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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에서 세상을 뜬 백제 사람의 묘비명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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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에서 세상을 뜬 백제 사람의 묘비명은 어땠을까?

[최재천의 책갈피] <재당 한인 묘지명 연구> 권덕영 지음

"오랫동안 객지에 거주하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 거처를 마련하였네. 외로운 무덤을 바라보니 짙게 낀 안개속에 언제나 처량하구나."

묘지(墓誌)에 따르면 '웅진 서부'사람, 그러니까 당시로서는 백제 웅진사람, 지금으로서는 충남 공주사람 '진법자(陳法子)'가 당나라 측천무후시절 중국 땅에서 세상을 떴다. 묘지는 고인의 슬픔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공은 성이 천(泉)이고 이름은 남생(男生)이며 자는 원덕으로 요동군 평양성 사람이다." 천남생이란 사람이 당시로서는 고구려왕조가 지배하던 곳의 출신이고, 지금으로서는 북한 수도 평양 직할시 일대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묘지다.

일찍이 프랑스의 역사가 랑글루아(Charles V. Langlois)와 세뇨보(Charles Segnobos)가 "사료 없이 역사 없다"라 했다. 서지나 유물자료가 빈약한 우리 땅에서 나라밖에 있는 금석문 자료는 역사연구의 훌륭한 사료다. 

부산외국어대 권덕영 교수가 '지금까지 비교적 소홀히 취급했던 금외 금석문 자료 가운데 한국고대사 복원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재당 한인(在唐 韓人)'들의 묘지를 종합적으로 연구'했다. 7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부터 수많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하여 당나라로 이주했다. 이들이 그곳에서 살다 세상을 떴고 무덤 속에 묘지(墓誌) 혹은 묘비명(墓誌銘)을 남겼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중국에서 고구려유민 묘지 17점, 백제유민 묘지 10점, 재당 신라인 묘지 4점, 발해인 묘지 1점 등 총 32점이 발견됐다. 이 재당 한인들의 묘지들은 '당시 긴박하게 돌아가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고구려·백제 지배층의 동향, 당나라 이주 후의 활약상과 한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타국 생활과 당의 이민족 지배정책, 당조에서의 정치·군사·문화 활동과 역할 등등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책은 '자료편'과 '역주편' 두 권으로 이루어졌다. 전문연구자에게 필요한 책일텐데 왜 이 책을 구입해서 넘겨보게 되었을까. 첫째는 호기심이다. 아 이런 자료도 있겠구나. 이런 연구도 있구나. 이 분들은 어떻게 살다 갔을까. 

둘째는 응원이다. 자칫 무관심한 연구일 수도 있지만 이런 연구자 덕분에 역사는 끊임없이 다시 쓰여진다. 셋째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다. 생업과 실용의 길을 택하다보니 늘 학문의 길이 그립다. 넷째는 '문자공화국'(로버트 단턴) 시민으로서 활자와 책에 대한 경배다. 읽고 쓰고 말하기뿐 아니라 책을 구입하는 것 또한 하나의 의무라 여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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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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