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결과가 나오고 1주일 가까이 지났기에 진지한 선거 평가도 벌써 꽤 나와 있다. 여러 대목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들 한 목소리인 내용도 있다. 그것은 이번 대선에서 오간 정책이나 담론의 질이 제6공화국의 지난 어떤 대선보다도 저열했다는 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양대 정당이 내놓은 후보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주요 정당들의 정책 생산과 선전 능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지적들이 하나같이 단기적이며 지엽적인 요인들을 맴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원인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심각하다. 그것은 바로 제6공화국 정치의 구조적이며 장기 추세적인(secular) 위기다.
대선을 지배한 논리…"우리 당이 집권 못하면, 더 나쁜 세상이 열린다"
이번 대선에서 1번, 2번 후보가 내놓은 비전이나 정책으로 기억나는 것이 있는가? 대선 끝난 지 고작 1주일인데도 떠오르는 내용이 별로 없다. 이재명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선택되기 전까지는 기본소득 같은 여러 정책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본격 선거전에서는 오히려 그렇지 못했다. 윤석열 당선자의 경우에 기억나는 것은 오직 '여성가족부 폐지' 뿐이다. 이것도 비전이나 정책이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뚜렷이 기억나는 게 있다면, 이런 것들이다. 윤석열 후보 진영은 이번에 자신들이 집권하지 못하면 86세대 운동권, '주사파' 독재가 계속돼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북한 김정은과 중국 시진핑에게 끌려 다니다 망할 것이라 했고, 세금 폭탄 때문에 중산층이 무너질 것이라고도 했다.
이재명 후보 진영의 주된 메시지도 비슷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재집권하지 못하면 검찰 공화국이 들어서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짓밟힐 것이라고 했다. '선제타격'을 주장하는 대통령 탓에 전쟁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했고, 최저임금제도도 없어지고 주당 노동시간이 무한정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결국 두 진영의 논리는 하나로 통했다. "우리 당이 집권하지 못하면, 더 나쁜 세상이 열린다." 나쁘게 바뀌는 방향이 서로 다를 뿐,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으려면 반드시 자기 당에 표를 던져야 한다는 논리는 같았다. 이런 논리가 지배하는데, 비전이나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할 리 만무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말은 철없고 물정 모르는 이야기나 될 뿐이었다.
대한민국 대선이 늘 그랬지 않았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아니, 이번 대선과는 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다. 제6공화국 초기 20여 년간은 대선을 치를 때마다 전임 정부보다 더 리버럴한 정부가 집권했고, 비록 좌파-사회운동 입장에서는 마뜩치 않았지만 어쨌든 더 민주화된 한국 사회의 비전이 제시됐다.
이 시기가 지나고 국민의힘의 전신이 연거푸 집권한 제17대, 제18대 대선 때도 지금과는 퍽 달랐다. 이때는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각각 성장과 경제 민주화를 내걸며 보수파 이념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경쟁은 여전히 "우리 당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겠다"는 논리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 이후 조기에 실시된 제19대 대선부터 결정적으로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촛불 항쟁으로 몰락 위기에까지 몰린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진영은 이번 대선을 지배한 그 논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집권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친북 세력에게 넘어가고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주장 하나로 과거 새누리당 지지층의 상당수를 복원했다.
이때만 해도 이런 선거운동 전략이 대선 전체를 지배하지는 않았다. 자유한국당의 모습은 몰락해가는 정당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벌이는 추태 정도로 여겨졌다. 나머지 후보들은 촛불 광장의 목소리들을 나름대로 수용한 비전을 내세우려 했다. 예컨대 당선자인 문재인 후보의 공약집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사회운동에서 나온 정책들의 종합이었다. 당선되고 나서는 마치 박근혜 후보 공약집이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와는 별 상관없는 물건이 됐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제19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이 보인 모습이 단순한 막간극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는 오히려 이후 양대 정당 모두가 나아갈 방향의 예고편이었다. 처음에는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 모두 양대 정당의 주류에 속한 인물이 아니어서 어쩌면 더 참신한 비전 대결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마저 있었다. 그러나 막상 벌어진 광경은 정반대였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이제는 더불어민주당까지 핏발 선 한 가지 외침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로 지지층을 결집했다. "우리 당이 권력을 잡지 못하면, 더 나쁜 세상이 당신들을 기다린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 두 세력이 독점하는 정치 … '깽판 놓기' 정치
앞에서 나는 이런 상황의 원인이 "제6공화국 정치의 구조적이고 장기 추세적인 위기"라는 진단을 미리 내놓았다. 우선 '구조적'이라는 것은 양대 정당이 독점하는 정치를 말함이다. 여기에 관해서는 이미 숱한 진단과 대안이 제출돼 있다. 결선투표조차 없는 대통령 중심제,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같은 정치제도 탓에 제6공화국에서는 양대 정당의 정치 독점이 일종의 기본값이 되어 있다.
의외로 대중은 이를 정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결코 양당 정치 마니아가 아니었고, 그래서 기회 될 때마다 다당 구도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제6공화국 정치제도의 강력한 중력이 매번 이를 다시 양대 정당 독점 정치로 회귀시키고는 했다.
한데 이런 구조적 측면에 더해 오늘날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장기 추세'가 있다. 그것은 양대 정당 중 어느 쪽도 더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철저히 현상 유지를 고수한다. 한때 보수파 이념의 재구성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국민의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더 리버럴한' 차기 정부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그러려는 의지조차 상실한 더불어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앞에서도 얼핏 말했지만, 제6공화국 정치제도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10년 전, 20년 전의 한국 정치가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때도 양대 정당 독점 정치의 구심력이 강하게 작동했지만, 비전이 아니라 협박만이 선거를 지배하지는 않았다. 양대 정당 안에 지금과는 다르게 변화를 말하고 이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려는 흐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번 대선에서 확인된 것은 양당 어느 쪽에서든 더 이상 이런 흐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 세력이 독점적 지위를 지닐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정치는 아니지만, 경제 영역에서 이런 현상을 깊이 파헤친 사상가가 있다. 19세기 말 미국 사회과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베블런은 흔히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를 비판한 <유한계급론>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K. 마르크스나 K. 폴라니와는 또 다른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깊이 있게 파헤친 인물이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독점 대기업의 행태에 관한 비판이다.
베블런에 따르면, 독점 대기업의 이윤은 기술 혁신이나 그에 따른 경쟁력 향상 따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독점 대기업은 공동체에 꼭 필요한 재화를 홀로 생산한다는 점을 이용해 폭리를 취한다. 자신이 생산에서 철수하면 공동체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며 공동체를 협박하는 것이다. 공동체는 꼼짝없이 인질이 돼 독점 대기업이 요구하는 바를 뭐든 들어줘야 한다. 베블런은 독점 대기업의 이런 행태를 '사보타주'라 칭했다.
베블런의 저작을 옮긴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은 이 '사보타주'라는 서먹한 외래어를 대체할 유려한 우리말 번역어를 찾아냈다. 그것은 '깽판 놓기'다(베블런,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외>, 홍기빈 옮김, 책세상, 2009). 한데 이 말은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겪은 양대 정당의 행태와도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베블런의 독점 대기업이 혁신의 의사가 없는 것처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한국 사회를 어느 쪽으로든 변화시키겠다는 비전으로 지지를 모으려는 의지나 생각이 없다. 이 상황에서 지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깽판을 놓는' 것이다. 자기 당이 권력을 잃으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할지 아느냐며 협박하는 것뿐이다.
베블런 이론의 결론은 독점 대기업이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에 기여하기보다는 공동체의 피를 빠는 거머리 같은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깽판 놓기' 외에는 달리 지지층을 최대로 결집할 방도가 없는 두 정당, 그리고 이들이 지배하는 한국 정치는 "정치는 사회의 존속과 위기 해결에 기여한다"는 교과서 속 정의(定義)와는 별 상관이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 제6공화국 정치는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그 생명력을 갉아먹는 기생충일 따름이다.
민주당의 변신인가, 아니면 양대 정당 독점 정치의 파열인가
이제 제6공화국 역사상 두 번째로 전임 정부보다 보수적인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첫 번째 경험이었던 이명박 정부 시대는 초기부터 2008년 촛불 시위와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어수선했다. 이번에는 이런 돌발 변수가 아니더라도 여소야대 국회 탓에 또 어수선한 일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시민사회 안에서 해석 투쟁이 벌어지고 서로 다른 대안을 찾는 세력들이 경합하게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쟁점은 정치적 대안의 방향을 찾는 일일 것이다. 제6공화국 정치의 강한 구심력 아래에서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의 변신을 통해 윤석열 정부 이후의 대안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이다. 아니, 개표 다음날부터 이미 힘을 얻고 있다. 이 흐름은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변화의 대변자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가 '깽판 놓기' 수준으로 전락한 이유가 양대 정당 모두를 지배하는, 돌이킬 수 없는 장기 추세에 있다는 이 글의 진단은 이런 흐름과 대척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진단에 따른다면, 한국 사회의 변화에 진심으로 몸을 던지는 정치 세력들이 새롭게 성장해야 하고 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제6공화국 정치제도를 흔들어야 한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대에는 오직 전자의 흐름만이 지배했다. 정의당도 여기에 끌려갔다. 그 결과가 문재인 정부 5년의 참담한 실패다. 윤석열 정부 시대는 달라야 한다. 또 다시 반복될 민주대연합론과 대결할 대안적 흐름만이 '깽판 놓기' 정치로 추락하기만 할 제6공화국의 시공간에 탈출구를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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