의 저의 첫 사건을 인연으로 지금까지 국정원에 긴급체포, 구속된 분들을 변론하며 현장에서 끊임없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요행수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분단 냉전체제의 현실이 그대로이면 국가보안법이 국회에서 폐지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 간첩 조작의 시작 '합동신문센터'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합동신문이라고 해서 국정원, 기무사, 경찰, 해양경찰, 통일부에서 합동 조사를 합니다. 탈북자들을 감금해서 고문하는 '대성공사'가 있었습니다. 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탈북했던 사람들은 곡괭이로 성기 고문을 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탈북자들이 공항으로 들어오면 공항에서 환영 행사하고 대성공사에 집단 수용되어 변호사도 없이 간첩 취급받으며 조사를 받습니다. 탈북자들의 인권은커녕 그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며 북쪽의 문화를 부정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행정조사 기간이 최장 90일로 단축되었습니다. 과거에는 180일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은 생활동에서 2인 1실로 생활하다가 낮에는 조사동에 가서 혼자 조사를 받습니다.
유우성 씨 간첩 조작사건의 유가려 씨도 180일 동안 독방에서 수사관들한테 조사를 받게 되어 허위자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외부와 접촉이 되어야 합니다.
탈북자들의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국선 변호인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북한이탈주민법을 개정하려고 했으나 문재인 정권에서 입법이 안 되었습니다. 대한변협이 추천하는 변호사가 상담을 해주는 정도인데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중앙합동신문센터는 유우성 씨 사건 이후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간첩이 조작되고 있습니다. 암호명 '국화' 사건이라고 탈북 여성이 허위자백해서 간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습니다. 이 여성은 현재 수원구치소에 있고 2심 진행 중입니다.
탈북자가 한국에 와서 안보 위협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신변 보호관의 감시를 받아가며 간첩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나요?
탈북자 간첩 조작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간첩행위라는 것이 탈북자들의 정보를 북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탈북자 정보가 북으로 가면 그의 가족들이 다 정치범 수용소로 가서 죽는다고 판사들이 믿고 있습니다.
북으로 돌아가기를 강력히 희망하는 탈북자 김련희 씨도 이런 이유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이탈리아 대사관에 근무하다 한국으로 온 조성길의 부인도 북에 딸이 있어 북한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탈북자들과 공안 경찰들의 신상 정보를 북에 전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북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나오는 탈북자들은 얼굴 다 내놓고 TV에 나오는데 그 사람들은 다 가족이 없다는 이야기일까요? '북한의 보위부 요원들이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체포해서 철삿줄로 손목을 묶고 끌고 간다'라는 것이 북중 간에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국가 간 범죄인 인도 조약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회주의 국가 북한과 중국 사이에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법정에서 무사통과되는 그런 파시즘적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조작이 쉽다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조작을 왜 하는지 아시나요? 쉽습니다. 들키지 않습니다. 저항하지 않습니다. 영화 <자백>을 보면 탈북자가 간첩 혐의를 받고 조사를 받다가 간첩이라고 자백한 이후에 합동신문센터 독방에서 자살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변사체 사건 조사가 안되었습니다. 그분을 행정 무연고로 공원묘지에 매장하였습니다.
영화 <자백>에서 최승호 피디가 북에 있는 딸과 통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유골을 북에 보내 드려야 하지 않나요. 북한은 월북한 사람들을 조사기록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내려보내기도 합니다.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조금만 생각해도 그분의 유골을 가족들에게 보내주고 그분이 사망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책임 있게 밝혀서 조사내용도 함께 북으로 보내야 합니다.
변호사도 국가보안법으로 몰고 가다
2013년 독일 포츠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 제 옆에는 북측의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이 앉았습니다. 검찰이 이것을 국가보안법으로 수사했습니다.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가 되기는 했습니다만, 국가보안법이 주는 공포라는 것이 대단합니다. '악마화된 북한'이 아닌 극우보수세력에 의해 내 생명이 언제든지 처단될 수 있다는 공포입니다.
국민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일상적으로 공포를 느낍니다. 제일 공포를 주는 것이 '내란음모'입니다. 역사적으로 '내란음모, 내란선동'에 의해 사람들이 탄압을 받고 죽었던 것을 보아오고, 그 사람들의 편에서 동조를 하면 나도 똑같이 처벌받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외면하거나 거리를 두게 됩니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 놓은 공포가 해방 이후 계속해서 축적되어 왔습니다. 국가보안법체제 하에서 친북은 금기의 영역입니다. 민중의 공포와 고통 때문에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 피해자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탈북자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다
국정원이 끊임없이 간첩조작을 하다 보니 자신의 조작이 들통나면 국가보안법 지배체제가 무너진다고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1심에서 유우성 씨가 무죄가 나오니 국정원은 2심에서 중국 공문서까지 위조해서 재방북했다며 간첩으로 몰아가려 했습니다. 우리 변호인단이 중국 공안기관에 직접 가서 그 문서가 위조였음을 증명했습니다.
제가 유우성 사건을 밝힌 이후에 국정원이 2014년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홍강철'사건을 발표했습니다. 유우성 씨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변호인단을 새로 꾸려 무죄를 받아냈습니다. 그때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제 이름과 홍강철이 언급되었습니다.
당시 비서실장이 김기춘이었고 민정수석 김영한 업무일지에 "장경욱 변 철저 고발 건 조사 – 안타깝다 – 변 정지 – 법무부 징계"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유우성 씨 사건 하나만 싸울 때는 잘 몰랐는데 홍강철 씨 사건까지 하다 보니 저는 김기춘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홍강철 씨 사건까지 무죄를 증명해 내니 이들이 그로기 상태가 된 것입니다. '사법부 길들여라', '장경욱 징계 줘라'는 등의 메모가 엄청났습니다.
남북경협사업가도 간첩이 되는 세상
최근 남북경협사업가 김호 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년 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충격적입니다. 2010년 5.24조치 이후로 남북협력 사업이 모두 금지되었는데 김호 씨는 중국 교포의 중개를 통해 계속 사업을 했습니다. IT 관련해서 북한 기술을 활용하여 제품을 개발하는 사업이었고 북한에 하청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IT 기술자가 북측에서 유명한 김일성대 교수인데 사이버테러를 했다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합니다. 북의 지도자만 반국가단체 구성 수괴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북측 민중 모두가 반국가단체 구성원이 됩니다. 외국 국민 전체를 내란 구성원으로 처벌하는 그런 법률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국가보안법은 동족 전체를 적으로 규정해버립니다.
언론에 증거도 없이 북한이 비트코인을 해킹해서 그 돈으로 미사일을 쏜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것을 판사가 또 믿습니다. 북의 해커들이 칠보산호텔을 거점으로 해서 대한민국을 매일같이 해킹한다고 합니다.
김호 씨는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지속 한 것뿐인데 국정원은 김호 씨가 북한의 사이버테러의 통로가 되었다며 처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0년 동안 국정원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교류협력 사업인데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호 씨를 간첩으로 몰았습니다. 5.24조치 때문에 승인이 안 났습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도 아니었습니다.
5.24조치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해오신 분을, 용기를 내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선구자 역할을 하셨던 분을 법원은 4년 형을 판결했습니다. 소위 엘리트라는 판사들이 증거도 없는 사이버테러를 북 소행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법정입니까?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는 전 국민
국가보안법의 본질은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북한을 악마화시키고 동족을 알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북맹이 되고 CIA와 국정원의 정보조작들을 진실로 믿게 됩니다. 국민은 거짓과 진실,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이 구분이 안 되는 분단 트라우마, 분단 포비아 상태에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지배체제가 강요하는 의식에 갇혀 있습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론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 체제가 낳은 동족에 대한 공포와 불안, 불신과 증오, 혐오 등의 비정상적 감정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개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북한과 연대할 수 없고 오히려 북한을 적대하는 외세와 손잡고 외세의 주장은 믿으면서 동족의 주장은 왜곡하거나 조롱해 버립니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무고한 형사처벌을 받았던 양심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수는 국가보안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에 맞서 저항하였으므로 오히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로 볼 수 없습니다. 한국 민중 모두가 누구나 기나긴 국가보안법의 악행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본능적으로 외세와 극우 보수세력의 야만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장은 다 옳고 북한의 주장은 다 왜곡시켜버리니 우리 사회에서 '올바름'이란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민족과 민중의 이익보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제국주의로 외세의 정치·군사·경제적 이익에 복무하고 있는 체제에서 살고 있습니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이 나오면 어떡하냐?"라는 질문에 소위 진보적 학자라는 사람들이 "경범죄로 처벌하면 된다"라고 답합니다. 저는 이런 대답에 모욕을 느낍니다. '김일성 만세'를 외치면 왜 안 되나요?
'일부 반통일, 친북 인사들 말고는 국가보안법이 불편한 사람이 없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로서 다양한 의견이 보장되며 북한의 체제에 비해 우월하다' '한국의 안보는 국가보안법이 없다고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논거를 들며 폐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구속자가 줄어드니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국가보안법은 파시즘적 악법입니다. 동족을 적대하고 악마화하는 의식 자체로 우리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 민중 전체가 국가보안법 피해자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일제가 패망하고 치안유지법이 폐지되는 것과 동일한 제2의 해방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남한 사회에서 파시즘적 영향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미군이 철수되고 그 과정에서 국가보안법도 폐지될 것입니다.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변화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국주의는 세계체제이며 세계 각국에 미군 기지들이 있고 미국이 내정간섭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또한 이에 대항해서 싸우는 자주적 국가들이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투쟁은 국제연대 투쟁이 필요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싸우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해방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기쁨을 함께 누리고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단결해서 싸웠습니다. 그런 시기를 위해 능동적으로 힘을 준비하고 힘을 갖추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변호사로서 우선은 탈북자 간첩 조작사건, 합동신문센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새로운 간첩 조작 시도에 대한 감시, 그리고 고난의 행군 이후 간첩으로 조작된 수많은 탈북자를 찾아내 그 사람들이 싸울 수 있도록 매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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