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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 전쟁의 철학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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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 전쟁의 철학적 이해

[김창훈 칼럼]

우크라이나로 세상이 떠들썩한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우크라이나가 선한 지 러시아가 악한 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을 군사 강대국의 약소국 침공이나 서방을 위해 대리전(proxy war)을 수행하는 우크라이나 이런 일면적 관점보다는 좀 더 철학적 문제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이 철학적 문제는 앞으로 불어 닥칠 다극화 세계의 평화를 담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관건이다. 아직도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가 당면한 이 미증유의 혼란을 극복한 역사적 사례는 오직 레닌 한 사람뿐이었다. 이 철학적 문제는 개별 '민족과 제국'의 관계이다.

먼저 우크라이나 상황을 살펴보자.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시아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 루한스크 공화국의 갈등으로 시작되어서 결국 2014년 1차, 2015년 2차 민스크 협정을 체결하게된다. 우크라이나 정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2차는 독일, 프랑스, 러시아까지 포함한 협정이었지만 우크라이나정부는 협정을 준수하기 보다는 분쟁지역을 진압하는데 바빴다. 이 과정에서 극우 아조프 민병대가 정부군에 편입되어 다수의 잔혹 행위를 저지른다. 이들의 잔혹함이 러시아의 분노를 일으켰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해결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파는 러시아를 패권주의라 손가락질하고, 좌파는 우크라이나의 극우세력을 지원해 이 사단을 만든 미국과 나토를 비난한다. 그러나 젤렌스키의 입장도 이해가 갈만하다. 어떤 국가도 자국 내 분리주의운동을 순순히 용인해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금 현재 서구에만 국한해도 북아일랜드, 카탈루냐, 바스크, 퀘벡, 북이탈리아, 스코틀랜드, 플랑드르, 바이에른, 코르시카 등에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다. 지난 200년간 민족주의는 뜨거운 감자였다. 동유럽의 민족 분쟁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민족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는 또 다시 재앙적 상황으로 끌려 들어갈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모든 사람들은 '가을이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소했던 불씨가 민족주의라는 인화성물질을 만나면서 악몽이 시작되었다. 민족과 민족 갈등에 대한 해결책은 있을까? 역사 속에서 단 하나의 성공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레닌이다.

▲ 구(舊) 소련은 1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민족을 구성된 연방제였다. ⓒgoogle.com

레닌과 소비에트 연방은 왜 민족 문제에 진심이었을까? 시작은 혁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역사가의 한사람으로 평가되는 에릭 홉스봄의 책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이하 홉스봄 인용은 전부 같은 책에서 인용)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레닌이 피압박 식민지 인민의 해방이 세계 혁명의 중대한 잠재력임을 발견한 이후, 공산주의혁명가들은 중심부제국주의자들이 혐오하는 것은 어느 것이나 노동자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것이라는 논거에서 식민지 해방 투쟁을 위해 전력을 투구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전 세계 수많은 약소민족들을 지원했다. 이것이 조선인 독립 투사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되었던 까닭이고 현재의 러시아 제재 국면에서도 제3세계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다.

소수민족을 이용했다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민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방'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정치적 발언권이 없는 민족은 민족이 될 수 없었다. 그냥 종족(ethnic)으로만 남겨질 뿐이다. 종족이 국가 정치체와 결합되어야만 종족은 비로소 민족이 된다. 그래서 소련은 많은 소수종족들은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홉스봄의 설명이다. "소련의 공산당 정부는 의도적으로 아시아 이슬람교인들 또는 벨라루스 사이에 역사적 전례가 없는, 종족과 언어에 기초를 둔 영토적인 '민족적 행정단위', 즉 근대적인 의미의 '민족'을 조성하였다. 카자흐, 키르키즈, 우즈벡, 타지크와 터키 '민족'을 기초로 소비에트 공화국들을 세운다는 생각은 중앙아시아인들 어느 누구의 원천적인 열망이 아니라 소비에트 지식인들의 이론적 구성물이었다."

소수민족들의 국가만들기를 돕는 것만으로 끝났을까? 그들 소수민족들이 국가를 만들고 나서도 끊임없이 지원했다. 홉스봄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브레즈네프 시기 동안 지역적·지방적 자율성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러시아인의 끊이지 않는 불만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다른 공화국들은 러시아공화국의 주민보다 형편이 나았다." 소비에트 연방의 핵심 국가 러시아는 다른 이웃을 지원하기 위해 그들보다도 더 가난하게 살았다는 말이다. 사실일까? 사실이다.

촘스키의 말이다. "소련은 실제로 동유럽에게 보조금을 쥐어주면서 도운 셈이고 덕분에 동유럽은 결국 소련보다도 더 부유하게 되었으니 좀 놀라운 일이 아닌가. 소련제국은 자기네 식민국가들보다 오히려 더 가난했던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다."(<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 인용)

이런 방식으로 소수민족에 기반한 신생 국가들이 다수 등장했는데 소련은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평화로운 관계망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홉스봄의 말이다. "1917년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이 심각히 고려했던 유일한 헌법적 장치는 민족 연방과 자치를 보전키 위한 것이었다. 기타의 헌법적 주제는 그것이 존재했던 곳에서 오랫동안 순전히 명목적이었던데 반면, 민족적 자치는 끊임없이 실질적 운용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가 적어도 이론적으로 구성 민족들 중 어느 한 민족과 동일시되지 않고 각 민족의 이익을 좀 더 높은 공통의 목적보다 밑에 두는 한, 민족주의 체제가 아니다."

말이 좀 어렵다. 풀어 쓴다면 소련에게 있어 핵심적 과제는 각 민족들의 자치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특정 한 나라를 다른 나라보다 우위에 두지 않는, 그런 시스템 만들기였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자국의 배타적 이익을 중시하기에 이런 시스템은 홉스봄에 따르면 민족주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소수민족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시키도록 노력하면서 모두가 공평할 수 있는 시스템, 소비에트 연방은 이것을 꿈꾸었다.

홉스봄의 소련에 대한 최종 평가다. "다민족 국가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이룬 위대한 업적은 국가내 민족주의의 파괴적 영향을 줄였다는 점이다." 유고내전을 생각하면 유고의 수백 배 크기의 소련에서 평화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경이적이다.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 지역을 독립시키라는 것이 아니었다. 도네츠크, 루한스크는 그저 자치권을 요구했을 뿐이다. 민스크 협정을 8년간 지연시킨 건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를 비난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라 국가 내부에서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함께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분쟁은 정치적 문제이기 이전에 철학적 문제가 된다. 약자 우선 배려의 원칙으로 설계된 롤스의 '차등원칙'의 문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정치의 과잉'이 '철학의 결핍'과 연결될 때 어떠한 재앙을 낳을 수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의 소수민족 원칙은 민족을 넘어서는 원리가 될 수 있다. 지역 패권국과 이웃 국가들의 관계도 이 원칙으로 구성될 수 있다. 21세기에는 다극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다극화는 전 세계에 지역 패권국들이 여럿 들어선다는 의미다. 이런 세력 변동의 시기는 또한 거대한 폭발의 시기이기도 하다. 폭발은 민족을 매개로 촉발된다. 민족 분쟁에서 소련을 참고해야 할 이유다. 그리고 레닌에게 배워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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