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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실종 선거, 한 줄 메시지가 공론을 압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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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실종 선거, 한 줄 메시지가 공론을 압도하고 있다

[시민건강논평] "힘없는 사람들을 보고 듣는 선거여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투표할 수 있는 나이가 만 18세로 내려간 후 치르는 첫 번째 대선이다. 청소년이 투쟁해서 쟁취한 소중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라 할 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문제 한 가지는 청소년을 위한 제대로 된 공약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선심 쓰듯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했지만, 아무리 봐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인정하는 것 같지 않다. 평등, 공정, 권리, 그 무엇이든 청소년은 아직 '불완전체'일 뿐인가.

청소년 정책의 부재는 당연히 구조적 문제다. 제대로 된 공약을 내기 어려운 것은, 좁게 보더라도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보장하기 어려운 학교 규칙과 법·제도적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모가 허락해야"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은 그냥 은유가 아니라 눈앞의 제약이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1월 4일 자 '피선거권 연령 18세 하향 조정에 맞춰 법과 제도도 뒷받침돼야', 2월 12일 자 '부모가 허락해야 하는 정당 활동?')

멀쩡한(?) 아동·청소년 공약이 존재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내놓은 공약과 다를 것이 없고 후보들 사이에서 차이도 없다. 한마디로, '진심'이 담긴 공약이라 하기 어렵다.

아동·청소년 공약만 그럴까. 모르긴 해도, 모든 정당의 '정책본부'는 이미 몇백 쪽에 이르는 백과사전식 공약집을 완성해 놓았을 터. 없는 것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그러나 아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공약이라면, 정책이 아니라 정치가 없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모든 정책이 '실종'되었다는 소리도 들린다. 맞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두고 사회적 '세력'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온갖 소문과 의심, 흠을 둘러싼 비난과 소란에 급급하다. 한 줄 인터넷 메시지가 공론을 압도한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정치가 실종된 상태라 본다. 물론, 이는 지금 생긴 문제가 아니라 과거가 쌓이고 또 쌓인 결과이다. '세대'와 디지털 문화를 탓하지 말라, 주범은 좁고 이기적이며 좁은 정치다. 대선만 그런 것도 아니니, 온갖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한 결과 많은 사람이 정치에서 사라졌다.

불평등이 불평등을 낳는 형국이다. 공론장, 하다못해 디지털 공간에 글이라도 한 줄 쓸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은 지독한 불평등의 정치. 그러니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그런 공약은 분위기를 띄우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빼고는 정치가 존재할 수 없는데도 이들을 정치에서 지워야 하는 지독한 역설의 정치. 더 큰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다시 청소년으로 돌아가 보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세 유권자를 위한 선거 정보 안내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안내하지만, 지극히 '주류'를 위한 것이다. 접속이 쉽지 않은 청소년(일하는 청소년, 거리 청소년, 청소년 부모 등), 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 장애가 있는 청소년이 정보를 어떻게 얻고 이해할 수 있을까. 접속한다 한들, 이들을 위한 정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굳이 힘들게 읽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들까.

청소년뿐 아니라 보이지 않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다. 또한, 대선 공약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유행이 커지면서 산모가 출산할 병원을 못 찾아 몇 시간씩 배회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지만(☞ 관련 기사 : <경북매일> 2월 18일 자 '코로나19 확진 산모, 분만 병원 없어 결국 보건소에서 출산'), 일언반구 말이 없다. 지난 1월에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하면서 입원 중이던 환자들을 모두 내보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1월 12일 자 '"정부 명령으로 국립의료원서 치료받던 약자 80명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약하고 갈 곳 없는 이들이 가장 크게 고통을 받았던 것은 더 물어볼 것도 없다.

이제 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을 위한 정치를 주문하는 것은 너무 늦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바라기는 지금이라도 이들을 보고 듣는 정치, 가시화(可視化)와 가청화(可聽化)의 정치가 살아나기를 바란다. 아니 살려내야 한다. 이제라도 여성, 가난한 자, 비정규 노동자, 지역 불평등의 당사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를 보자. 문제로 삼자.

또 한 가지, 이번 대선 후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그러니 아무리 늦어도 '이후'로는 늦지 않았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여오는 일은 늘 시작이다.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면 다음도 기약하기 어렵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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