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에서 성과급 기준 투명화 논란이 불거진 이후 상반기 대기업 사무직 노조 설립이 잇따랐다. 지난 2월 LG전자 사무직 노조를 시작으로 4월 금호타이어와 현대자동차에서 사무직 노조가 설립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MZ세대의 공정 요구', '양대노총에 대한 거부'로 특징지어 설명했다. 노조를 만든 이들은 이같은 진단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들의 요구는 무엇일까.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난 12일 인터뷰한 이유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으며 서면 답변을 받은 후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유 위원장은 "LG전자에는 사무직 노조 설립 전부터 성과급 기준, 포괄임금제 등 근태시스템에 대한 사무직 노동자의 불만이 누적되어 있었다"며 "노조 설립 한달만에 3000여 명의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할 정도로 응원과 지지가 뜨거웠다"고 밝혔다.
유 위원장은 자신들의 주요 요구를 포괄임금제 폐지와 제대로 된 노동시간의 산정, 성과급 책정 기준의 합리화, 투명화로 요약했다.
유 위원장은 "MZ세대나 양대노총 거부와 같은 특정한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노조를 만들려 한 것은 아니었다"며 "구성원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면에서 우리 노조도 다른 노조와 같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군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에 대해서는 "교류는 환영이지만 우선은 LG전자 내에서 자리를 잡고 사무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유 위원장은 향후 조합원과의 만남, 사측과의 만남 등을 계획하고 있다며 "노조의 힘은 조합원의 수에서 나오는 만큼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많은 동료가 노조에 가입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성과급, 근태시스템 등 불만 누적...한 달 만에 3000여 명 가입
프레시안 : 노조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유준환 : 여러 가지가 있다. 4년 차 연구원인데, 매해 사무직 근로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쌓여가는 것을 온‧오프라인으로 들어왔다. 비단 불투명한 성과급 기준 뿐 아니라 포괄임금제와 현 근태 시스템의 함정, 특정 사업장에서 자행되어온 초과 근무 강요 및 초과 근무분 축소 보고 종용, 폭언과 폭행 등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무언가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2020년 말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을 시작으로 성과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번만큼(2021년 연봉과 성과급 결정)은 LG전자도 다르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를 했다. 2020년은 LG전자가 최대실적을 낸 후라 조금 더 기대를 했다. 그런데 TV사업부가 영업이익 1조 원을 달성했는데도 성과급은 연봉의 10%에 그친 데다 성과급 책정 기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성과급을 비롯해 다른 모든 불합리함의 근원이 소통창구의 부재라고 생각해 노조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었다.
프레시안 : 어떤 과정을 거쳐 노조를 만들었나? 노조 설립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유준환 : 초기에는 신원노출을 꺼리는 분이 많아 익명으로 약식 가입 의향을 받았다. 일주일 안에 가입 의향을 내비친 사람이 500명을 넘으면 노조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고 넘지 않으면 설립하지 않겠다고 했다. 5일이 채 되지 않아 800명 가까이 익명으로 가입 의향을 보여줬다. 이후 한 달 만에 실명 가입신청자가 3000명을 돌파했다.
처음 노조 설립을 추진하면서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두가 공감하는 사항인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폭발적인 반응과 많은 응원 때문에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프레시안 : 밴드, 카페 등을 통해 불만과 요구를 수집하고 있는 걸로 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나?
유준환 : 설립 초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무직이 아닌 생산기능직들의 문의였다. 생산직이 주축인 기존 노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생산직 근로자들조차 기존 노조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며 가입제한 범위를 생산직으로 넓혀달라고 많이들 요청했다.
많이 안타까웠지만 사실상 그동안 철저히 묵살 당했던 사무직의 권익을 되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직이 제대로 노조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 노조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안 좋다.
"포괄임금제 폐지와 성과급 책정 기준 투명화 원한다"
프레시안 :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유준환 : 포괄임금제 폐지와 성과급 기준 투명화다.
애초에 포괄임금제는 근태관리자의 감독 하에 있으며 정해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에겐 적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LG전자는 사무직 전체에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 제도와 더불어 출퇴근 시간과 별도로 관리자의 결제 하에 근무시간을 기입하게 한 근태시스템이 소위 말하는 무료봉사를 하게끔 종용한다.
성과급 기준 투명화도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 회사는 성과급 기준을 성과급을 주기 직전에 알려줬다. 기준도 매해 달랐다. 적어도 이런 기준은 미리 공지하고, 정량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프레시안 : 먼저 성과급 기준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유준환 : 매해 성과급 책정 기준을 성과급 지급 직전에 알려준다. 또 그 기준이 매해 바뀐다. 작년까지를 보면 어떤 해는 1년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책정하고 어떤 해는 3년을 기준으로 책정했다. 직원 입장에서는 기준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아닌 데다 매해 왔다 갔다 하니 직원 입장에서는 회사가 성과급을 축소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올해는 1년 기준으로 봐도 3년 기준으로 봐도 성과가 좋았다. 그런데 '영업이익은 높지만 매출액이 낮다'고 해서 성과급을 C로 책정했다. 경영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미리 정한 기준이라고 하는데 믿기 어렵다.
성과급과 별개로 연봉 인상률 역시 최소 수준에서 책정된다. 고과에서 D를 받으면 0~1%, C를 받으면 1~2%, B를 받으면 2~3%, D를 받으면 3~5%다. 게다가 상대평가 요소가 들어와 있어 사업부가 역대급 성과를 내도 누군가는 C나 D를 맞게 돼 있다. 그러면 인상률은 0~2%인데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금 동결도 아닌 마이너스다.
공정한 평가란 게 이루어지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임금이 사실상 동결되거나 삭감되지 않도록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포괄임금제 폐지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노조 설립 계기를 말할 때 포괄임금제뿐 아니라 초과근무 강요, 근태 시스템의 함정 등 연장근무와 관련한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문제가 있나?
유준환 : 사무직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포괄임금제가 시행되고 있다. 생산직과 달리 연장근무에 대한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근태 시스템도 수동식이다. 출퇴근 시 출입카드 찍기는 하는데 회사에 있는 시간이 근무시간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연장근무를 따로 기록해야 한다. 주 40시간을 넘어가면 조직 책임자의 결제가 필요하고 또 일정 시간을 넘어가면 임원 결제도 필요하다. 실제 일한 시간과 기록된 시간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아무래도 연장근무를 기록할 때 조직 책임자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서울에서 떨어진 사업장일수록 눈치를 더 많이 본다고 들었다.
프레시안 : 특정 사업장에서는 폭언이나 폭행이 있다고도 했다.
유준환 : 사업장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역시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군대식 문화나 꼰대 문화 이런 것들이 강해 폭언 같은 일이 일상적으로 있다고 들었다. 저는 강남에 사업장이 있어 이런 일이 덜한데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많이 이야기한다.
"MZ세대 등 특정 정체성 의도하고 만든 노조 아니다"
프레시안 : 양대노총에 가입하지 않았고 집행부가 젊다는 점을 들어 'MZ세대의 반란' 등과 같은 말로 노조의 성격을 규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유준환 : 노조 설립 때 많은 부분에서 관심을 받았다. 집행부가 MZ세대다, 상급단체가 없다, 제조업에서 나온 사무직 노조다 등등. 여러 방면에서 정체성을 부여하려 하는데 저는 애초에 특정한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노조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상급단체 문제부터 이야기하면, 빠르게 설립하려다 보니 상급단체와 상의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다. 비밀 유지도 필요했다. LG전자 기존 노조는 생산기능직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사무직을 대변하는 노조가 없어서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집행부 역시 나이로 뽑지 않았다. 애초에 조합원들의 연령 분포도 전체 사무직 근로자의 연령분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사무직 연령 분포가 20대 5%, 30대 38%, 40대 41%, 50대 13%인데, 한 달 전 집계했을 때 조합원 연령 분포가 20대 7%, 30대 50%, 40대 38%, 50대 5%였다. 50대가 적고 30대가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대체로 비슷하다.
우리 노조가 구성원을 대표해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다른 노조와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한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던 사무직의 노조라는 점뿐이다.
프레시안 :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을 원한다'는 말로 대기업 사무직 노조의 요구를 요약하는 경향도 있다. 이를 '성과연봉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냐'고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준환 : '성과에 따라 보상해야한다'는 데 대해서는 사실상 모두가 공감한다. 진짜 질문은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가'라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공정한 평가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차선은 어느 정도 공정한 평가체계에서 불만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가 과정이 투명하고, 평가에 대한 보상이 예측가능하고, 평가에 대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낮은 평가를 받아도 견딜 수 있을 수준의 임금인상률을 보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전부 다 안 되고 있다.
6월 중 온라인 조합원 모임 갖고, 회사와도 면담 준비 중
프레시안 : 전국에 사업장이 있기도 하고 코로나19 상황이기도 해서 조합원과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조합원들과는 어떻게 만날 계획인가?
유준환 : 5월이나 늦어도 6월에는 온라인으로 만나는 자리를 준비하려 한다. 라이브 Q&A나 자유롭게 서로 대화하는 자리 등 내용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다. 조합원 총회는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니 먼저 캐쥬얼하게 조합원들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려 한다. 집행부회의는 자주 갖고 있다.
프레시안 : 교섭단위 분리신청이 기각됐다. 회사와의 직접 교섭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교섭권 획득을 위한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유준환 : 교섭단위 분리 교섭권 획득의 유일한 길은 아니다. 전체 직원 수로 사무직이 생산직의 2.5배 정도다. 앞으로 조합원이 많아지면 우리가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있다. 소수노조로서 교섭대표노조에 우리의 교섭안을 제출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교섭은 아니지만 사측과 따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유준환 : 사측이랑 공문도 한 번씩 주고 받았고 이메일도 여러 번 보냈다. 한 번 보자고 해서 날짜를 잡으려 하고 있다. 특별한 요구나 제안이 오고 간 건 아니고 잘 지내자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
"LG전자 사무직의 권리 찾기 위해 많이 가입해달라"
프레시안 : 향후 LG그룹 내 비정규직이나 생산직 등을 포괄할 계획이나 이들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복안이 있나?
유준환 : 현재는 LG전자 내에 집중하려 한다. 물론 어떤 근로자를 대표하든 교류를 원하는 단체가 있을 경우 항상 환영이다.
프레시안 : 혹 그간 이미 교류가 있었나?
유준환 : 만난 분들은 있다. 현대자동차 사무직노조 위원장은 같은 노무법인에 자문을 받고 있어서 인터뷰도 같이 했었다. 기존에 있던 노조도 그렇고 새로 생기려는 노조에서도 연락이 가끔 오고 한다.
프레시안 : 노조를 만들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노조 혹은 한국사회의 노동문제에 대한 생각이 변한 점이 있나?
유준환 : 그동안 봐왔던 노조는 언론에서 비춰지는 투쟁적인 부분만 봐와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기업 앞에서 노동자 개인은 한없이 약하고, 노동조합조차 기업의 돈과 인사권에 압도적으로 약하다. 모든 투쟁이 정당한 것은 아니나, 쟁의를 비롯해 노동자가 역사적으로 쟁취해온 권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프레시안 : 가입을 망설이는 LG전자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유준환 : 망설이는 이유가 두 개일 거라고 생각한다. 먼저 불이익을 받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안심하셨으면 한다. 노조 가입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다. 가입 시 보안이 필요하다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혹시나 회사가 불이익을 준다면 끝까지 밝혀내 책임을 물을 거다.
우리 노조가 정말 일을 잘 하는지, 조합비가 아깝지 않게 사무직을 대변해 목소리를 잘 낼지 좀 보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는 노조는 조합원 수가 힘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적은 수로도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수가 많을수록 힘이 커지고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망설이신다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 우리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 노조에 가입해주시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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