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2020년 세계 성별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53개국 중 108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구체적으로 '경제적 참여와 기회' 항목에서 127위, '교육 성과'에서 101위, '정치적 권한'에서 79위를 차지했다. '건강과 생존(남녀 성비, 건강한 삶에 대한 기대)' 항목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나머지 항목의 점수가 너무 낮아서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런 저조한 순위는 2006년과 비교해 오히려 14계단 떨어진 것이다. 지난 15년간 다른 나라들이 성별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동한 반면, 한국은 정체돼 있었거나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갔다는 얘기다. 세계경제포럼은 세계의 저명한 기업인, 경제학자, 정치인, 언론인 등이 모여 범세계적 경제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국제적 실천과제를 모색하는 국제민간회의로 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총회(다보스 포럼)를 개최한다.
또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평가한 성별 임금 격차(33%, 2019년 기준)에서도 20년 가까이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2019년 가을 미국 워싱턴DC 특파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정치에 대한 기사나 칼럼은 쓴 적이 없다. 현장을 떠나 있고 직접 취재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을 듣고는 관련된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주장은 보수의 세대 교체, 미래 가치를 표방하고 나서 당선된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뒤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 하태경 의원 등이 줄줄이 이에 동조하고 나서면서 전면에 등장했다.
기자가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지난 2년 동안 한국은 여러모로 주목 받았다. 지난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VTAD)에서 한국이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됐다. 유엔무역개발회의 창설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한국은 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최근 2년 연속 초청 받았다.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지만, 한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2034명으로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7월 8일(현지시간)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61만1082명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코로나19 방역을 잘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7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상향 조정한 것도 코로나19 대응에 상대적으로 성공해서 이로 인한 영향을 덜 받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의 국제적 주목과 두각은 어느 특정 정권이나 집단의 공이라기 보단 문재인 대통령이 6일 국무회의에서 밝힌 대로 "한국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이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막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만큼 여전히 극복해야할 많은 과제들이 있다. (물론 선진국이라고 해서 이들 사회가 현 시점에서 한국보다 높은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코로나19 방역 실패, 트럼프와 아베로 상징되는 극우 정치의 확장 등을 보면 선진국들이 과연 앞서 나가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실효성을 이유로 여성가족부(여가부)를 폐지하고 정부 조직을 개편하자고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가부는 1998년 대통령선거 때 주요 3당 후보가 공통 공약으로 '여성부 설치'를 주장했고, 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출범시킨 부서다. 여가부의 영어 명칭을 직역하면 '성평등 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라는 점에서 명칭을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런 모든 주장은 한국에 명백히 존재하는 성별 격차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기반해야 한다. 세계 153개국 중 108위라는 엄연한 현실에 눈감은 채 "여성가족부 예산을 제대 군인에게 나눠주겠다"(유승민), "탈레반 여성 우월주의자들"(하태경) 등을 이유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불과하다. 이준석 대표를 포함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려면 기존의 여가부의 업무를 좀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내놓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다.
이준석 대표는 당 대표 선거 당시 젠더 갈등, '이대남'(20대 남성)의 분노와 박탈감을 부추기는 정치를 한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식 정치를 지칭하는 '트럼피즘'은 미국의 백인 보수 유권자들의 박탈감과 분노에 불을 지르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보수의 세대 교체를 표방하며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한 30대의 젊은 당 대표를 트럼프에 비유하는 것은 과도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난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무장 폭동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기자 입장에서 '가공된 현실'에 기반한 '증오의 정치'는 결코 공동체의 미래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만은 말하고 싶다. '선거 사기'라는 거짓 주장을 바탕으로 지지자들의 분노에 부채질 하던 트럼프는 의회 폭동 당일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지지자들의 무장 폭동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당시 백악관과 정부 관료들을 취재한 마이클 울프는 조만간 발행될 예정인 신간 <산사태>(Landslide)에서 트럼프가 의회 폭동을 보고 크게 걱정하며 "이 사람들이 누구냐? 내 지지자들이 아니라 민주당원들인 것 같다"고 참모들에게 얘기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최근 미 역사학자 등 전문가 142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에서 44명 중 41등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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