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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허기진 마음을 안고 살며, 행복을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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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허기진 마음을 안고 살며, 행복을 갈구한다"

[최재천의 책갈피] <기러기> 메리 올리버 시선집, 민승남 옮김

"영혼은 쇠처럼 단단할까?/아니면, 올빼미 부리 속 나방의 날개처럼/가냘프고 부서지기 쉬울까?"(<당신이 할 수도 있는 몇 가지 질문들>) 당신의 영혼은 어떠한가요. 그렇다고 강박증적으로 당신을 대하진 마세요. 시인이 위로한다.

"착하지 않아도 돼./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기러기>)

인생은 누군가에게는 연극이고 누군가에게는 길이다. 길 위의 여행이 인생이다.

"내가 기억하는 여행자들 중에,/지도와 함께 슬픔 안고 배에 오르지 않은 이 누굴까?/이제 사람들은 어딘가로 가는 게 아니라, 죽음이/시작되어야만 자신이 있던 곳에서 떠나는 것 같아."(<여행하지 않고>)

삶의 유한성은 인간의 본질이다. 그 유한성을 인정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구원은 이루어진다.

"우리가/영원히 그 의미를 알지 못할/구원이 있지./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세 가지를/할 수 있어야만 하지./유한한 생명을 사랑하기,/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알고 그걸 끌어안기,/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놓아주기."(<블랙워터 숲에서>)

"죽음이/가을의 허기진 곰처럼 찾아오면,/죽음이 찾아와 그의 지갑에 든 반짝이는 동전을 모두 꺼내//…삶이 끝날 때, 나는/특별하고 참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의심하고 싶지 않아./한숨짓거나 겁에 질리거나 따져대는 나를 발견하고 싶지 않아.//그저 이 세상에 다녀간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죽음이 찾아오면>)

<기러기>는 메리 올리버가 1963년부터 1992년까지 썼던 142편의 시를 엮은 시선집으로, 전미도서상 수상작이다.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허기진 마음을 안고 살며, 행복을 갈구한다. 나는 내가 행복한 곳에 머물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작은 새들/이제 반쯤 벼려진 기억들 지니고/후하기로 소문난 정원들로 떼 지어 돌아가네./초록의 세계는 무너지고, 뒤엉킨 정맥 같은 덩굴들/조용한 숲 입구에 매달려 있네."(<겨울의 끝자락에서>)

가을에만 시가 잘 읽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시를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겨울이다. 시인을 꿈꾸던 어린 시절 유독 겨울방학 때 시집을 몰아서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발견한 아름다운 번역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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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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