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25일부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약칭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된다.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 정부가 제정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폐지하고 신설 대체한 법률로서, 작년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9월 25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되었다. 그간 정부는 시행령 입법예고 및 표준조례(안) 마련 등 후속 사항의 준비기간을 거쳤다.
탄소중립기본법 시행이 중대재해처벌법만큼 모두의 비상한 관심을 끌지는 못하지만, 유럽의 전쟁과 백두대간의 산불에서 보듯 이미 벌어지고 있는 ‘장기 비상시대’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 모두에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이다. 그리고 이제 법률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한 사항과 함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자치법규인 ‘조례’를 제정하는 일이 남아 있다.
이미 탄소중립기본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전후로 하여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탄소중립 관련 조례를 제정하였다. 물론 시행령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지라 구체적인 내용이 미흡하여 이 조례들은 조만간 개정을 해야 한다. 시행령에 정해진 사항을 단순히 추가로 반영하는 조례 제·개정작업보다는, 이왕이면 지역 사회를 규율하는 자치법규를 지방 정부와 시민이 함께 논의하면서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관련 근거는 이미 탄소중립기본법에 존재한다. 법 제3조(기본원칙) 7호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 과정에서 모든 국민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한다"고 했고, 법 제4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7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후변화 현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영향 예측 등을 추진하고, 국민과 사업자에게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며, 이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원칙과 책무에 따라, 시민들이 직접 나서 탄소중립 조례 제정을 준비하는 지역도 있다. 지난해 9월, 기후위기 경기비상행동은 경기도의회 김달수 의원(더불어민주당) 주관으로 '경기도 탄소중립 기본조례' 제정과 관련하여 경기도청 및 시민사회 등이 참여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단체는 그 이후 '정부(안)'이 아닌 '시민(안)'으로 <경기도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안)>과 <경기도 시․군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안)>을 직접 만들었다. 이후 지난해 12월에는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공동주최한 '경기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조례 제정'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기초 단위인 서울시 양천구에서는 지역시민사회 네트워크 조직인 양천시민사회연대가 지난해 11월 기후위기대응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후, 이 특위 주도로 양천구 탄소중립 조례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기후위기대응 특별위원회는 출범기념 특강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에 관한 전문가 특강을 듣고 바로 '탄소중립기본법 읽기모임'을 진행하면서 시민이 제안하는 조례의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 실행에 있어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적인 과정과 방법을 조례로 분명히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올해 들어 양천시민사회연대는 본격적으로 법 시행에 맞춰 관련 자료들을 참고해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조례안을 직접 만든 후 양천구의회에 조례 제정을 요구했다. 그 결과 지난 3월 7일, 양천시민사회연대는 양천구의회 정순희 의원(더불어민주당) 주관으로 구청, 의회,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탄소중립 기본조례 제정 간담회를 개최했고, 3월 중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한편 서울 구로구의회 김영곤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쳐 '구로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하였고, 3월 중 개원하는 임시회에서 관련 조례를 상정 처리할 예정이다.
지난 3월 3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이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연구기관, 환경단체, 집행기관 등이 참여한 '탄소중립 기본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여 도의회 인터넷방송으로 이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로 인해 3월은 사실상 각 지방 의회의 마지막 회기다. 3월에 조례가 제정되지 않으면 민선 8기 출범 이후로 넘어가 적어도 9월이 되어서야 조례 제정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간의 촉박함을 고려할 때 민선 7기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정치적 결단력을 행사하는 지역은 상반기 중 탄소중립 조례 제정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조례의 법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각 지방 의회가 탄소중립 조례 제정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함께 논의한다면 조례의 실행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역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국가 목표 대비 어느 수준으로 설정할지, 탄소중립을 위한 거버넌스 기구로서 '지방탄소중립위원회'를 누구와 함께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지 등 기존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및 국가탄소중립위원회 구성 운영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쟁점들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는 계기로 삼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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