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부족한 의료인력 핑계로 토건형 지역개발 공약?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부족한 의료인력 핑계로 토건형 지역개발 공약?

[시민건강논평] '지역균형발전'을 넘어 '권력균형발전'으로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으나, 온 사회가 여전히 움츠려있다. 코로나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이 적을수록 다른 공간을 생각하고 경험하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 집단적 '성찰'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없어지는 셈이다.

이제는 상식이 된 명제. 인구·정치경제·교육·문화 전반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심화된 결과 한국은 '서울공화국'이 되었고 지방은 '내부식민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5년마다 열리는 거대한 정치의 장, 대선에서는 지역 문제를 거론하지도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문제이자 고통이 아닌가. 오가는 이와 모임이 줄었으니 여론과 공론 형성의 기회까지 위축되겠으나, 한계를 넘어 지리적 공간을 둘러싼 시대적 과제를 되살려내야 한다. 지난주에 보도된 두 가지 법안과 계획을 소재로 삼자.

그중 하나는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방대·지역인재육성법 시행령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부족한 의료인력의 확보를 위해 지역 학생들을 의료인력 선발 과정에 포함하는 지역할당제를 의무화했다.(☞ 관련 기사 : <이데일리> 9월 14일 자 '고2부터 지방 의·약대 40% 지역학생으로 '의무 선발'')

'지역' 의료문제가 정치화한 사례는 많다. 가깝게만 따져봐도 2016년 20대 총선과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전국에 의대 신설이나 대학병원 유치를 내세우는 후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대표적인 토건형 지역개발 공약이었다는 것.

도시 한복판에 의대나 병원을 지으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역이 저절로 번영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비전'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 형편은 더욱 나빠졌다. 이제는 지역 인재 유출과 지방소멸이 위험하다는 논리로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대학(원)에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높여 지방대학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16일 국토교통부가 확정·발표한 '제2차 국가도로망종합계획'이다.(☞ 관련 기사 : <한국일보> 9월 16일 자 '30년 만에 간선도로망 바뀐다..."전 국민 30분 내 접근가능"') 1992년 이후 국가 간선도로망 체계가 처음 개편되는 것이며, 10년 단위로 결정되는 도로 분야 최상위 법정계획이라고 한다. 남북과 동서를 각각 10개 축의 격자망으로 잇고 대도시권역 순환망을 구축해서 전 국민이 30분 이내에 간선도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계획은 반가우면서도 기만적이다. 그 첫째 이유는 그간 교통량과 이동 인구가 적은 곳에도 지역이기주의나 선심성 공약으로 공항과 대로를 건설하는 동안 이렇게 교통인프라 취약지가 남겨져 있었다는 것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 계획이 최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이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 것처럼 전국을 개발 열풍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도로망이 곧 경제적 발전이라는 인식은 익숙하거니와 이미 일부 지자체는 '무한한 성장 가능 기회를 얻었다며 적극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관련 기사 : <파이낸셜투데이> 9월 17일 자 '합천군, '제2차 국가도로망종합계획'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확충', <충청뉴스> 9월 17일 자 '"태안군에 고속도로 건설된다" 군민 숙원 해소 '쾌거'') 과연 지역 출신 대학 신입생을 늘리고 사통팔달 도로를 잇는 것으로 지역발전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권력균형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대선후보를 자처하는 공당의 인사 중에 국토의 균형발전을 언급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대선의 핵심 아젠다가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후보들은 주로 지역토론회나 지역 방문 행사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분권정책과 특별회계,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 메가시티 육성, 지역 국공립대 지원, 공항과 도로망의 건설 등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는 한결같이 국가와 중앙정부에 '청탁'하는 것일 뿐 지역의 권력과 압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도권 중심으로 인구와 산업, 교육과 문화가 한없이 집중되도록 만든 강고한 권력의 패러다임, 그것을 내재화한 사람들의 인식과 규범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즉 힘의 관계를 재구성하지 않고는 지역 불평등을 개선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람 수와 경제력만 권력의 원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장소를 인간 실존의 근원으로 보는 인문지리학자들은 장소가 세계 속에 존재하는 사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알고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지금 삶의 장소들이 처한 극적으로 비대칭적인 과잉과 과소의 현실은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과정이 만들어낸 것이다.

관계와 과정은 의미, 이해, 가치, 규범, 그리고 무엇보다 말을 규정한다. 그 이해와 실천의 과정을 바꾸는 것이 시작이다. 특히 말과 생각을 전환하자. 지역 불평등이 왜 문제이고 지역균형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것들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삶의 터전이 소멸에 이르도록 위기에 처했는데도 제 자리를 찾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면, 그것을 입 밖에 꺼내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평등한 세계를 용인하고 떠받치는 조력자로서 이 장소를 점유했다는 오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시민건강연구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