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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청소노동자는 '알 수 없는' 성분의 가루와 약품을 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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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청소노동자는 '알 수 없는' 성분의 가루와 약품을 치운다

[암에 걸린 반도체‧디스플레이 청소노동자] ① 노동환경과 위험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서는 누가 일할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오퍼레이터다. 설비 앞에 머물며 제품을 생산한다. 다음은 엔지니어다.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장비 엔지니어와 특정 공정 전반을 관리하는 공정 엔지니어가 있다.

그들 곁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또 있다.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 청소노동자다. 이들은 오퍼레이터, 엔지니어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바닥과 벽면의 먼지와 약품을 닦고 방진복, 방진화 등을 정리한다.

첨단산업의 유해화학물질이 사람을 가려가며 영향을 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청소노동자의 위험은 주목받지 못했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반도체 노동자 20여만 명의 암 발병률을 일반인과 비교한 역학조사를 발표할 때도 청소노동자 이야기는 없었다.

2020년 8월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삼성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청소노동자 5명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그 중 산재 인정을 받은 이는 한 명뿐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청소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위험에 맞닥뜨리고 있을까. 이들의 병이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반올림의 소개로 지난달 삼성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하다 암에 걸린 세 명의 청소노동자, 그리고 그들을 대리한 두 명의 노무사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삼성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 청소노동자는 크게 둘로 나뉜다. 클린룸(Cleanroom) 청소노동자와 스막룸(Smock room) 청소노동자다.

클린룸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으로 제품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먼지 한 톨에도 불량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스막룸은 작업 준비 공간이다. 클린룸 입장 전과 퇴장 후 방진복 착용과 탈의, 에어샤워 등을 하는 곳이다.

클린룸 청소노동자와 스막룸 청소노동자의 업무 형태는 다르다. 하지만 성분을 알 수 없는 약품과 가루에 노출되며 일한다는 점은 같다.

하루 7시간, 알 수 없는 성분의 먼지와 약품 닦은 클린룸 청소노동자

김은주 씨(가명, 50)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 OLED 생산 공정 클린룸 청소노동자였다. 해당 공정의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1년 4월, 지인의 소개로 삼성전자 청소 하청업체에 입사해 8년 정도 일했다. 면접 때 "클린룸에서 일할래요. 스막룸에서 일할래요"라는 질문에 "어디서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클린룸에 배치됐다. 그때는 클린룸과 스막룸이 뭔지도 잘 몰랐다.

김 씨의 출근시간은 평일 오전 8시, 퇴근시간은 오후 5시였다. 출근하면 정규직과 구분된 하청업체용 스막룸에서 방진화와 방진복, 겉장갑과 속장갑, 마스크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클린룸에 들어갔다. 김 씨가 쓴 마스크는 필터가 없는 일반 마스크였다. 클린룸에 들어갔을 때 가장 괴로운 건 마스크를 그대로 뚫고 들어오는 냄새였다.

"오징어 냄새, 한약 냄새, 생선 썩은 냄새, 소변 찌든 내, 그런 냄새가 나요. 그게 다 약품 냄새였던 거죠. 곰팡이 냄새도 나고 부탄가스 냄새 날 때도 있고. 더 나는 날도 덜 나는 날도 있는데,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픈 때도 많았어요."

김 씨의 주 업무는 면포를 밀대에 꽂아 클린룸 구석구석을 돌며 통행로와 벽면 등의 먼지를 닦는 것이었다. 고장 우려가 있다고 해 생산 설비를 직접 닦지는 않았지만, 매일 설비 근처를 지났다. 오퍼레이터나 엔지니어가 설비를 열 때면, 솟구치는 열기와 약품 가루가 보였다.

생산, 수리 과정에서 클린룸 곳곳에 떨어진 약품을 닦는 것도 김 씨의 일이었다. 약품을 닦을 때는 면포가 아닌 일회용 부직포를 썼다. 재사용되는 면포로 약품을 닦다가 세탁기에 들어가면 다른 세탁물 전체가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정체 모를 액체의 산성·염기성을 검사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클린룸 안에서 쓴 장갑은 나올 때 벗어서 버렸다.

김 씨의 청소 구역은 크게 둘이었다. 생산 설비가 있는 팹(FAB, fabrication facility)층과 팹층 아래 공기와 오폐수를 밖으로 빼내는 배관이 있는 알피(RP, return plenum)층이다. 오퍼레이터들은 주로 팹층에서 일한다. 알피층은 청소노동자와 엔지니어가 아니면 들어갈 일이 거의 없는 곳이다. 김 씨는 알피층을 팹층보다 일하기 힘들고 위험한 공간으로 기억했다.

"냄새도 더 심하게 나고. 또, 원래 라인(팹층)이 소음이 심하거든요. 말을 크게 해야 해요. 그런데 알피층에 들어가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더 커요. 배관에 머리를 부딪치면 안 되니까 안전모도 써야 되고요. 팹층 바닥 타일에 구멍이 뚫려있거든요. 거기로 팹층에서 가루랑 약품이 떨어지기도 해요."

일하는 날이면, 김 씨는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을 빼고 7시간 정도 클린룸에 머물렀다. 방진복을 입고 냄새와 소음에 둘러싸여 알 수 없는 먼지와 약품을 닦았다. 김 씨와 동료들도 그 일이 위험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왜,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기 어려웠다.

"건물 안이 위험하다는 인식은 다 있었어요. 회사도 위험하다는 거 다 알아요. 관리자들 보면, 1년에 한 번 들어올까 말까 해요. (어떤 약품을 쓰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나요?) 그런 건 없죠.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냄새가 나서 머리가 아파도 그냥 참는 거지."

2018년 12월, 김 씨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앞이 깜깜했다. 머릿속에는 아산공장에서 일하며 약품과 가루를 치우고, 독한 냄새에 시달리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2019년 3월 김 씨는 반올림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공단은 김 씨의 병이 산재가 아니라고 했다.

▲ 어느 클린룸. 클린룸에는 오퍼레이터와 엔지니어만이 아니라 청소노동자도 있다. ⓒ픽사베이

하루 수백벌, 약품 묻은 보호장구 정리한 스막룸 청소노동자

손채연 씨(52)는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공정 스막룸 청소노동자였다. 하루 11시간 주야간 교대근무로 7년 정도 일했다. 2012년 1월 지인의 소개로 삼성전자 청소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설마 나한테 병이 생길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 일로 벌 돈이 필요했다.

손 씨의 주 업무는 면포로 스막룸 바닥을 닦고 클린룸 노동자들이 벗어두고 간 방진복, 방진화, 겉장갑과 속장갑, 마스크 등 보호장구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가운 형태의 청소복과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서였다.

옷걸이에 대충 걸린 방진복은 다시 곱게 개어 걸었다. 신발장에 놓인 방진화를 일일이 꺼낸 뒤 방진화와 신발장에 묻은 약품을 면포와 일회용 부직포로 닦기도 했다. 약품의 색은 핑크색, 노란색, 검은색 등 다양했다. 심하게 오염된 방진복과 방진화는 세탁업체로 보냈다.

클린룸 노동자들이 벗어둔 겉장갑은 버리고 속장갑은 세탁업체로 보냈다. 스막룸에는 겉장갑과 속장갑을 담는 봉투가 따로 있었지만, 실제로는 둘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내놔야했는데" 봉투 값 아낀다는 생각에 굳이 겉장갑과 속장갑을 다시 나눠 제대로 된 분류했다. 그러다 보면, 장갑에서 "유난히 찬 느낌이 나는 액체"가 만져지는 때도 있었다.

보호장구에 묻어나오는 약품의 양은 그때그때 달랐다. 새로운 생산설비가 들어오는 날이나 생산 공정이 바뀌는 날이면, 평소보다 약품이 많이 묻어나왔다. 일주일에 한 번 클린룸을 대청소하는 날도 그랬다.

손 씨는 "독하지는 않았지만 스막룸에서도 약품 냄새가 났다"고 기억했다. 약품이 묻은 보호장구를 정리하며 일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2년 발간한 <반도체 제조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 및 유해요인 노출특성 연구>에도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사용하는 물질이 스막룸 대기에서 검출된 사례가 실려 있다.

손 씨는 하루 평균 약 200벌의 보호장구를 정리했다. 손 씨는 "사람이 적은 연구동에서 일해 저는 사정이 좀 나았다"며 "생산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1000벌씩 정리하기도 하고, 거기서는 냄새도 더 많이 난다"고 했다.

2018년 12월, 손 씨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설마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 세상에 대한 원망감이 들었다. '스막룸에서 접하던 먼지와 약품이 발암물질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했다. 위탁 독립기구인 '삼성전자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위원회'에 질병 보상을 신청했다. 손 씨는 최초로 삼성의 질병 보상을 받은 스막룸 청소노동자다.

▲ 클린룸과 스막룸에서 모두 근무한 한 청소노동자가 회사에서 지급받은 것과 같은 마스크라며 보낸 마스크 사진. 따로 필터가 없는 일반 마스크다. ⓒ프레시안

"오퍼레이터, 엔지니어 바로 옆에서 일했는데 청소노동자는 보이지 않나"

현재 반올림이 받은 삼성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청소노동자 직업성 질병 피해 제보는 14건이다. 병명은 유방암, 췌장암, 피부암, 위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등 다양하다. 그 중 5명이 산재를 신청했고, 1명만 산재 인정을 받았다. 산재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병과 싸우던 중 세상을 떠난 이도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답답해했다. 김 씨는 "오퍼레이터, 엔지니어와 같은 공간에서 일했는데 왜 청소노동자들의 병은 산재로 인정되지 않나. 바로 옆에서 일했는데 우리는 보이지 않나"라고 물었다. 삼성로부터 보상을 받고도 산재 신청을 포기한 손 씨는 "인정받기 어려운데 고생만 할 것 같아서였다"고 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한 또다른 청소노동자 이미경 씨(가명, 59)는 "해골문양이 그려진 14리터 말통이 하루에만 2~30개씩 들어오는 곳에서 일했다. 나중에는 철거 작업 중이던 클린룸에서 하루 종일 독한 약품 냄새를 맡아가며 제대로 된 보호장구도 못 받고 2년을 일했다“며 "산재 심사 과정에서 이런 사정을 계속 이야기했는데도 산재가 불승인됐다"고 말했다.

2007년 삼성 직업병 싸움이 시작되고도 10년이 넘게 그늘에 숨겨져 있던 청소노동자들이 이제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을 말하고 있다.

※ 반올림과 프레시안에서는 디스플레이반도체 공정에서 일한 청소노동자들의 직업성 질병 피해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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