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기승전'한미연합훈련'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있어서 한미연합훈련이 중대 변수가 된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7월 27일 남북 통신선 복구 이후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되고 있다. 2019년 하반기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관계는 통신선 복구를 계기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연합훈련 강행과 북한의 강력한 반발로 이러한 기대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오히려 통신선 복구라는 신뢰 회복 조치가 연합훈련을 둘러싼 갈등과 부정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불신을 강화시키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인식이 남북 양측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더블 딥(double dip)' 현상이 남북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구조적 패턴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훈련인 '팀 스피릿'과 북핵 문제가 조우한 1990년대 초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오바마 행정부 출범이 부정적 화학작용을 일으킨 2009년 상반기,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을 통해 만들어진 기회가 유실된 2019년 하반기, 그리고 2021년 상반기와 하반기의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졸저,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참조)
특히 북한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8차 당대회에서 이를 한국의 첨단무기 도입과 함께 "근본문제"로 일컬었고, 이러한 입장은 최근에도 거듭 확인되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교착상태 및 악순환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연합훈련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연합훈련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과거보다 훨씬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제기할 수 있는 핵심적인 질문은 '북한이 왜 이토록 연합훈련에 과민 반응을 보이느냐'이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두고 "적대시 정책"이라고 간주하면서 이를 비난해온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의 입장과 필자의 추측을 종합해 다음과 같이 분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것이라는 점이다. 공개된 것만으로도 트럼프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했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자신의 일방적 요구보다는 미국의 '약속 이행'의 관점에서 바라봐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트럼프의 재임 기간에도 그랬고 바이든 행정부 등장 이후에도 그렇다.
주목할 점은 북한이 미국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할 경우, 북한의 반발 수위가 통상적인 경우보다 더 강했다는 것이다. 최근 상황뿐만 아니라 1990년대 초반 사례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당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팀 스피릿' 중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응수했었다.
둘째, 남북관계 차원이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및 그 부속합의서인 군사 분야 합의 어디에도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한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대규모 군사훈련" 문제를 논의키로 했지만, 군사공동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북한이 연합훈련에 강력 반발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맹비난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다.
동시에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부전(不戰)의 맹세, 상호불가침, 적대행위 중단, 군사적 신뢰 구축 및 "단계적 군축" 추진은 2018년 남북정상간 합의의 핵심 기조에 해당된다.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모순은 이러한 정상 간의 의기투합을 통한 신뢰 구축과 전면전까지 상정한 한미연합훈련과의 관계에 있다. 즉, 북한은 불가침을 약속했는데 남한은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미국과 연합훈련을 하는 것이 어울리는 짝이냐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언행을 '내로남불'로 바라봐왔다. 북한으로서는 남한이 미국과 연합훈련도 하고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도 하면서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를 두고는 "도발"로 규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북한의 내부 정치이다. 김정은의 국가전략의 핵심은 아버지 시대의 '선군정치'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로 표방되는 '선경정치'로의 이행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군부를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의 동의와 이들에 대한 통제가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김정은은 트럼프와 만났을 때, 군부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연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트럼프의 약속을 받아내곤 큰 기대를 갖게 된 것이다.
전후 맥락을 보면, 김정은은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를 설득하고자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한미연합훈련이 계속되면서 북한으로서는 '선경정치'에 난관이 조성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최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경제난과 재해 극복, 그리고 코로나 방역에 투입하려는 김정은으로서는 북한도 한미연합훈련에 군사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리·통제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본인 스스로 군사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넷째는 북중관계 차원이다. 최근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추세는 중국을 염두에 둔 성격이 짙다. 이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한 중국의 위협 인식을 높이고 북중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대중 관계에 있어서 외교적 지렛대로써의 성격을 품고 있다.
이러한 네 가지 분석이 타당성을 지닌다면, 연합훈련 문제에도 이러한 관점을 투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적어도 3월과 8월 전면전을 상정한 전구급 연합훈련 중단은 북한의 일방적인 요구라기보다는 아버지 부시와 트럼프가 약속한 바를 뒤늦게나마 지키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북미대화 재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 전구급 연합훈련 중단은 실 끝에 매달린 남북한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고, 북한의 군사화를 견제하면서 선경정치로의 이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울러 북중관계의 과도한 밀착을 견제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명언처럼,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는 한미동맹은 물론이고 북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반발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반발과 군사적 대응으로는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미연합훈련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도 자명하다. 북한의 자제와 대화 재개를 거듭 촉구하는 까닭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