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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의 미끼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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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의 미끼에 걸리다

[황광우의 책안내] <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 장춘석 지음

"어떤 책은 맛을 보고, 어떤 책은 삼켜버리고, 어떤 책은 씹어 먹으라."고 설파한 이는 베이컨이었던가?

장춘석 교수가 쓴 <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받아들고서 나는 한참 동안 망설였다. 맛 볼 것인가, 삼켜버릴 것인가, 씹어 먹을 것인가? 나는 '읽기의 즐거움', 그 맛을 보기로 하였다.

나는 책을 씹어 먹기 위해선 처음부터 읽고, 책을 골라 먹기 위해선 목차를 열어 선택적으로 읽으며, 책의 맛을 보기 위해선 책의 끝에서부터 거꾸로 뒤적이며 읽는다.

역시 장춘석 교수는 인문학의 초보자들을 위해 유혹의 미끼를 여러 군데에 던져놓았다. 내가 맨 처음 문 미끼는 ‘이소룡’이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구경한 한국인치고 '이소룡'의 미끼를 피해갈 이 누가 있을까?

장 교수는 일갈한다. "이소룡의 본디 권법은 영춘권(詠春拳)이여. 동작이 간결하고 빠른 공방이 특징이지. 이소룡은 영춘권에다가 온갖 다른 무술을 합해버렸어. 태권도, 공수도, 유도, 복싱, 레슬링, 심지어 펜싱까지 말이야. 절권도(截拳道)를 창시하지. 서로 성격이 다른 무술들을 융합하여 새 권법을 창조한 거야."(557쪽)

<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다 읽지 않고도 나는 장 교수가 이 책을 쓴 집필 의도(intension)를 간파할 수 있었다. 이소룡이 온갖 무예를 종합하여 새 권법을 창시했듯, 중국 문명도 끊임없는 융합의 과정이었다는 말씀을 하고 싶은 거다.

어찌 중국 문명만 그러하겠는가? 부대찌개가 미군 부대에서 나온 햄과 한국 라면의 짬뽕이듯, 모든 문명의 본질은 짬뽕이다. 그렇다면 사상의 순수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사상의 짬뽕을 추구하자는 장 교수의 선언은, 그 선언의 효용은 이미 이소룡의 권법으로 실증된 셈이다. 조선의 주자근본주의나 한국의 기독교근본주의는 모두 이소룡에게 배우라.

장 교수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 역시 짬뽕임을 예시한다. 여기에서 우리란, 한국인만 아니라 중국인과 일본인 모두를 아우르는 대명사이다. 장 교수에 의하면 우리가 쓰고 있는 글의 문체는, 모두 서양어 문체를 본 따 완성된 일본어를 매개로 하여 형성된 문장이라는 거다. 현대 백화문을 연 루쉰도 그렇고, 현대 한국 소설을 연 이광수도 그렇다는 거다. 모두가 일본에 유학 가서 일본어를 수용하여 자국의 문장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다는 거다.

이쯤해서 손을 들고 항의하는 학생이 있다. "교수님, 우리글이 일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주장은 다분히 친일적 성향의 발언이 아닌가요?" 그렇다.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친일의 선두에 섰던 이광수를 칭송하는 듯한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장 교수는 학생에게 담담하게 답한다. "문명이란 교섭과 융합이여. 고립과 폐쇄는 죽음인 거시어."

이어 장 교수는 외친다. "우리말의 상당수가 일본인이 만든 거야. 연애도 낭만도 종교도 철학도 모두 일본인이 'love, romantic, religion, philosophy'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안한 낱말들이여. 그렁께 김수영 시인은 '거대한 뿌리'에서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O미 O이다'고 했지만 그 '연애'도 '사회주의자'도 일본인이 만든 단어인 거여. 어쩔 것이어. 뭐라고? ‘연애’도 ‘사회주의자’도 일본말은 쓰지 말자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화장도 원조교제도 연상도 연하도 다 일본말이랑께."

나는 놀랬다. 고교 시절 국어 수업 시간에 배운 것으로 기억하는 '감정이입'이라는 용어가 독일어 Einfühlung을 번역한 것이라나. 루쉰의 대표작 <광인일기>는 러시아 문호 고골리의 <광인일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고, 모파상의 <광인일기>나 강용준의<광인일기>모두 고골리의 <광인일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란다.

미끼를 덥석 문 나의 아가리는 이제 낚시꾼의 팔뚝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고는 베길수 없었다.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 그 맛을 보기 위해 책을 펼쳤으나, 이제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중국 인문학 읽기>의 본령에 들어서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어떤 책은 씹어 먹으라."는 베이컨의 조언 그대로 나는 씹어 먹기 시작하였다.

역시 만만한 글이 아니었다. 나이 오십을 넘어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만학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장 교수의 글은 쉽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3천년에 걸친 중국의 역사와 유불도에 성리학까지 설파한 이 책은 외견상으로는 한 권의 책이지만, 알고 보면 수 백 권의 저서를 녹여 만든 단단한 주조물이었다.

따라서 이 책의 세부를 모두 음미하려면 최소한 네 학기 수업을 청강해야 마땅하다. 1학기엔 <중국사> 수업을 듣고, 2학기엔 <중국 사상>, 3학기엔 <중국 문학>, 4학기엔 <중국 언어와 서예>를 청강해야 한다.<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은 한 학자가 평생을 걸려 취득한 앎의 구슬들을 한 올의 실로 엮어놓았으니, 그 구슬들을 온전히 음미하려면 최소한 4학기의 수업을 청강할 태도를 갖추어야 하리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앎의 욕망을 갖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금언은 정녕 진실이다. 그리하여 식욕의 충족과정에서 맛의 쾌락을 느끼듯, 앎의 욕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순도 높은 깨달음의 희열을 느끼는 법이다. 그런데 맛의 쾌락은 특별한 훈련 없이도 향유되지만, 앎의 희열은 특별한 훈련을 통과해야만 향수된다. 마찬가지다.<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누리려면 일정의 시간 중국의 사상과 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으리라.

나의 아가리엔 여전히 날카로운 미끼가 물려 있다. 그 미끼들은 이렇다.

"한국인은 요강으로 물을 마시라고 하면 질색하지만, 외국인은 요강을 예쁜 자기라며 맛있게 물을 마신다."(225쪽) 인간의 주관이 얼마나 깊이 대상에 투영되는지, 참으로 절묘한 예시였다.

"요즘 농산물 유통에서 쓰이는 신토불이는 원래 중국 화엄종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붓다가 깨닫고 보니 나(身)와 내 주변(土)이 하나(不二)였다는 것이다."(257쪽) 하나의 언어가 원의와 무관하게 이렇게 생뚱맞게 변용되어 회자될 수 있는가. 나는 기가 막혔다.

"인도인은 사방팔방 외에 중앙인 제 구방, 방향이 없는 제 십방이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시방 세계는 온 세계를 가리킨다."(237쪽) 방향 없는 방향이 십방이란다. 삶의 방향도 모른 채 헤매는 우리들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죽비가 아닌가.

"중국에서는 한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396쪽)는 지적도 충격적이었다. 중국인은 입말을 백화라 하고, 글말을 문언이라 하면서 한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거다. 장 교수에 의하면 <시경>과 <상서>, <춘추>와 <논어>는 입말이었단다. 그러니까 기원전 5세기 이전엔 입말과 글말의 구분이 없었다.(436쪽) 그러다가 전국시대부터 조금씩 글과 말이 달라지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2세기부터 문자 중심의 언어인 문언이 입말인 백화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였다는 거다.

장 교수의 강의는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나는 마침내 무지(無知)로 덮인 무명(無明)의 검은 구름을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돼지'의 문언은 豕(시)이고 백화는 猪(저)이다. '가다'의 문언은 行이고 백화는 走이다. '가난'의 문언은 貧이고 백화는 窮이다. '어기사'의 문언은 '之 乎 也'이고, 백화는 '的 了 嗎'이다.(437쪽)

기원전 10세기의 말로 쓰인 글이 <서경>이고 기원전 2세기의 말로 쓰인 글이 <사기>이다. 두 책을 비교하면 언어의 변화가 확인된다. <서경>의 疇(주;누구)는<사기>에서 誰로 바뀌었고,<서경>의 俾가<사기>에서 使로 바뀌었으며,<서경>의 厥이<사기>에서 其로 바뀌었다.(438쪽)

장 교수와 같은 중국학 전문가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하며 뒤늦게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할 때, 나는 장 교수의 진정성을 느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보면 맹상군 스토리가 나오는데, 3천 식객을 거느린 맹상군의 풍모에 모두가 놀라는 것이 일반의 태도이거늘, 장 교수는 의문을 품었단다. "그 많은 비용은 어디서 나오나?"(163)

"제후와 식객들은 백성에게 못된 짓을 하고, 나라를 좀먹었던 자들이었다. 백성이 이 수탈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었겠는가."(164쪽)

장 교수가 이런 비판적인 글을 읽은 것은 소동파의 <지림>에서였단다. 소동파는 제후와 식객들이 백성들의 재물을 강탈했으니 제후와 식객들은 모두 악인이라고 혹평했다는 거다.

"필자는 소동파의 글을 접함으로써 비로소 중국 역사에서 맹상군을 비롯한 제후들의 행위가 미화되었던 소이는 바로 귀족들의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임을 인지하게 되었다."면서 장 교수는 자신의 단견을 자백하였다. 학자의 무명(無明)을 고백하는 이 장면이야말로 학문에 임하는 진정한 태도가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에서 장 교수가 설파한 언설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정녕 장 교수의 퍼포먼스를 소개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벌써 해는 서산에 걸려 있다. 헤어질 시간이 왔다. 나는 예전에 쓴 <철학콘서트>의 한 구절을 빌려 오는 것으로 글 안내를 마감하고자 한다.

"사람이 지상에 머물다 갈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지구의 승지를 다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아쉬운 일이듯, 책 속에 담긴 현자의 음성을 다 듣지 못하고 죽는다면, 이것도 매우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그대, 아직도 <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읽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을 더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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