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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는 왜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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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는 왜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드는가

[프레시안 books] <가구, 집을 갖추다>

누군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의 대답은 '리모델링'과 '인테리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리모델링은 큰 도전이었다. 신축 건물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돈 낭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방면으론 경험이 전무한 '쌩초보'. 하지만 내부 인테리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난 제법 큰 돈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리모델링 업체부터 자재 하나하나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직접 골랐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난 다음엔 파주‧일산‧남양주 할 것 없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구를 모았다. 일하는 시간 말고는 집을 꾸미는 데에만 에너지를 썼다. 벽지부터 가구, 조명, 그릇까지 이 집 안에 내 취향을 거스르는 물건은 없다.

튼튼한 북미산 화이트오크 평상에 대방석을 올린 거실 소파에 앉아 집안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뿌듯함이 차올랐다. 코로나 탓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던 터라 만족감은 더욱 컸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예전보다 힘들다는 생각을 덜 했다. 리모델링은 결코 '돈 낭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의 투자로 최대의 행복을 누리게 하는 '갓성비' 작업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들었다.

▲<가구, 집을 갖추다>(김지수, 싱긋 펴냄) ⓒ싱긋

생소하지만 친근한 '리빙 인문학'

<가구, 집을 갖추다>(김지수, 싱긋 펴냄)는 제목보다 '리빙 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이라는 부제에 더 끌려 집어 든 책이다.

'나만의 작은 문명'이라니. 이보다 더 근사하고 절묘한 비유가 있을까. 특히나 무언가를 이뤄본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2030세대라면 더욱 공감할 법한 표현이다. 커리어는 이제 시작 단계인데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반면, 내 공간은 크든 작든 마음대로 꾸며 완성할 수 있다. 요즘 2030세대가 인테리어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 성취 욕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 양식이 모이면 문화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저자는 집을 갖추는 과정에 깃든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특정 시대의 가구의 모습과 역사적 배경을 결부시킨다. 리빙 문화와 인문학을 결합한 것이다. 그러니 저자가 명명한 '리빙 인문학'이란 용어가 처음엔 생소하게 다가오다가도 따져 보면 서로 겉돌지 않고 잘 어우러진단 생각이 든다.

"리빙 문화는 사람과 관계된 풍속의 사연이 고여 있고 역사의 민낯이 숨겨져 있는 인문학의 보고다. 가구와 인테리어를 포함한 홈리빙 문화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했는지를 살피다 보면 그 변화와 흥망성쇠가 당대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리빙 인문학에 대한 소고라 보는 것이 좋다."

리빙 문화가 '공간'을 근간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TV 출연으로 유명세를 탄 유현준 교수의 여러 저작이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공간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진열하고 관련된 풍부한 상식을 알려준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그런데 이들이 다루는 주요 콘텐츠가 건물이냐, 가구냐인 것을 떠나서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유현준 교수의 직업이 건축가인 반면, 이 책의 저자 김지수는 가구 회사 대표다.

이 책의 부제만큼이나 흥미로운 지점은 저자가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라는 점이었다. 시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플레이어'가 성찰을 기본으로 삼는 인문학을 선보인다는 데 대한 호기심도 책장을 넘기는 큰 동력이 됐다.

ⓒ인스타그램

집은 잘 꾸며져야 한다

인테리어를 준비할 때, 가구점만큼이나 많이 다녔던 곳이 바로 카페였다. 평소에도 카페 가는 걸 좋아했지만, 이사를 앞두고는 더욱 일삼아 다녔다. 카페는 도처에 널린 '쇼룸'이었다. 인테리어의 목표를 딱 정한 적은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카페 같은 집 만들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는 아마 홈 인테리어를 하려는 모든 이의 내심의 목표일 것이다.

카페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 문화를 읽는 중요 키워드 중 하나다. 우리는 카페에서 밥값 못지않게 많은 비용을 치르고, 저녁 술자리만큼이나 긴 시간을 보낸다. 데이트도, 공부도 카페에서 한다. 만인의 아지트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카페가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집단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이렇게나 카페를 사랑하는데 우리는 왜 카페를 즐겨 찾는지 행위의 동기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간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됐던 가설은 대다수, 특히 젊은이 다수의 주거 공간이 쾌적하지 않기 때문에 카페에서 돈을 내고 잠시나마 쾌적한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설명만으론 우리가 카페에 가는 이유를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카페가 주는 '감성적‧심리적 만족감'에 주목한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이론을 잠시 빌리자면, 카페라는 말은 기능적 목적이 시니피앙(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뜻하는 기표)이 되는 것이고 시니피에(내포된 의미를 뜻하는 기의)는 감성 충족과 그에 따른 심리적 만족이 되는 것이다.(중략)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성적 만족감이 커피 한 잔 값으로 충족된다."

이 문장들을 읽다 문득 깨달은 게 있다. 그러고 보니 이사한 뒤로는 그 좋아하던 미술관에 거의 가지 않았다. 가구 구입을 위해 다양한 쇼룸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카페 투어'를 하면서, 혹은 '카페 같은 집'에 살면서 심미적 만족감이 적잖이 채워진 것도 같다. 저자의 분석은 꽤 일리 있는 지적인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카페 투어'가 어려워졌고, 감성 결핍에 허덕이던 2030세대가 직접 나서서 '카페 같은 집'을 직접 꾸미게 됐고, 그리하여 지금의 집 꾸미기 열풍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는 집 꾸미기를 더욱 독려한다. 어쩌면 대형 가구 업체 대표의 흔한 소비 촉진 멘트라며 삐딱하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왜 집을 꾸며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설득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맘껏 반영하는 동시에 어떤 자세와 모습으로도 가장 편안하고 당당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는 곳이 집이다. 그래서 집은 잘 꾸며져야 한다. 남들이 보지 않는다 해서 집은 어지럽게 방치해두고 밖에서는 좋은 차에 좋은 옷을 입고 허세를 부리는 것은 열등의 시대에나 어울린다."

"내가 사는 집에 관심을 가지며 잘 꾸미고 관리한다는 것은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드는 일이자, 개인이 주체가 되는 문화를 누리는 것이다."

ⓒ핀터레스트

<월든>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저자는 '개인이 주체가 되는 문화'에 대한 진득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러한 작업 중 하나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는 "소로의 메시지는 '나만의 문명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이다"라고 역설한다.

"자연을 노래하는 생태주의자로도 알려져 있는 소로에게는 사실 자연에의 탐닉보다 우선적인 것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연성 그대로의 삶, 온전히 내 뜻에 따르는 주체적 삶을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나를 통제하는 사회제도와 문명들이 그에게는 매우 거추장스럽고 심신을 옥죄었을 것이다. 그래서 월든에서의 자급자족의 삶과 자기 절제는 자연 파괴가 필연적으로 따르는 도시화 산업화 같은 인류 문명에 대한 의식적 항거였다."

여기서 저자는 묻는다. 내가 일군 공간이 온전히 내 취향에 따른 것인가. '내 취향'은 과연 남의 취향을 따른 것이 아닌 오롯이 나만의 취향인가.

"우리는 생산자와 마케터가 시장에 갖다 놓은 이데올로기, 윤리, 라이프스타일, 생활용품 등을 얼마나 여과 없이 수용해왔는지 그리고 거기에 개인의 자유의지와 취향보다 남들의 시선과 과시에 대한 욕망이 너무 많이 스며든 것은 아니었는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비가 늘어나면 그에 따라 공급이 넘쳐나게 된다. 과도한 공급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게 된다. 이는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삶의 목적에 역행한다. 여가를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가의 부족은 노는 것을 경시하게 만들고 자신의 취향을 잊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소비는 이런 연쇄적 절차에 따라 우리 삶을 멍들게 만든다. 놀랍게도 소로는 자본주의 초기에 이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가구를 사려면 자신의 취향을 알아야 하고, 취향을 알기 위해선 많이 보고 많이 놀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일하느라 자신의 취향을 알아갈 기회를 획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취향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복사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취향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인테리어 플랫폼에 올라온 예쁜 집들이 조금씩 닮아 보이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핀터레스트

홈코노미 시대에 어울리는 인테리어는?

저자는 건강한 리빙 문화를 해치는 가구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타깃이 된 가구는 '맘스데스크'다. 맘스데스크는 부엌 한쪽에 딸린 작은 책상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부엌일을 많이 하는 '엄마'에게도 책상이 필요하다는 착상에서 나온 가구다.

맘스데스크를 만든 취지는 이해한다. 우리 집 사례만 봐도 그렇다. 처음 우리 집 서재는 책이 많고 집에서 자주 일하는 나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남편까지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업무 공간은 계획보다 하나가 더 필요했고, 요리를 담당해서 부엌을 자주 들락날락해야 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식탁을 업무 공간으로 겸하게 됐다.(서재 의자가 생각보다 썩 맘에 들지 않은 탓도 있긴 하다.) 그러나 맘스데스크는 명칭부터 기능까지 의구심이 드는 가구다. 외피만 여성을 '배려'할 뿐, 기실 여성을 부엌에 가두는 가구 아닌가.

저자는 서윤영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인용해 맘스데스크를 비판한다. "최첨단 고급 가전제품을 갖춘 부엌을 사용한들 그건 주방일을 책임지는 하녀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고, 화려한 드레스룸과 파우더룸을 갖췄더라도 그저 소비 문화의 주체로 인식되는 상황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주거의 근대화를 강조한다.

"사회 변화는 매우 더디지만 그래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남성의 전유물이던 서재도 사라진 지 오래며 안방이라는 표현보다는 부부 침실이라는 용어가 점차적으로 정착되고 있다. 이는 남성 혹은 부모 중심의 가정 문화에서 자녀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게 인정받는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주거의 근대화를 위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거실 소파를 없애고 부엌의 식탁을 좀 더 큰 사이즈로 바꿔서 거실에 가져다 두고 식사, 파티, 독서, 학습을 따로 혹은 함께 하라는 것.

"홈코노미 시대가 부여한 오랫동안 함께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파편화된 지금의 가족공동체가 가족 개개인의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더불어 가족 모두의 느슨하지만 끈끈한 신뢰의 연대가 복원되고 지속되리라 믿는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좋은 리빙 문화란 "개인이 주체가 되는 문화"다. 이를 깨달으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도배된 집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지. 이제 나만의 작은 문명이 아닌, '우리의 작은 문명'을 위한 리모델링 시즌2를 고민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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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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