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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추진한다면서, 사상 최대의 군비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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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추진한다면서, 사상 최대의 군비증강?

[인권으로 읽는 세상] 한반도 평화체제, 더딜지라도 평화군축과 상호신뢰 구축부터  

지난 1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동해선 철도건설 착공식'에 참석차 남한 최북단 역인 제진역을 방문했다. 동해선 건설은 2018년 남북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당일 오전 북한은 동해상으로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문제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초유의 북미정상회담이 각각 3차례, 2차례 열리고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까지 있었다. 하지만 현재 남북 간 공식대화는 3년째 중단 중이고 신형 전략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전략무기 개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북핵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장하며 야심 차게 시작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사실상 실패했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모두를 기대에 부풀게 했던 프로세스의 실패 이유를 정확히 평가하고 사회운동의 과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베를린에서 하노이까지, 무엇을 협상하고 무엇을 약속했나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구상'을 발표하며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인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2017년 내내 북한은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6차 핵실험을 이어가며 핵무장을 완성한다. 북한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미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발언까지 이어지며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몰렸다. 핵무장을 완성한 북한은 2018년이 되자 '대북 적대시 정책(한미군사훈련/경제재제) 중단'을 목표로 협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북한의 카드는 '단계적 비핵화'였다.

2018년 4월, 1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남측에서 열렸고 남북은 '불가침 확약,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을 선언했다.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노력과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을 선언되었고, 회담 이후 미국은 27년 만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 2018년 남북정상은 평양에서 9.19 군사합의를 통해 서해평화수역화, DMZ 평화지대화(GP 철수)라는 상징적 군축을 진행했다. 하지만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를 둘러싼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중단되고 한국 정부가 운전하는 차는 거꾸로 가기 시작한다. 남북 간에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을, 북미 간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못했고 군비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운전자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했나

'한반도 운전자론'은 강대국들의 각축장 한가운데 놓여 있는 한국의 현실적 역량 한계와 수단의 부재 등으로 공허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한반도 적대구조의 행위자이자 평화를 위협받는 당사자로서 전쟁위협을 해소하고 강대국들의 이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분명한 역할을 표명한 것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사이의 중재자를 운전자의 역할로 설정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사전 회담 역할을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는 '운전자'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의 이해관계, 협상과정에 너무나 쉽게 휘둘리는 가장 취약한 역할이었다. 더구나 비핵화와 대북재제 해제를 둘러싼 북미 간의 협상은 30여 년 동안 타결되지 못한 가장 복잡한 국제협상이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국 정부의 역할이 사라진 이유다. 무엇보다 한국은 '중재자'가 될 수 없었다. 미국과 함께 한반도 적대구조의 한 축을 유지하는 행위자였다. 바로 그 적대구조의 행위자인 한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스스로 달라지겠다는 게 운전자론이어야 했다.

변화의 구체적 모습은 남북 간의 군사적, 정치적 신뢰구축이어야 했다.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통해 북한과 합의한 사항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이를 통해 미국과는 별개로 남북 간에 신뢰를 쌓아야 했다. 그 핵심은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이었다. 남북 간 합의사항은 아니었지만, 북한이 가장 강력하게 규탄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중 하나인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도 한국 정부가 실행할 수 있는 중요한 신뢰구축 조치였다. 하지만 중단됐던 한미연합군사훈련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바로 재개되었고, 그해 8월에 정부는 무려 290조 5천억 원의 '2020~2024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사상 최대의 군비증강과 종전선언 추진이라는 모순

'한반도 운전자론'의 파산은 운전자의 역할을 잘못 설정한 것을 넘어, 사상 최대의 군비증강에 그 원인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40조 원 규모였던 국방예산을 매년 대폭 늘려왔고, 2022년에는 2017년 대비 37% 상승한 55조 원에 이르렀다. 한국의 군사력 순위는 세계 10~12위에서 6위로 뛰어올랐다. 향후 5년간 315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새로운 국방중기계획도 발표했다. 미국과 협의를 통해 '미사일 사거리 제한 지침'도 폐지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한 신종 미사일 4종 세트를 개발했다. 논란이 됐던 경항공모함 개발예산도 배정됐다. 평화가 아니라 군비증강에서 문재인 정부는 질적인 도약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게 종전선언이다. 정부 스스로 구속력 있는 협정이 아닌 '정치적 선언'임을 강조한다. 정치적 선언이라면 선언 이후 각국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보여야 하지만 대북 적대 정책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지어 정부는 사상 최대 군비증강에 앞장서면서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확보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래서 '협상을 위한 협상, 선언을 위한 선언'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정전상태의 군사대치가 이어지는 한반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북정책은 국방정책이다. 경제협력, 민간 교류와 같은 비군사적 정책들도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규정짓는 것은 군사안보 정책인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게 대북정책은 '종전선언'과 같은 정치·외교적 협상과 남북교류이고 국방정책은 군비증강을 통한 '자주국방' 실현으로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북한에 한국의 군비확충은 가장 확실한 '대북 적대 정책'일 뿐이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사회운동의 과제

70여 년에 이른 정전상태의 한반도에 90년대 이후 북한의 핵개발로 심화된 북한과 미국의 적대 구조가 다시 더해지고,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대결 구도는 과거와 현재의 적대 구조가 켜켜이 쌓여가는 형국이다. 그래서 2018~19년에 이루어진 남북미 정상 간의 연이은 회담은 한국 사회에 큰 기대감을 불러왔다. 하지만 결과는 트럼프였기에 가능한 북미정상회담, 딱 거기까지였다.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정치이벤트로서 정상회담일 뿐이었다. 핵개발을 넘어 핵무장을 이룬 북한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불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전히 주고받기식 단계적 비핵화 협상에 집착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가동시켰던 문재인 정부는 북미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한국이 할 수 있었고, 해야 했던 역할인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군축을 내팽개쳐버렸다.

국제연대를 구하지만 일국적 한계를 벗어나기 쉽지 않은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이러한 구조를 뚫고 평화의 구조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 요원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내팽개쳐버린 '평화군축과 군사적 신뢰구축'이라는 과제는 미국과 중국, 북한의 대외정책과는 별개로 한국이 동북아 지역의 주요 행위자로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은 이 가능성이 확인된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의 사회운동이 시작해야 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지난한 발걸음 역시 평화군축을 통한 적대 구조의 변화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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