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가 없는 노동자는 죽는다
얼마 전 여러 언론이 미끄러지는 택배차량을 멈추려다 택배 차 문과 주차되어있던 승용차 사이에 끼어 숨진 '용차(택배 재위탁 개인 화물차 기사)' 기사의 죽음을 알렸다. 지난달에 결혼한 그는 아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남겨 두고 지난 1월 4일 목숨을 잃었다. 그는 2013년 한 택배회사에 입사해 일하다 2015년 용차 기사로 일해 왔다고 한다.
나는 작년 여름 세 달 동안 택배 일을 했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택배 일을 하고 있다. 잠시 일하는 동안에도 여러 명의 용차 기사를 봤다. 기사를 보니 숨진 기사가 작년에 내가 일한 터미널에서 봤던 용차 기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숨진 기사가 남양주에서 서울로 출근했다고 했는데 내가 봤던 용차 기사 중 한 명이 남양주에서 출근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서로 너무 바빠서 다른 얘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그는 한 달 정도 일하고 다른 지역에서 용차를 하겠다고 그만 뒀다.
용차는 택배 노동자들이 몸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겨 나오지 못할 때 긴급하게 대체하는 차다. 용차를 쓰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용차를 쓰면 그 비용을 기사가 물어야 하기 때문에 아파도 쉽게 쉬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용차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기사가 미리 예고를 하고 그만두더라도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없으면 용차를 써야 한다. 아직도 택배 현장에선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용차 기사가 없으면 택배 현장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뉴스 댓글엔 차가 미끄러지지 않게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웠어야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숨진 기사는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웠다고 한다. 짐을 많이 실으면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워도 차가 밀리는 경우가 있다. 운전 중에도 차가 쏠리기도 한다. 기어를 1단이나 후진에 넣고 주차한 다음 고임목으로 차를 받쳐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맞는 얘기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긴 너무나 힘들다. 그것 하나하나 신경쓰다보면 배송시간이 너무 늘어지기 때문이다. 경사가 진 길에 차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산더미 같은 물량을 빠르게 처리하려면 어쩔 수 없다. 매번 '고임목'을 받치다 보면 당일 배송해야 하는 물건을 배송하지 못해 수십, 수백만 원의 클레임 비용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더 열악한 노동조건
용차 기사들은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용차는 길이 좁고 언덕이 많아 배송이 힘든 지역에 많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교육도 없이 낯선 지역에 바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용차 기사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을 많이 한 '프로'라고 해도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적응 시간도 없이 많은 물건을 처리하기가 쉬울 순 없다.
그렇게 어려우니까 배송수수료를 많이 받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용차 기사들은 노동자들에 비해 배송수수료를 많이 받는다. 내가 작년에 한 건당 850원을 받았는데 내 옆에서 일한 용차 기사는 1200원을 받았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1500원, 2000원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부가세, 유류비, 차량관리비, 보험료, 식대, 각종 수수료는 기사 몫이다. 원청이든 영업소든 장갑은커녕 테이프 하나 주지 않으니까 그것도 다 자기가 사야 한다. 최근 CJ대한통운택배노조가 파업을 하고 있는데 사측은 CJ대한통운 기사E들의 연봉이 8518만원이라며 '고임금 노동자의 배부른 파업'이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 사측은 8518만원에서 앞에서 얘기한 비용을 제외하지 않는다.
내가 작년 8월에 5200여 개를 배송했는데 한 건당 870원에서 수수료 10%를 주고 또 이것저것 빼니까 월급이 3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나는 5200여 개를 배송하기 위해 거의 매일 새벽 한 두 시까지 일했다. 과로사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저녁 10시 이후엔 전산을 막았지만(완료처리를 할 수 없게 만들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량은 많고 배송할 시간이 부족해 미리 완료처리를 하고 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내가 초보인 탓도 있었겠지만 경력자들 중에서도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하는 노동자들이 수두룩했다.
월요일이나 토요일을 제외하면 공짜 노동인 까대기(분류작업)는 빠르면 오전 11시, 늦으면 오후 2시가 되어야 끝났다. 오후에 배송을 나갈 수밖에 없는 날이 많았고, 저녁 있는 삶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건 바라지 않았지만, 하루라도 맘 편히 쉬고는 싶었다.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현실
작년 6월 마련된 사회적 합의에 따르면 9월부터 분류인력이 투입되어야 했는데 투입되지 않았고, 올해 1월부터는 택배 기사들을 분류작업에서 제외해야 하는데 지금도 우리 터미널에는 분류인력이 투입되지 않았다. 분류인력을 투입하는 대신 분류비용을 기사들에게 나눠준다고도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바깥에서 보기와는 달리 택배 기사들의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러니 많은 택배 기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해 셧다운 되는 현장이 계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용차 기사들은 더 필요하다. 그런데 택배 회사들이나 대리점들의 태도는 달라지는 게 없다. 돈만 더 주면 끝이라는 생각, 너희는 돈의 노예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파업하고 있는 CJ대한통운택배 기사들의 주장은 CJ대한통운이 택배요금 인상분 170원 중 56원만 합의이행비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추가이윤으로 돌려 30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거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핵심은 분류인력을 제대로 투입해 택배기사들의 장시간 노동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면 사측은 국토부에 분류인력 투입을 포함한 사회적 합의 이행 현장 실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만약 실사가 이루어진다면 내가 일하는 현장을 포함해 모든 택배 현장에 실사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다만 택배회사와 정부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지 않으려면 노조와 함께 예고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내가 겪었던 일이 있다. 작년 9월 초 내가 일한 영업소 단체카톡방에 '긴급공지'가 올라왔다. "지점장입니다. 내일 아침 8시 30분 국토부 ○○○○실장 현장 점검 실시. 코로나 관련 방역지침 준수, 분류인력 투입"라는 내용이었다. 체온검사도 없었는데 무슨 방역지침 준수인지 몰랐다. 아침 7시부터 정신없이 까대기를 하다 보면 마스크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신경을 써야 했다. 이 날만 분류 아르바이트 노동자 세 명(9월 전부터 있었던 한 명 포함)이 투입됐다.
최소한의 권리도 없는
다시 용차 기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해 본다. 2인 1조 근무를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주4일제가 논의되고 있는 사회인데 주5일제, 아니 토요격주휴무라도 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당일 배송해야 하는 물건을 좀 줄여주었더라면, 지역이 익숙해질 때까지 물량을 조절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이건 권리가 될 수 없는가?
이런 큰(?)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용차 기사들에게는 최소한의 권리도 없다. 택배노동자들은 그나마 산재보험, 고용보험에 들 수라도 있지만 용차 기사들에게는 이것도 그림의 떡이다. 택배 기사들은 그나마 영업소와 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용차 기사들은 그 어떤 정식 계약서도 없이 소장과 약속만 하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소장은 원청의 허락을 받는다) 언론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면서 숨진 기사는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과연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고용을 하고 최소한의 안전교육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일하도록 만든 택배사와 대리점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노조가 나서야 한다고도 한다. 물론 맞는 말이고 더 나서야 하겠지만 지금 CJ대한통운택배 기사들의 파업도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분류작업 개선 및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파업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은 맞지만, 과연 파업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주길 바란다.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담긴 사회적 가치를 생각할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도 그렇다. 돈도 돈이지만 보람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일한다. 코로나19 시기라 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병들고 다치지 않아야, 죽지 않아야 배송을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권리가 있어야 배송을 계속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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