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경과를 모두 공개했다. 안 후보 측이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보였다고 압박한 것인데, 말로는 "언제든 찾아뵙고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상 단일화 결렬을 선언한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윤 후보 본인도 "어렵겠구나 생각은 했다"고 언급했다.
윤 후보는 27일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이 시간까지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왔다"며 그간의 단일화 협상 경과를 공개했다. 윤 후보는 "제가 국민의힘 최고위 인사와 통화해 저의 분명한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고, 안 후보께 여러 차례 전화통화 시도도 하고 문자로 제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했다. 다만 이 말은 뒤집으면, 안 후보와의 직접 통화가 성사된 적은 없다는 말도 된다.
윤 후보는 이어 "전권을 부여받은 양쪽 대리인이 만나 진지한 단일화 협상을 이어왔다"면서 "특히 어제는 양측 전권대리인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회동했고 최종 합의를 이뤄서 저와 안 후보에게 보고했다. 안 후보와의 회동 일정 조율만 남은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그러나) 다시 저녁에 그 동안 완주 의사를 표명해온 안 후보께서 '완주 철회를 위한 명분을 좀더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그래서 저는 안 후보 자택을 방문해 정중한 태도를 보여드리겠다고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거기 대한 답은 듣지 못했고, 그 후 안 후보가 목포로 출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양쪽 전권대리인이 또다시 새벽 0시 40분부터 4시까지 협의를 진행했다"고 했다. 윤 후보는 "전권대리인은 저희 쪽은 장제원 의원이고 저쪽은 이태규 선대본부장"이라며 "장 의원은 매형이 카이스트 교수로 안 후보와 가까운 사이이고, 안 후보도 장 의원을 협의 채널로 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새벽 협의에서) 안 후보 측은 제가 오늘 오전에 회견을 열어 안 후보에게 회동을 공개 제안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저는 이를 수락했다. 그래서 양측 전권대리인이 아침 7시까지 회동 여부를 포함해 시간·장소를 합의해 통보해 주기로 했으나 안타깝게 아침 9시 단일화 결렬 통보를 최종적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제가 지금까지 단일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공개적 언급이 단일화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고, 단일화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이제는 정권교체를 위한 단일화를 열망해온 국민께 그간의 경과를 말씀드리는 게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안 후보가 시간·장소를 정해준다면 제가 지방에 가는 중이라도 언제든 차를 돌려 직접 찾아뵙고 안 후보와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 싶다. 안 후보의 화답을 기다리겠다.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통합에 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이날 오전 경북 유세 일정을 취소한 경과에 대해 한 기자가 묻자 "영주 유세가 9시에 예정돼 있어 7시경까지는 (취소) 통보를 안 해줄 도리가 없었다"며 "그때도 거의 '이게 아마 단일화가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어떤 희망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고 말해 사실상 단일화가 난망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전날 최종 합의가 됐다는데 왜 무산됐느냐'는 취지의 물음에는 "저를 비롯해서 선대본에서 최대의 관심을 갖고 지켜봤는데 이유는 저희도 알 수 없다"며 "그 쪽에서도 아침에 답이 오기를 '이유를 모르겠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이런 답변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 측 권영세 선대본부장은 윤 후보에 이어 진행한 질의응답에서 총 4페이지에 달하는 '단일화 협상 경과 일지'를 공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언제든 만나자'는 윤 후보의 공개 제안과는 달리, 사실상 안 후보 측과 더는 대화 의지가 남아있다고 보기 어려운 행보다.
권 본부장은 "2월 3일부터 후보가 언급한 장제원-이태규 라인 외에도 성일종 의원과 인명진 고문도 진행이 됐고, 이철규·윤상현 의원과 신재현 고문도 진행되는 등 여러 라인으로 진행이 됐다"며 "지난 20일 안 후보 기자회견 후 다시 협상을 재개했을 때는 상대측이 원하는대로 이태규-장제원 라인으로 단일화했다"고 주장했다.
권 본부장은 다만 '그러면 어제 장제원-이태규 라인을 통해 도출된 최종안이 뭐냐'는 질문에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만큼 내용까지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을 피했다. '안 후보가 선거 완주 중단의 명분을 달라고 했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상세히 말하기는 어려운데, 모양새와 관련이 있다. 윤 후보가 '직접 (자택을) 찾아갈 수 있다'는 얘기를 했듯이 모양새 관련 부분이었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겠다"고 한 정도였다.
투표용지 인쇄일이 28일인 만큼 사실상 시간적으로 단일화는 무리 아니냐는 질문에는 "투표 전날까지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기존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 '만나자, 기다린다고 하면서 협상 과정을 다 공개하면 대화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에 권 본부장은 "상대 측에도 '우리가 공개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 과정에서 협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돼 왔다는 설명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부분에 대해 알려는 드렸다"고 했다.
안 후보 측에서는 지난 13일의 여론조사 경선 방식 단일화 제안과 20일 결렬 선언 이후 진행되고 있는 단일화 관련 협상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안 후보는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나 " 시간이 다 지나서 결렬 선언을 한 것"이라며 "(윤 후보 측으로부터) 연락받은 바 없다"고 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아예 "국민의당은 국민들께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공개적으로 그 결과에 대해서 보고드린 것 이외에 진행되는 사항은 전혀 없었다"(23일 MBC 라디오)라고 못박기도 했다.
안 후보는 이날 오전, 윤 후보가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기자회견을 예고한 시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이어갔다. 안 후보는 '윤 후보가 경북 일정을 취소하고 단일화 관련 회견을 한다고 한다'는 질문에 "저는 들은 바 없다"며 "제가 거기에 대해 이미 거의 열흘 정도 전에 제안을 했고 철저하게 무시를 당했다. 아무런 답을 받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나아가 "그렇게 계속 '립서비스'만 하는 것은 정치 도의상으로도 맞지 않고 국민께도 도리가 아니다"라고 윤 후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 '윤 후보로부터 연락은 없었나'라는 질문에는 "지금 제가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지금도 계속 전화 폭탄, 문자 폭탄이 오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제 전화 자체를 못 쓰게 만드는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이러고도 같은 협상의 파트너라고 생각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윤 후보 지지자들 SNS 대화방에 안 후보 전화번호가 유출돼 '문자 폭탄'을 받고 있는 데 격앙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열흘 전 제안을 했고 답을 못 받았다.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안 후보의 말은, 윤 후보가 이날 회견을 통해 밝힌 협상 경과와는 전혀 다르다. 두 후보 중 한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안 후보 측의 '협상 전권대리인'과 후보 본인 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쪽 선거캠프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들은 앞서 "안 후보 측에서는 이 본부장이 국민의힘과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인 인사"라며 "안 후보와 이 본부장 간에 온도차가 있다"거나 "안 후보가 이 본부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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