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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일은 좋은 대우를 하지 않아도 돼"

[시민건강논평] 여성노동에 숨겨진 구조적 여성혐오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직장 내 갑질과 과로로 인해 사망한 지 40일 만에 서울대 총장은 직접 유가족을 만나 늦은 사과를 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8월 5일 자 '서울대 총장, 유족과 청소노동자 만나 '노동조건 개선', '갑질 해결' 약속') 이 사건에서 다른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비교해 눈에 띄는 것 한 가지는 업무 관련성이 없는 (영어와 한자가 포함된) 필기시험을 보도록 한 일이었다. 현재 공교육 과정에는 중고등학교를 합쳐 2년간 한문을 배울 수 있지만, 그마저 선택과목이라 전혀 배우지 않아도 무방하다. 고인의 세대는 한자 상식이 더 많을 것이라 여겨 시험을 봤을 리도 없다. 이런 직장 내 갑질은 나이든 여성노동자를 보는 시각, 즉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이런저런 일을 명령해도 되는 절대적인 약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중년 여성들은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업무 통제력도 낮은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 콜센터 상담원, 간병사,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가사노동이나 청소노동자가 바로 그렇다. 다른 서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와 인구고령화, 노후대비 불충분 등의 사유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중고령층(55~79세)의 고용률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바로 가기 : 국가통계포털)

중고령층 여성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좋지 않은 조건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이들은 간병 돌봄 등 사회복지 서비스와 청소용역 등 직종분포의 쏠림이 심하고 근로 형태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높으며(70% 이상) 상대임금 수준은 더욱 낮다.(☞ 바로 가기 : <노동리뷰> 2016년 12월호 '2016년 고령층(55~79세) 노동시장 특징') 전반적인 고용구 조가 일자리의 질은 낮고 일을 하면서도 충분한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의 중고령층 여성들은 이전 생애 과정에서 노동시장에 참여할 기회가 적었으며, 참여했다 하더라도 무급노동 또는 비공식 부문이거나 규모가 작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종에 종사했다. 노동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 공적 사회보장제도가 튼튼한 것도 아니었다.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이나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같은 경제적 요인과 더불어 고령화와 이혼 증가 등 가족 구조 요인은 이른바 '빈곤의 여성화'가 가중되는 1차 원인이다.(☞ 바로 가기 : <한국사회복지학> 제59권 제3호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

'빈곤의 여성화'는 산업화가 진행된 여러 나라가 1970~80년대부터 주목했던 현상임에도 한국은 이들의 경험에서 배운 바가 적다. 한국에서 중장년층 이상 인구의 노동과 사회보장은 성별 구분 없이 모두 불안정하고 '위험'하지만, 특히 여성 인구에 치우치는 이중의 불평등 구조는 중대한 문제다.

현재 중고령층 여성의 노동과 삶을 결정하는 구조의 핵심에는 성별 불평등이 존재한다. 여성의 일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 수준부터 그렇다. 노동시장을 둘러싼 하나의 중요한 권력 관계는 성별에 따른 차별이다. '여자들이 하는 게 뭐 있어 빨리 자르는 게 낫지 (또는 결혼이나 출산을 할 테니 안 뽑는 게 낫지)'와 '여자들이 하는 일인데 좋은 대우를 할 필요 없어' 정도로 거칠게 요약된다.

멀리 갈 것도 없으니, 코로나19 유행 동안 이 두 가지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첫째, '빨리 자르는 게 낫지'. 2020년 취업자 감소는 여성이 13.7만명, 남성이 8.2만명으로 노동시장에서 고용충격은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컸다. 특히 25~54세 핵심 노동연령 여성의 취업자 수 감소는 업종 효과(노동 수요)와 돌봄 필요의 증가(노동 공급)가 결합한 결과였다.(☞ 바로 가기 : <KDI 경제전망> 2021 상반기 '코로나19 고용충격의 성별 격차와 시사점')

'여자들 일은 좋은 대우하지 않아도 돼'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콜센터나 물류센터처럼 비정규 불안정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개인 보호구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더 좁은 업무공간을 점유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감염을 겪은 후에도 그런 노동의 조건은 개선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한겨레> 5월 17일 자 '"코로나 집단감염 이후에도…콜센터 방역지침 유명무실"') 돌보던 환자가 코로나 확진자인줄 모르던 간병사의 죽음이 있었고 감염병 취약층과 밀접 접촉할 수밖에 없는 요양보호사들이 잇따라 확진되었지만, 이들의 노동을 안전하게 보호할 긴급 지원은 없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2020년 3월 15일 자 '돌봄노동자 잇단 '환자 감염'…"마스크라도 지원해주세요"') 여성들이 다수 종사하는 보건의료복지 직군은 감염위험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젠더 페널티로 설명되는 저임금도 감당해야 했다.(☞ 바로 가기 : <시민건강연구소> 2020년 7월 14일 자 '[이슈페이퍼] 코로나19 대응과 노동자 건강권 보장')

직장 갑질에 의한 여성 청소노동자의 죽음, 코로나19 위기로 여성들에게 집중된 실업, 감염 위험이 큰 돌봄 서비스 노동의 지속. 이 세 가지가 거듭 드러나고도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에 필요한 수많은 일로부터 여성의 일을 구별해내고, 노동을 저평가하고 비공식화하며, 제대로 값을 매기지 않는, 근본적이고도 완고한 구조로서의 여성차별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여성혐오(미소지니)나 페미니즘(안티 페미니즘) 같은 말들을 오해, 오용하는 것조차 구조적 여성차별의 산물이다.(☞ 관련 기사 : <미디어오늘> 2016년 7월 26일 자 '남성들이 "내가 언제 여성을 혐오했냐"고 묻는 이유') 아마 노동자가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제조업체에서 일하거나, 몸이 아픈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을 소명처럼 여기며 일하고 있는 50대 이상의 대다수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피해와 모욕, 일하면서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여성혐오나 미소지니라는 말로 설명해본 적이 없을지 모른다.

머리 모양과 복장, 사용하는 언어, 거칠거나 온화한 행동과 감정의 표현을 여성적인 것 또는 남성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태도와 행동을 문제 삼거나,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는 당신이 페미니스트냐고 검증하려는 질문은 어쩌면 성차별 또는 안티 페미니즘의 아주 일부, 그것도 단편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성별 기준으로 누군가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데서 나아가, 일하는 사람의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고 노동 현장의 규칙을 고수하려는(또는 바꾸려는) 것이 바로 노동에 개입하는 구조로서의 여성혐오(미소지니)이다. 이런 구조는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사회경제적 피해가 집중되는 빈곤층과 중하층 여성들에게 그 피해를 불가피한 것이자 개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작동한다.

여성들이 자신을 향한 불평등과 폭력으로부터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으려고 하면 그 일터를 떠나거나 집을 떠날 각오를 하지 않고는 고발조차 할 수 없는 현실, 존재하는 성차별과 실존하는 피해자를 앞에 두고도 인식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일, 아닌 일이라고 단정하는 현실이 바로 여성혐오적인 사회 구조가 실재한다는 증거들이다.

우리는 성차별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있고 그 때문에 불운한 피해자가 생긴다는 단선적이고 표면적인 개인 간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제 누구라도 그런 관계를 익숙하게 반복할 수 있게 하는 여성혐오적인 사회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성차별적인 사회와 노동에 대한 당부는 우리 논평에서 10여 년 전에 했던 말과 다르지 않다. 뉴노멀이나 포스트 코로나를 상상하려면, 더 늦기 전에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성 평등을 말하는 목적은 인적 자원을 키우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남성을 포함한 모든 이의 권리이고 그게 정의이기 때문이다."(☞ 바로 가기 : <시민건강연구소> 2012년 10월 29일 자 '[서리풀 논평] 여성차별, 여성건강')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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