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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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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의 정치학

[최창렬 칼럼] 실체 없는 음모론이 휘감은 대선

지난 주말 '윤석열 엑스(X) 파일' 이슈가 부각되면서 낯설지 않은 구태가 기시감으로 살아났다. 검증과 네거티브의 경계는 모호하다. 사실과 허구가 혼재되어 있다. 2002년도 김대업의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비리 폭로는 결국 허위로 밝혀졌으나, 이회창은 결국 두 번째 대선 도전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2007년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 조작 사건이 대선판을 뜨겁게 달궜으나 이명박은 이를 뚫고 승리했다.

선거정치에서 네거티브는 곧잘 전략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네거티브와 흑색선전 그리고 마타도어는 구분도 애매하지만 정치과정을 왜곡시킨다. 이에 동원되는 불법사찰과 정치공작은 민주화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 이후에도 선거 승패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엑스 파일에서 'X'는 문건 또는 파일의 실체가 불투명하고, 작성 주체는 물론 경위와 심지어 의도와 목적도 불분명하다는 뜻을 내포한다. 의혹이 담긴 문건이나 문서가 경쟁 정당에서 작성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겠으나, 음모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같은 진영의 잠재적 경쟁자에 의해 생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종종 피아가 구분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요소는 대표의 원리와 민주적 책임성의 원리이다. 그리고 반응성이다. 결국 통치자가 공적 영역에서 그 행위에 대해 책임지거나 또는 책임감을 갖도록 시민들에 의해 제약되는 통치체제가 민주주의이다.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의 책임성과 대표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사전 검증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작금의 엑스 파일의 형태는 검증이라고 할 수 없다. 검증은 의혹을 공식으로 제기하고 국가기구인 수사기관에 진실 여부를 가리기 위한 수사를 의뢰함으로써 시작되고 완성된다. 불가피하게 정치 영역의 사안이 사법 영역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세기에서나 있을 법한 퇴행을 아직도 반복하고 정치권이 이에 따라 요동치는 모습은 정치를 왜소화시킨다. 또한 파일의 암묵적 유통은 권력정치의 추악한 면을 드러냄으로써 정치에 대한 냉소를 부추기고 정치적 효능감마저 떨어뜨린다. 정작 중요한 갈등적 이슈가 시민사회의 공론장으로 나와서 토론과 논쟁을 통하여 유권자나 당원에게 심판받는 현대정치의 기본 얼개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시민사회의 균열을 드러내고 계층의 이해를 대표하는 정치 자체를 형해화한다. 권력에 눈 먼 자들의 반정치적, 비민주적 음모가 정치의 주요 인자로 작동될 때 그 결과의 참담함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2007년의 17대 대선 때 지금의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실상 본선이었던 경선이 예측 불가였다. 이번 대선은 여당보다 야당의 경선이 더욱 예측불허지만 대선 본선의 예측불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우선 야권에서 장외주자들이 강세를 보이는 이례적 상황, 현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정권교체론과 정권심판 정서가 우세한 여론지형 등과 여권 내 가장 강력한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친문의 노골적인 견제 등이 맞물리면서 각 진영에서 본선의 링에 오를 대표선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정의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 중의 하나가 선거 결과에 대한 불가측성이다. 따라서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선거정치에서 하자라고 할 수 없다. 대선 주자에 대한 검증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파일과 문서의 형태로 정치권에 부유하다가 내용도 공개되지 않는 실체 없는 문건이 한국 정치판 전체를 들쑤시는 이 같은 행태가 반복되게 할 수는 없다. 수많은 행위인자들이 결합하는 집단선택 행위에서 제기되는 마타도어나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실질적 승부에 영향을 준다면 표심은 심각하게 왜곡된다. 대선 국면이 달아오를수록 여야의 유력 주자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 진화된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검증이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와 언론, 정당체제 내에서 걸러지고 사실 여부가 밝혀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법률적·정치적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권력을 탐닉하는 정치꾼들의 먹잇감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정치는 직업적 이해를 넘는 소명의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고전적 당위가 아니더라도 정치판에 대한 시민주체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제도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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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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