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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 비용만 수백 만원"...어느 라이더 가족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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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 비용만 수백 만원"...어느 라이더 가족의 슬픔

[어느 늙은 라이더의 죽음] 국가가 외면한 사람

'남편 사망 사건'을 맡은 변호사 쪽이 한낮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정확히 표현하면, 메시지 없이 PDF파일만 하나 보냈다. 그래도 파일을 열어볼 순 없었다. 식당에서 밥 나르는 노동자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김정미(가명) 씨는 열 시간 노동을 마친 밤 10시께 집에서 파일을 열어봤다. 법원 판결문이었다. 읽기 전에 잠시 심호흡을 했다. 심장 박동수가 살짝 빨라졌다.

'진로변경이 금지되어 있는 구역에서 망인(남편)이 시선유도봉 사이로 진로변경을 함으로써 (사고가) 야기되었으므로, 망인의 각 도로교통법 위반의 범죄행위를 직접 또는 주된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 2021년 1월 29일 선고.

심장 박동수는 급격히 추락했다. 남편은 자기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사망했다. 재판부 논리가 그렇다. 2021년 1월의 끄트머리, "0.1%의 희망이라도 기대"했던 마음은 허무하게 끝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판결문을 다 읽은 김정미 씨는 3년간 매일 복기한 그날로 다시 돌아갔다.

남편 주희재 씨(당시 54세. 가명)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일대에서 배달 대행업체 기사로 일했다. 사고가 발생한 2018년 6월 20일 오후 1시 7분, 남편은 김밥 배달을 마치고 가는 길이었다. 오토바이를 탄 남편은 분당 잡월드사거리에서 좌회전이나 유턴이 가능한 안쪽 차선으로 진로 변경을 시도했다.

남편은 3-4차선 사이에 그어진 백색실선과 시선유도봉을 넘다 3차선에서 직진하던 SUV 차량과 충돌해 그날 밤 사망했다.

"배달 라이더 남편은 신호 위반도, 중앙선 침범도 하지 않았어요. 음주운전은 더더욱 아니구요. 단지 차선 변경을 금지하는 곳에서 차선을 바꿨다고,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남편만 혼자 사망했는데, 범죄자라니요!"

김정미 씨는 기자에게 한 이 말을 지금까지 수없이 했다.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산재)’를 청구했을 때부터 그랬다. “남편은 범죄자” 논리도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공단 측은 이런 논리로 산재를 불승인했다.

"고인(남편)의 고의에 의한 도로교통법 위반 범죄행위가 사고의 원인이 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 2018년 12월 15일 근로복지공단 산재 불승인 처분.

고의로 사고를 내서 사망했다고? 아내 김정미 씨 등 유가족의 분노를 산 부분이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아무 근거 없이 산재 불승인 처분을 한 건 아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의 내용은 이렇다.

ⓒ셜록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애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는 이렇다.

'자신의 범죄행위에 기인하거나’라 함은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2002두13079 판결)

주희재 씨는 정말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로 인해" 사망했을까? 아내 김 씨는 곧바로 산재보상보험재심위원회(재심위)에 산재 불승인 처분 취소를 청구했다. 재심위는 김 씨가 청구한 내용을 판단하기에 앞서 외부 변호사 세 명에게 자문을 구했다.

A변호사는 이런 의견을 냈다.

"상대차량의 운전자가 전방주시의무와 방어운전의무를 다 하여 시선유도봉을 넘는 재해근로자(주희재)를 미리 발견하고 제동장치를 조작했다면 사건 재해 피해를 최소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 차량의 과실이 없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주희재의 시선유도봉을 넘는 행위(불법 차선 변경)가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중앙선침범 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없습니다."

상대차량과 경합하여 사고가 발생했으니, 산재를 승인해야 한다는 의견. 다음엔 B변호사의 의견을 보자.

"비록 주희재가 시선유도봉이 있음에도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시도했으나, 이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제3조 제2항의 ‘12대 중과실’이 아닌 안전운전의무 위반(경찰서 조사)으로만 평가 받았습니다. 오로지 또는 주로 주희재의 범죄행위로 그가 사망하였음이 명백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업무상 재해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역시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마지막 C변호사의 핵심 의견은 이렇다.

"주희재의 차선변경 행위에 관하여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 12대행위에서 문제되는 중과실을 적용 또는 준용하며 판단한다면, 이는 오히려 형사상 책임에 관한 죄형법정주의라는 원칙에도 배치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중과실 또는 고의’ 여부를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주희재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자문 변호사 3인 모두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세 변호사 중 둘은 상대차량 운전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당시 사고는 "오로지" 주희재 씨의 과실로만 발생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사망 직전 치료를 받은 주희재 씨의 병원비를 지급한 쪽은 상대 차량 운전자 D씨의 보험사였다. 보험사는 치료비 약 289만 원과 합의금 2009만 원을 주 씨의 유가족에게 지급했다.

특히 보험사에서 산정한 상대차량과 주희재 씨의 과실 비율은 '1대9'였다. 차선을 변경한 주 씨의 과실이 크지만, 보험사도 운전자 D 씨의 책임이 아예 없지 않다고 본 셈이다.

D 씨 역시 사고 당일 분당경찰서에서 본인의 과실을 적는 진술조서 칸에 이렇게 썼다.

"방어운전에 더욱 신경 썼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D 씨는 진술조서 피해경위에 “사고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좌로 돌렸지만 충돌을 피하지 못하고 제 차량 우측 앞부분으로 오토바이와 충돌했다”고 적었다. 즉, 사고가 나기 전 그는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봤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 상대 차량 운전자 쪽이 가입한 보험사마저 운전자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2) 보험사 의견대로, 재심위 자문 변호사 2인도 상대 차량의 책임도 있다고 밝혔다.

3) 자문 변호사 3인 모두 주희재의 차선 변경을 '12대 중과실'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재심위는 주희재 씨의 산재 불승인 처분은 옳다고 결정했다. 여기에서도 “주희재는 범죄자”라는 논리가 등장했다.

▲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김정미 씨. ⓒ셜록

김정미 씨는 마지막으로 행정법원 찾았다. 앞서 말한 대로, 법원에서도 남편은 범죄자 굴레를 벗지 못했다. 김 씨가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은 일주일.

자문변호사들의 의견, 보험회사가 따진 과실 비율 9대1, 여기에 상대 차량 운전자 진술까지. 항소심에서 다시 한 번 다퉈보면 산재 승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 씨는 항소를 포기했다.

"1심 판결문에서 0.1% 희망이라도 발견했다면, 항소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부터 행정법원까지 다 똑같은 논리를 이야기하니,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김 씨에게 "0.1%의 희망"도 못 보게 한 건, 돈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무사 비용, 변호사 선임비... 1심 판결까지 약 1000만 원을 썼습니다. 항소를 하면 최소 수백만 원을 또 써야 하는데, 없는 살림에 그걸 어떻게..."

일하다가 죽고 싶은 라이더는 없다. 위법하게 차선을 변경했지만 결국 주희재 씨 사고도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발생했다. 30분 배달제가 부활한 시대에 안전하게 운전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라이더는 약 3000원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런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로서 산재가 존재한다.

동시에 산재는 ‘노동자에게 과실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국가는 재해와 범죄행위의 인과 관계를 더욱 엄격히 따질 필요가 있다.

주희재 씨 사건을 살펴본 복수의 변호인들은 한결같이 "항소심에서 충분히 다퉈볼 만한 사안인데, 1심에서 종결돼 아쉽다"는 의견을 밝혔다.

주희재 씨가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한 건 수수로 3000원을 더 벌기 위해서였으리란 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 남편이 안타까우면서도 아내 김 씨는 돈이 없어 항소를 포기했다. 남은 가족의 살림살이는 이전보다 훨씬 팍팍해졌다.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산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데, 국가는 이들을 외면했다.

그리고 또 하나. '범죄자'는 형법에 따라 기소되고, 처벌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실제로 주희재 씨의 차선 변경은 범칙금 2만 원에 해당하는, 일명 '빨간줄'로 불리는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 행위다. 이런 과실을 범죄라고 부르면 이 나라는 벌써 '범죄자의 왕국'이 되지 않았을까?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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