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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의 시상, 정원에서 싹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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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의 시상, 정원에서 싹트다

[최재천의 책갈피] <에밀리 디킨슨, 시인의 정원>(마타 맥다월, 박혜란 옮김)

"그것의-이름은-'가을'-/그것의-색조는-피-/언덕 위 드러난-동맥-/길 따라 흐르는-정맥-//오솔길의-거대한 혈구들-/그리고 오, 오색 소나기-/그때 바람이-물동이를 뒤엎고-/진홍의 비를 쏟는다-//먼 아래로-모자들을 흩뿌리고-/붉게 물든 웅덩이들에 모이다가-/한 송이 장미처럼-소용돌이치고-멀어진다-/주홍 바퀴들을 몰며-//"

19세기를 살았던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노래한 가을의 정원이다. 시인은 전설의 문인이기 이전에 학교에서 식물학을 공부했고 생애 내내 식물과 정원을 사랑했다. 시인이 살아 있을 당시, 새로운 기술이 인쇄술의 동력이 되면서 정원 관련 저술이 활발해졌고 정원 가꾸기는 남녀 모두에게 미국적 취미가 되었다. 시인은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애머슨을 읽었고 자연에 집중함으로써 평범한 삶을 초월하는 이들의 성향을 공유했다.

시인에게 문학의 텃밭은 꽃이요 식물이요 정원이었다. "성장기의 시인은 똑똑하고 재미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사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원을 가족 코미디의 발판으로 하여 리비 숙모를 묘사했다. '나무들이 우뚝 서서 그녀의 부츠 소리를 듣고 있다. 이들이 과일 대신 그릇을 열매 맺을까 걱정이다.'"

한국에서의 저술 작업은 주로 직업적 작가들의 몫이기에, 외국작가들의 창조력과 구성력에 놀랄 때가 많다. 저자가 그러했다. 저자는 뉴욕식물원에서 조경디자인을 공부했고 그곳에서 조경사와 원예를 가르치고 있다. 어쩌다 혼자서 차를 몰고 뉴잉글랜드를 가게 됐고 '에밀리 디킨슨 홈스테드' 홍보책자를 만나게 됐다. 그렇게 우연히 찾은 디킨슨 홈스테드의 모습은 초월적이었고 시인도 작가처럼 정원사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저술의 시작이었다.

책은 계절에 따른 캘린더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계절의 변화,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시인의 한 생애, 그리고 시인의 삶과 계절의 변화를 함께해온 꽃과 나무들, 여기에다 놀랍도록 적절하게 인용된 시인의 시편들이 꽃밭처럼 우리를 반긴다.

멋지게 소개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머뭇대다가 뒷날개에서 적절한 표현을 훔쳤다. "이 책은 시인이 살던 19세기의 생기 넘치던 사라진 세계를 상기시키고 21세기의 정원사인 우리에게 더 큰 책임감을 갖도록 해준다.(마타 워너 시카고 로욜라대 교수)" 그랬었다. 어린시절 봄, 여름, 가을 내내 꽃밭을 가꾸고 뒷산을 뛰어다니곤 했었지. 그런 지금은 고작 전원주택이나 꿈꾸는 건 아닌지 부끄럽다. 책은 둘째 딸에게 선물하기로 한다.

▲<에밀리 디킨슨, 시인의 정원> ⓒ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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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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