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시리즈 모아보기)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part 3 스칸디나비아(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㉙ 들어가는 글 북유럽식 사민주의, 인구 5000만 한국에도 가능하다면 (☞바로가기)
㉚ 올로프 팔메 上 "젊은 정치를 보고싶다…왜 한국정치를 '19금'에 묶어놓나"(☞바로가기)
㉛ 올로프 팔메 下 "넌 특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스웨덴, "정치는 일상이다"(☞바로가기)
㉜ 타게 에를란데르 上 "그렇다면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바로가기)
㉝ 타게 에를란데르 下 스웨덴의 노사정 대화는 오페라와 샴페인 얘기에서 시작했다(☞바로가기)
"게르하르센도 대학을 나오진 않았습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도를 보면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가 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스웨덴, 핀란드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3국에 속하는 노르웨이는 북이라는 뜻의 nor, 길이라는 뜻의 way가 합쳐진 말로, 북극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도 있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노르웨이 왕국'의 면적은 38만5207km²로 한국의 4배가 넘지만, 인구는 547만 명 정도로 유럽에서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 밀도가 작은 나라다. 피오르로 유명한 해안선을 지닌 노르웨이는 산 그리고 강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자연을 자랑한다. 북유럽 여행자들은 노르웨이의 꾸미지 않은 자연을 첫손에 꼽기도 한다.
'사회의 공기까지 바꾼' 북유럽의 복지국가들, 그 가운데 하나로 노회찬이 꼽은 '바이킹(=비킹, 위킹그르)의 후예' 노르웨이는 어떻게 복지국가를 건설했을까? 혹시 노회찬은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총리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노회찬이 남긴 기록을 훑어보면 노르웨이 이야기는 가끔 등장하는데, 게르하르센이라는 이름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그는 누구? :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와 '복지국가 노르웨이'
앞서 살펴본 스웨덴의 경우 에를란데르 총리 임기 동안 각 분야에 걸쳐 전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보편적 복지국가의 완성이 이루어져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 모델'을 구축했다.
같은 시기 노르웨이의 게르하르센 총리(1945~1965년 재임) 또한 에를란데르와 나란히 노르웨이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두 사람 모두 '유약한,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정치인'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이러한 약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총리를 지내면서도 권력을 이용하거나 타락한 적이 없는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적인 인물이었다고 평가받았다. (프랜시스 세예르스테드, 유창훈 옮김, <사회민주주의의 시대-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형성과 전개 1905~2000>, 글항아리, 2015)
에이나르 게르하르센(Einar Henry Gerhardsen, 1897.5.10.~1987.9.19.)은 노르웨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Arbeiderpartiet, A/Ap) 출신의 정치인이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두 번에 걸쳐 노동당 서기를 역임했으며 1932년에는 오슬로 시의원으로 선출됐다. 1940년 나치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하면서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석방되면서 오슬로 시장에 복귀했다.
1965년까지 노동당 당수를 지낸 게르하르센은 총리를 세 번(1945.6.25.~1951.11.9.; 1955.1.22.~1963.8.28.; 1963.9.25.~1965.10.12.) 역임, 17년 동안 '장기집권'하면서 노동당 정부를 이끌었다. 그는 전후 재건과 '복지국가 노르웨이'의 틀을 마련, '조국의 아버지(Landsfaderen)'라 불리고 있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세계 행복지수는 최상위권에 있으며, '유엔인간개발지수' 순위는 꽤 오랫동안 1위였다. 이밖에도 노르웨이가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에서 최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는 꽤 많다.
게르하르센이 기틀을 마련한 노르웨이 복지국가에 대해, 노회찬의 길동무였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자신이 기획한 <(노르웨이의 한국인들이 말하는)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꾸리에, 2013)를 통해 설명했다.
책은 6명의 노르웨이 교민들(김건·백명정·이경예·정의성·조주형·최경수)이 10년 이상 노르웨이에 살면서 경험한 복지국가의 장단점, 빛과 그림자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어 노르웨이가 복지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과 그들이 지닌 과제를 통해,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를 향하는데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도 전하고 있다.
'책소개'에서 노르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글쓴이들은 복지국가 노르웨이의 밑바탕으로 한결같이 평등을 꼽았다.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평등의 가치를 배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내면화됐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음악교사인 백명정은 학생 체벌용 회초리를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로 만나 충격을 받았다. 또 가르치는 학생에게 칠판을 지우라고 지시하자 "내가 도와주길 원하신다면 제게 예의를 차려서 부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대답에 놀라워했던 경험을 말한다.
노르웨이 국민들이 정치를 대하는 태도는 무척 흥미롭다. 청소년 시기부터 정치에 참여하도록 권장한다. 덕분에 "각종 정당 당원의 상당수가 20대이고 대학생 중에 의원이 있는" 상황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복지국가를 위한 정책이 결국 정치로 귀결되는 만큼,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역시 자신들이 지닌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정치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의 하나이며, 선거와 투표는 가장 대표적인 참여 형태이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조사한 '2020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정치참여도 10점 만점에 7.22점으로 25위를 기록했다. 민주주의 지수 1위를 기록한 노르웨이의 정치참여도가 10인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이다. (안선우, 「정치적 무관심을 발전의 발판으로 삼자」, <미디어경청>, 2021.7.9.)
한편 국제의원연맹(IPU)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1년 기준 40세 이하 청년의원 비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해 전체 121개국 가운데 118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노르웨이(34.3%), 스웨덴(31.4%), 덴마크(30.7%), 핀란드(29%) 등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청년의원 비율이 전체 의원의 30%에 달한다.
프랑스(23.2%), 영국(21.7%), 독일(11.6%), 미국(11.5%), 일본(8.4%) 등 주요국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청년 대표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이정진, 「청년 정치참여 현황과 개선과제」,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1803호, 2021.2.24.)
<노회찬의 난중일기> 속에 등장한 노르웨이 : "도대체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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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6일 노회찬은 <난중일기>에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2006년 한국사회의 적나라한 양극화와 빈곤 실상을 잘 보여주는 신문의 통계와 함께 노르웨이를 불러냈다.
"도대체 우리 대다수 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머리가 나빠서인가? 남들 열심히 일할 때 먹고 놀아서인가? 반문하면서, 노회찬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등의 노동시간과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비교했다.
이어 노회찬은 사회양극화 심화와 관련해 노무현 참여정부의 기본정책을 질타했다.
노회찬, 노르웨이에 가다 :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만들어낸, '바뀐 공기'의 냄새
2008년 11월 15일부터 7박8일간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프랑스와 노르웨이를 방문헸다. 노르웨이의 경우는 노르웨이 최고의 국립대학 오슬로대학(Oslo University)과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노르웨이 방문기간 중 노회찬은 국립 오슬로 대학에서 '오바마의 등장과 한미관계의 미래'(Obama's Victory and the Future of Korea-America: We demand more change from America)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이 자리에는 오슬로 대학의 지역정치학 교수들, 노르웨이 아시아네트워크 회원,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참여해 동북아 질서 재편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강연 후 노회찬은 한국 유학생과 간담회를 통해 향후 진보정당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가졌다.
한편 노회찬은 한국을 떠날 때부터 준비한, 노르웨이의 평범한 시민 두 사람과 장시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 명은 간호사 출신, 한 사람은 교사 출신의 은퇴한 60대 여성이었다. 세금, 교육, 의료, 주거 등 일상생활에 대한 궁금한 것들을 다 물어보았다.
그들과 나눈 얘기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깨알 같은 메모가 적힌 '손바닥 노트'가 아직 남아 있다. 그 만남의 소감을 노회찬은 이렇게 전한다. (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211-212쪽)
은퇴한 노르웨이의 두 시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노회찬은 '바뀐 공기' 냄새를 맡았고, 그것은 그가 늘 강조했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만들어낸 냄새였다. 북유럽 나라라고 해서 아무런 갈등과 문제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 나라들이 '인류가 도달한 가장 선진적 수준의 나라'라는 노회찬의 평가를 유보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 2018년 7월 노회찬이 떠난 다음날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이자 경제학자인 우석훈의 추도사 「아름다운 사람들의 시대는 갔는가」(<오마이뉴스>, 2018.7.24.)를 보면 노르웨이가 등장한다.
노르웨이의 '연합정치'와 한국의 '민주대연합'(반MB연대), 그리고 노회찬의 '반MB대안연대'
강연 하루 전날 노회찬은 노르웨이 집권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당보다 왼쪽에 있는 '사회주의좌파당'(Socialist Left Party; Sosialistisk Venstreparti, SV)을 방문해, 좌파정당으로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주의좌파당의 입장과 향후 과제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의 진보신당과 노르웨이 사회주의좌파당 간의 정책교류를 추진하기로 하고 향후 당직자 교환프로그램 등을 함께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노르웨이를 방문하고 돌아온 얼마 뒤 노회찬은 <오마이뉴스>의 구영식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흥미롭게도 노회찬이 귀국한 뒤 정치권에서는 '민주대연합론'이 제기됐다.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민주당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등 '범민주세력'이 연합해야 한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반MB연대를 구축하자'는 주장이었다. (구영식, 「민주대연합론은 결국 '민주당 강화론': '진보 수혈' 대신 보수야당이 전향해야」, <오마이뉴스>, 2008.12.5.)
먼저 노회찬은 노르웨이 정치 상황을 이렇게 스케치했다.
이어 '연합정치'를 초점으로 우리의 정치상황에 대한 구영식 기자의 질문에 노회찬의 이렇게 대답했다.
※ 2021년 총선에서 사회주의좌파당은 노동당과 연대해 13석의 의석을 획득, 노동당과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기후변화 대응, 석유 시추, 복지 예산 문제 등으로 갈등하다가 9월 28일 연정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연대'에 대한 노회찬의 입장은, 대안을 중심으로 하는 '반MB"대안"연대'로 구체화됐다.
2009년 8월 12일 진보신당에서 주최한 '반MB연대,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반민주세력은 오래 전부터 '반민주'라는 역사의 문신을 지우고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보수'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반면, 민주세력은 정치적 우월감에 갇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대립구도로 '반민주'를 제압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미 대중의 눈에는 민주 대 반민주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며, 민주를 자칭하는 개혁, 진보세력은 지난 10년간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 장본인일 뿐이었다"고 꼬집었다.
노회찬은 "현재의 '반MB연대'는 '대안연대'가 아닌 '반대연대'에 머물고 있고, 항상 반대하는 상대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민주 대 반민주'식의 구도로 회귀하는 것으로는 반MB연대는 승리할 수 없다"며 "새로운 대안 비전 아래서 정치세력과 그 지지기반 자체를 재편하는 '반MB대안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반MB대안연대의 핵심은 "기존의 '정치적 민주연합'을 넘어선 '사회경제적 민주화연합'"이라는 것이었다.
노회찬은 '대안'연대의 구체적인 의제로 △기간제보호법·파견법의 폐지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입법 △부자기여세 등 부자 증세 △4대강 살리기 저지와 토지·주택 공개념 도입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제시하면서 여기에 '민(民)들레 연대-서민중심형 복지동맹'라는 이름을 붙였다. 발제문의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을 추가로 몇 개 소개하면 이렇다.
토론자로 나선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 교수는 노회찬의 제안을 환영하면서도, "지나친 대안강조론, 대안환원론을 경계해야 한다"며 "대안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문제가 단순히 대안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다른 문제들에 면죄부를 주는 알리바이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세상>, 2009.8.12.)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 교수도 "'민주 대 반민주'와 같은 낡은 이분법 연대는 다수파의 패권주의에 이용될 수 있다"며 고용·주거·교육·노후·건강 등 5대 불안을 해결할 정책에 기반을 둔 '경쟁적 연대'를 조언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는 "지난 정권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한 오합지졸식 결집은 반대 세력의 정통성을 또 상실할 수 있다"며 "연대는 민주당의 혁신을 촉진하고 견인하는 것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200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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