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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유럽으로 번진 '끝없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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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유럽으로 번진 '끝없는 전쟁'

[해외 시각] '평화 회복'에 집중해야, 그 이상을 추구하면 핵전쟁 가능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형식상이나마)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들 간에는 전쟁이 없다는 이른바 '민주평화론'의 비극적 반증이었다. 러시아는 그간 과거 소련 소속이었던 국가들의 분쟁에 개입해 왔고, 그 국가들의 독립 과정에서 발생한 숱한 국지적 전쟁을 치러왔던 나라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있었던 지난 1월의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 당시 러시아는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하며 군사 전개 능력을 과시했다. 최근까지도 '실전 경험'을 쌓고 과시해 온 러시아군은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있다. 왜 그럴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서 봤을 때) '유럽의 입구'라는 점, 둘째,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형제 국가'를 상대한 전쟁이라는 점을 따져 봤을 때 우크라이나는 그간 러시아가 수행해 온 전쟁과 다르다. 유럽을 향한 전쟁이고, '동족상잔'에 가까운 전쟁이다. 왜 이런 무리한 전쟁을 개시했을까. 

러시아는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정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베트남'이 될 것인가. 문제는 러시아에 '확전 자제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민주적 통제가 약한 핵보유 국가의 행보에 대한 불안한 시선들이 많다. <프레시안>은 관련해 영국 언론인 패트릭 콕번이 미국의 진보언론 카운터펀치에 지난 3월 25일 실은 칼럼을 소개한다. 칼럼의 제목은 "만약 나토가 평화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우크라이나는 또다른 '끝없는 전쟁'으로 변할 수 있다.(Ukraine Could Turn Into Another Endless War, Especially if NATO Decides More Than Just Peace is Needed)"이다.편집자

사람들은 유럽의 한 부분이 화염에 불타고 있는 지도를 바라보며 공포에 떨고 있다. 전문가들은 1945년 이후 처음으로 한 유럽 국가가 다른 유럽 국가를 침공하는, 또한 1990년대 발칸전쟁 이래 (유럽에서) 최초의 거대한 군사 충돌이 발생한 데 대해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더 큰 지도,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이 포함된 지도를 펼쳐 놓는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우크라이나만이 유혈지대인 것이 아님을, 유럽의 평화도 이제는 확실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동서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이지리아까지, 남북으로는 터키에서 소말리아, 예멘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간 계속 확대되어온 전쟁 지역이 점차 북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전쟁과 우크라이나 남부의 거대한 지역(대중동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른 10여개 재래식 전쟁 및 게릴라전쟁들 간의 유사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 전쟁들의 유사점에 대해 흔히 러시아의 잔혹행위를 지적하곤 한다. 즉 마리우폴과 카르히우 등에 대한 러시아의 폭격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군의 다마스쿠스 및 알레포에 대한 폭격과 (그 잔인함의 측면에서) 유사하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이나 (시리아) 라카, (이라크) 모술에 대한 미국의 폭격도 엄청난 물리적 파괴와 막대한 민간인 피해를 초래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전쟁과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전쟁들 사이에 더욱 불길한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후자의 전쟁들 대부분은 분명한 승자나 패자가 없는 교착 상태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해당 국가들은 철저하게 파괴됐다는 점이다. 끝을 모르는 폭력은 대량 난민, 경제 파괴, 사회 해체를 초래했다.

1980년 그리스와 비슷했던 이라크의 생활수준은 40년이 지난 이제 말리 수준으로 추락했다. 바그다드나 다마스쿠스에서 일했던 숙련된 외과 의사들은 캘리포니아, 뉴질랜드로 떠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일이 우크라이나에서도 벌어질 수 있을까? 전쟁은 놀라울 만큼 짧은 기간에 교착 상태로 돌입했고 그 결과는 아마도 중동지역의 전쟁들과 비슷해질 것 같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대를 파괴하지 못했고, 도시들을 점령하지도 심지어 포위하지도 못했으며, 제공권 장악에도 실패했고, 서방측의 무기 공급을 저지하지도 못했다. 모스크바는 이러한 초기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이나 장비 동원에도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는 아직 군사적으로 패배한 것도 아니며,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쉽사리 장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포격으로 폐허로 만들 능력 정도는 갖고 있다. 러시아가 전투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한 진지한 평화협상이 시작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아마도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도시들의 상당 부분이 다마스쿠스나 (바그다드 서쪽) 팔루자의 저항 군 거점과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트럼프가 말한 "끝없는 전쟁의 시대(the era of endless war)"를 살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영구분쟁이 될지도 모른다. 분명히 러시아는 당초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푸틴은 어떤 이유로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우크라이나는 생존에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국토의 일부는 퇴각을 거부하는 강력한 적에 의해 점령돼 있다. 양 측은 자신의 입지 향상을 희망하겠지만 일방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전쟁이 러시아와 나토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돼 핵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면전 및 핵전쟁으로의 확대 가능성은 2월 24일 러시아 침공 이후 두 가지 측면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첫째, 러시아군의 전투력이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약하다는 점. 이 때문에 크렘린은 군사적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둘째, 애당초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한 푸틴의 역사적 실책은 크렘린이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똑같이 중요한 것은 크렘린이 침공에 대한 미국 및 유럽의 분노에 찬 대응 가능성을 매우 과소평가 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이러한 일련의 러시아의 오판이 앞으로도 계속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서방의 정치지도자들은 아직까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에 그칠 뿐,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같은 러시아와 직접 군사 대결은 피할 것임을 분명히 해왔다. 그러나 러시아 폭격에 의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희생과 주거 파괴의 참상이 매일 밤 서방의 TV로 알려질 경우 지도자들에 대한 압력은 거세질 것이다.

서방이 직접 행동에 나서 전쟁 목표를 우크라이나 수호에서 모스크바의 정권 교체로 확대하라는 압력 말이다. 그 경우 전쟁은 더욱 장기화 될 것이며 이에 따라 희생은 더욱 커지고 평화 협상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국가의 존립이 위험에 처할 경우 핵무기 사용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일관된되게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시리아와 같은 교착 상태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훨씬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은 만일 러시아가 나토와 전쟁을 벌여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브뤼셀 소재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iop)은 “(서방의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이러한 주장들은 막연한 추측과 희망 섞인 기대에 따른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동지역 전쟁들의 교훈은 교착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며, 마침내 교착 상태가 깨질 경우 발생하는 폭력은 훨씬 더 참혹하다는 점이다.

▲로켓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아파트 건물 앞에서 한 여성이 절규하고 있다. (키이우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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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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