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에 대한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부스터 샷(3차 접종)'을 긴급사용 승인했다. 이튿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자문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여 부스터 샷 접종을 승인했다.
지난달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을 대상으로 전 세계 최초 부스터 샷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이번 달부터는 60세 이상을 대상으로도 부스터 샷 접종에 들어갔다. 영국, 독일, 프랑스도 다음 달부터 고령자와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에게 부스터 샷 접종을 시작한다. 인구 규모 전 세계 세 번째이자 화이자와 모더나가 위치한, 백신과 원부자재 수출을 제한해 온 미국도 이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여러 차례, 부스터 샷 접종을 미뤄달라고 '호소'했다.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보건의료 노동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1차 접종도 완료하지 못하고 있는데, 3차 접종이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백신 불평등이 변이 바이러스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팬데믹 종식도 늦춘다는 것 역시 이제는 상식에 가깝다.
부스터 샷 접종이 백신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미국 정부는 "(중·저소득 국가에 대한 백신 지원과 부스터 샷) 둘 다 할 수 있다"라며 시치미를 뗐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은 아프리카 등 중·저소득 국가에 대한 백신 기부를 각각 수억 회분씩 공약했었지만, 실제 기부한 물량은 지금까지 각각 수백만 회분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지난 몇 달간 부스터 샷을 고려해 각각 수억, 수십억, 수천만 회분의 백신을 추가 구매했다. 지나치게 사재기한 백신을 유효기간 만료로 폐기까지 하는 중으로, 미국 내 10개 주(전체 5분의 1)에서 파악된 것만 지금까지 100만 회분이다.
부스터 샷 논의의 불씨는 제약사가 지폈다. 백신의 예방 효과가 시간에 따라 감소하는 것이나, 변이 바이러스 발생과 확산에 따라 효과가 줄어드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백신이 없어 1차 접종도 하지 못한 사람과 나라가 많은 상황에서 '감히' 3차 접종의 효과를 검토한 것은 화이자였다. 부스터 샷의 필요성에 대한 언론 홍보도 지속했다.
애초 미국 FDA와 CDC는 제약사들의 부스터 샷 제안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인 앤서니 파우치는 "화이자가 아니라 CDC와 FDA 말을 들으라"라고까지 했다. 상황이 역전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 국가에서 부스터 샷이 과학적, 공중보건적 옵션을 넘어 정치적 옵션으로 고려된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정치적 맥락이 있을 것이다. 델타 변이의 확산, 넘쳐나는 물량과 온갖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정체된 접종률,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
하지만 그 옵션을 제안한 제약사의 이해관계는 비교적 단순하다. 이윤 극대화. 화이자와 모더나는 최근 유럽연합에 기존 계약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백신 가격을 각각 26%, 13%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제약사들은 노골적으로 "백신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유럽연합 관계자는 백신 공급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유럽 내 공장에서 생산되는 백신을 더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후 화이자와 추가계약을 체결한 영국 역시 기존 대비 22% 비싼 가격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 불평등, 이윤 극대화라는 비판에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제약사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전 세계 공급에 충분하도록 생산량을 확대하라는 요구에도 미동 하나 없다. 반대로 생산량을 최대한 그들의 수중에서 통제하고, 제한된 생산량을 가장 수익이 많이 남는 방식으로 판매하는 게 그들의 룰이다.
한국은 자유로운가? 지난 금요일, 정부는 내년도 전 국민 1회 추가 접종 목적으로 화이자 백신 6000만 회분(3000만 회분+옵션 3000만 회분)을 추가 구매했다고 밝혔다. 2000만 회분 추가 구매 계약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올 하반기 공급용으로 화이자 백신 4000만 회분을 추가 계약한 지 넉 달 만이다. 유럽연합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기존 대비 인상된 가격을 수용했을 것이다. 정부는 부스터 샷 접종을 고위험군부터 올해 4분기 중 시행할 수 있다고도 밝힌 바 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잦아들지 않는 유행에 더해, 모더나가 백신 공급에서 지속해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 큰 요인일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유럽과 달리 우리의 백신 추가 구매는 더 정당성이 있다고 이중 잣대를 적용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부 역시 그러한 사회적 용인을 전제하고, 그리고 더 이상의 '백신 수급 실패' 프레임을 방지하고자 더 적극적으로 추가 구매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한국이 지금까지 구매한 백신은 총 2억 5200만 회분으로, 전체 인구의 5배, 성인 인구의 6배 가까운 물량이다.
이와 같은 국제 백신 체제의 지극히 비도덕적인 권력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우리는 각 제약사가 어떤 기준에 따라 백신을 공급하는지 알지 못한다. 제일 비싼 값을 지불한 곳인지, 제일 많은 양을 구매한 곳인지, 가장 빨리 계약한 곳인지. 각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가격을 올리며 추가 구매를 지속함으로써 공급의 우선순위를 확보하려 한다는 것은 제약사들의 독과점, 공급 우위 시장의 명백한 증거다. 그나마 그 제약사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정부, 그리고 국가 간 연대지만, 어느 정부도 그렇게 하고 싶어 보이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현재 긴급사용 승인 상태인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정식 승인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 정식 승인되면 백신 접종 대상 인구 확대와 접종 의무화도 가능하고 안전성 우려도 다소간 줄일 수 있다.
전 세계 공중보건과 의약품 허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에서 정식 승인이 되면 다른 나라에서의 부스터 샷 승인 시에도 유리하다. 팬데믹이 종료된 후에도 사용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긴급사용 승인은 적절하거나 가용한 백신이 없는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후속 백신의 긴급사용 승인을 제한하는 독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바로 보기 : '한국바이오협회' 8월 10일 자 리포트 '[보고서] 미국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승인과 정식승인의 차이')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국내 정치 때문에도 백신을 양보할 수는 없을 터, 국제 공조를 끌어내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 한마디의 글로벌 정의를 말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지적재산권 유예를 적극 지지하고, 여전히 반대하고 있는 유럽, 일본 등 다른 고소득 국가를 압박해야 한다. 현재 유통 중인 대부분 백신의 지적재산권을 보유한 미국, 중국, 러시아는 이미 유예 찬성을 공식화했다. 적극적 '백신 외교' 중이던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찬성 발표 이후 곧장 입장을 발표했다. 유럽, 일본, 한국이 유예를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까지 백신 사재기와 국산 백신 개발 지원에 쓴 돈이 아까워서일까?
백신 개발과 생산에 관한 지적재산권을 유예하고, 기술과 지식을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면, 국내 기업 중 현재 위탁 생산을 하고 있지 않은 곳들도 이렇게 공유된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 한국과 전 세계를 위한 생산량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 자체 개발에 성공한 백신은 없지만, 생산 역량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중·저소득 국가의 생산 시설들도 마찬가지다.
백신 개발과 생산 기반 확충을 위해 민간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삼성바이오와 SK바이오가 제2의 화이자, 제2의 모더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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